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오징어 게임을 시작하지
갑으로서의 고민이 있다. 점점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건 일종의 질투일지도 모르겠다. 대행사에서 주는 아이디어와 콘텐츠, 레퍼런스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그만큼 좋은 아이디어와 결과물에 대한 고민을 해준다는 얘기다. 감사한 일이다.
대신 한 편으로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로 시작했던 내 입장에서는 점점 해당 직무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불안감이 있다. 사실 광고물을 제작하는 주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곳은 크게 두 곳이다. 하나는 인하우스, 즉 광고주다. 다른 하나는 대행사. 그런데 대행사에서는 해당 광고물을 누가 제작했고 어떤 덕션이 붙었는지 꼭 기록해둔다. 그건 그들의 자산이 되고 함께 하는 직원들이 자산이 된다. 그렇지만 인하우스는 그렇지 않다. 회사 이름 하에 모든 것이 감춰진다. 통일성을 위해서 기도 하고 직원을 보호한다는 이유도 있다.
대신 갑으로서의 전문성이 별도로 스킬로 쌓인다. 트렌드보단 사람을, 회사를, 관례를 더 궁금해한다. 일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자사'에 대한 전문성이 높아져간다. 좋은 크리에이티브도 좋지만 '할 수 있는' '통과되는' 크리에이티브에 집착하게 된다. 엉덩이가 무거워진다는 건 이런 걸 얘기할 수도 있겠다. 조직 내에서 누가 일을 잘하는지 파악하고, 대행사에게 소위 '윗분'의 의견을 최대한 전달한다. 업무에 대한 판단을 못한다기보다는 '보고를 위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내 브랜드에 최선을 다했냐고 물으면 내 브랜드에 대한 내 애착이 옳은지를 역으로 물어온다. 상상 속에서는 이런 토론이 있는 건강한 조직에 몸 담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내 말의 비중과 다른 이의 비중이 다른 것을 체감한다. 그걸 기가 막히게 채가는 사람들이야 말로 '갑의 전문성'을 갖춰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당 직군에서 멀어질수록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이건 개인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직무 전문성이 떨어질수록 회사에서 점점 필요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직무를 잘 아는 빠릿빠릿한 인재를 뽑으면 그만이다. 그동안 일했던 사람들은 알아서 떨어져 나가거나, 혹은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를 잘 진행해서 위로 올라간다. 그걸 그들은 매출이라고 부르고, 숫자로 증빙되는 전문성이라고 고쳐 부른다. 그러나 그건 일부에 불과하다.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조직은 점점 회사에 필요 없는 존재를 양성한다.
회사를 오래 다닌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방향은 그리 옳진 않다.
#직장인의 경험을 동반한 상상의 글입니다.
#갑은 광고주, 을은 대행사로 한정 지어 말한 것이니 확대해서 생각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