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책 선물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팀장님께서 주신 선물이기에 연말에는 읽어야지 했지만, 핑계를 담아 연초에 마무리했다. 제일기획 출신으로 이미 잘 알려진(유퀴즈도 나오셨더라) 최인아 님의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조근조근한 말솜씨가 마음에 들었다. 최근에 읽은 박완서 님의 글쓰기도 생각이 날 정도.
내가 좋아하는 '아니, 근데, 이짜나'를 적용하자면, 글을 잘 쓰거나 유려하거나 몰입이 있진 않았다. 그렇다고 경험담이 엄청나거나, 이 분의 클래스가 광고 외 영역에서 어마하거나 하진 않았다. 물론 삼성그룹 최조 여성 임원이라는 타이틀이 쉽다는 건 아니지만, 요즘처럼 돈돈 거리는 시대에 돈 많다고 자랑하는 글도 아니고.
그렇지만 글 마지막까지 읽으면서 아마 광고쟁이로 일한 시간만큼 많은 사람들의 후배이자 동료이자 선배로 살았겠구나 싶더라.
다시 돌아와서,
시대의 어른들이 책을 많이 내고 있다. 사실 이전에도 그랬을지 모른다. 그 시대의 어른들이 시대의 상징 같은 사람들이었다면, 이 시대의 어른들은 선배이자 후배이자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이다. 해당 조언들이 내게 꼭 맞진 않더도,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내 삶에 힘을 한 번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위안이 되는 그런 어른들의 글이 많은 것 같다. 최인아라는 분을 전혀 모르지만 책 내내 어느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글을 썼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약간의 조언이 필요한 사람들. 그만큼 고민을 계속 해가는 사람들. 공감이든 질타든 위로든 그런 것들이 필요한 사람들 말이다.
책의 마무리 즈음에 있는 장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더 이상 일을 잘하는 것 같지 않을 때 퇴사를 했노라고. 개인적으로 얼마전에 회사 내에서 이동을 했다. 전혀 다른 직무. 표면상으로야 다른 업무를 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더 이상 디지털/광고를 잘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한동안 나를 지배한 결과였다. 실제로도 나는 디지털/광고 영역에서 13년을 일했음에도 그에 대한 인사이트와 미래, 그리고 후배를 키우거나 실무자로서의 역량을 강화하고자 하는 미련이 없었다. 최인아 작가처럼 29년을 일한 결과라고 말할 수 없어 미약하지만, 그에 절반에도 안되는 만큼은 해본 것이라 내어놓기는 부끄러울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나름대로의 답을 찾은 것은 아닐까 싶다. 회사 내 이동이라는 차선책을 선택하긴 했지만 현재 완전히 다른 직무를 하면서 나름의 만족감을 얻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나의 이런 얘기를 들은 전 팀장님이 딱 이 책이 생각나 선물을 주신게 아닌가 싶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이 분을 아는 지인의 평을 적자면, 자신이 가진, 이룬 성과를 이 책에 전혀 적어놓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분이라는 평. 그만큼 존경한다 하니 책에서 느껴지는 선배미가 부러워졌다. 저런 선배가 될 수나 있을까. 되어야 할까. 있었나 뭐 이런 생각들.
책장 한 구석에 꽂아두었다. 요새는 실물책을 잘 안접하려고 하는데 (치우기도 귀찮고 자꾸 쌓이고... 집도 좁은데) 그래도 일하면서 한 번씩은 생각날 것 같아 일단 책장에 킵해본다. 좋은 선배가 생각나면 전 팀장님께 연락을 드려도 되지만, 연락 드리기가 송구하면 책을 펼쳐봐야겠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