저자: 김혼비 / 출판: 민음사 / 발매: 2018.06.08.
여자에겐 언제나 운동장의 9분의 1쯤만이 허락되어 왔다.
이다혜 기자의 추천의 말 첫 번째 문장이 어쩌면 이 책의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게 된 계기도 김혼비 작가의 책이라서일 뿐이고, 여자 축구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지소연' 선수 정도만 알고 있는 것이 다일 뿐이니까. 축구에는 관심이 1도 없음에도 여자축구라는 단어가 여자고등학교 여자운전기사 처럼 당연한 말에 '여자'만 가져다 붙인 것처럼 '이상하다' 라고 느끼는 걸 보면, 나 역시 남녀를 구분하는 사회에서 살아왔구나 싶다.
사실 여자축구 프로선수들의 취재기인가 싶었다. 뭔가 표지부터 환공포증을 일으킬 것 같은. 자세히보면 하트로 가득차 있는. 전광판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작가가 직접 아마축구 선수의 시작부터 활동을 한 일기들을 모아냈다니 읽으면서도 재미있었다. 낯설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익숙함이었다. 우리는 흔히 종목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선수가 되면서부터 미친듯한 재능을 알아가고 거기에 노력이 더한 성공 스토리에 늘 목매여 있다. 나는 아직도 친구집에 놓여있는 슬램덩크를 보면 그 자리에서 1권부터 읽고 보는 습관이 있다. 그렇다. 슬랭덤크 같았다.
작가 김혼비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일기에 쓰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고 어떤 환경에서 커왔는지에 대해서는 축구를 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연습을 어떻게 해야 했고, 같이 축구하는 사람들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떤 마음 가짐으로 경기를 임했는지. 오히려 작가보다는 책에 출연(?)하는 다른 선수들의 개인 신상이 더 자세하게 나온다. 철저하게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보면서 쓴다는 글이 이런 거구나. 앞에 <아무튼, 술> 에서 느낀 거지만 김혼비 작가의 글은 따뜻할 것 같지만 따뜻하지 않은 대신 디테일하게 아플 것 같은 부분을 모른 척 넘어가주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여자 아마추어 축구에 대해서 읽은 소감이 어떠냐고? 어디든 소속되서 운동하고 싶어 근질근질 하다. 삶에서 무언가를 꾸준히 해낸 기록은 이만큼 위대하고, 그걸 관찰자 입장에서 차갑게 써내려간 글이 주는 매력에 빠져버렸다. 이런 글은 한 문장 한 문장 마음을 다 주기도 전에 다음 글을 읽게 되어 빨리 완독하게 된다. 다음 장을 넘기는지도 모르게 만드는 책이라니 이 분께 글쓰는 법을 배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축구는...음... 그건 여전히 내가 관심이 있는 분야는 아니다. 그저 슬램덩크 같은 벅참을 주면 됐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주인공 김혼비가 헤트트릭을 하며 어려운 팀을 위기에서 구하는 과정을 엮은 대서사시는 아니다. 작가 김혼비가 아마추어 죽구 선수들 사이에서 먹고 얘기하고 생각하고 관계되는 이야기들은 특이할 것 없지만 낯선 것일 뿐이다. 조금 어색하다고 해서 없는 이야기도 아니고, 모르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 안해본 이야기라는 건 언제나 낯설고 재미있다. 남자 아마추어 축구였다면 이렇게 재미있었을까? 적어도 나는 재미있었을 것 같다. 전혀 관심이 없는 분야니까. 그치만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봤겠지? 끝나고 막걸리를 마셨는지 아저씨들끼리 싸웠는지 뭐 그런 얘기 말이다. 아, 그런데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그런 얘기들이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도 쓰여있다. 그런 내용인데 다른 단어다. 궁금하다면 읽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