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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모 Nov 09. 2023

회의실 속 사무실

회사에서 일하다보면 간혹 장기 출장을 갈 때가 있다. 원래 내가 있는 공간이 아닌 곳으로 가다보니, 제대로 된 의자와 책상은 호사고 회의실에 여러명이 우르르 모여들어가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거북목 보호를 위해 챙겨온 노트북 받침이 아니었으면 출장자의 사무실인지도 모를 그런 회의실 모양새다. 옹기종이 모여 있는 것이 두더지 게임 속 두더지 같으면서도 목을 빼지 않아도 이미 서로 서로가 다 파악된다. 회의실 속 사무실은 파티션이 있는 공간과는 또 다른 세상이다. 


하루 종일 같은 공간안에 있으면 친해지기 쉽상이라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하루 종일 몇 마디 말도 안거는 일이 뻔하다. 일을 같이 하라고 사무실에서 더 협소한 회의실로 옮겨두었지만, 오히려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말 하나도 조심스러워지는 셈이다. 기침이라도 할 때면 이전보다 더 신경쓰게 되고, 간혹 배에서 소리라도 날 때면 혼자 꾹 참으로 부끄러움을 삭히게 된다. 배고픔인지 배아픔인지 생각할 겨를보다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들키고 쉽지 않은 수치스러움이 더 큰 까닭이다. 


회사라는 공간이 그렇다. 일을 같이 오래할 수록, 가까이 있을 수록 서로가 어떻게 일하는지, 무엇을 하는지 알아채기가 쉽다. 좋은 일이 있으면 반대도 있는 법. 서로에 대해 곁눈질만으로도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으니 역으로 나 역시 내 행동 하나 소리 하나에 민감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간식을 자주 먹는다고 흉을 보진 않을지, 책상이 더럽다고 눈치주진 않을지 그런 것들이 겁나곤 한다. 


반대로 장점도 있다. 회사 일이라는 것이 성취감을 고르게 나누기보다는 한만큼 나누게 되는 곳이다보니, 좁은 회의실에 모여 일을 하면서 서로 일하는 걸 끊임없이 체크하게 되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내가 하는 만큼의 성취를 가져가야 하는데 그 기준은 늘 다른 사람이 되기 쉬운 곳이회사다. 그러니 회의실에 모여서는 경쟁속에서 성취감을 찾는 활동을 보다 본능적으로 할 수 있다. 다 갖춰진 사무실보다 열악한 회의실에 뭉쳐 있는 것에서 경쟁심이 나온다는 것도 이상하다면 이상하다. 


최근 업을 바꿨다. 같은 회사일이지만 업의 성격이 달라지다보니 하지 못했던 경험들도 하게 된다. 기왕이면 완전히 다른 업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 목적에는 꽤나 부합하는 성공적인 변화였다고 자축한다. 회의실 한 켠에서 혼자 하는 자축이지만, 뭐 어떠랴. 이것도 다 경험이라 생각하니 좋다고 여긴다. 어차피 같은 회사를 다닐 거라면 전문가도 좋고 다양한 경험도 좋은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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