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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모 Aug 22. 2024

내 부끄러운 취미, 게임-2

게임이 부끄러운가? 아니다. 게임을 하는 내가 부끄러운가?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게임을 하는 나는 부끄러워하는가? 그것은 맞다. 도대체 왜 부끄러운가? 결과적으로는 못해서가 아닐까?...


나는 명실공히 스타크래프트 시대를 살았다. 중학교 1학년. 당시 친구들과 집으로 가는 길에 들렀던 곳은 '벙커' 라는 이름을 가진 PC방이었다. 창문을 검은색 필름으로 인테리어한 그곳은 정말 벙커였고. 벙커에서 우리는 수많은 작전을 하며 외계 종족이 되어 싸웠다. 그 안에서 나는 내가 외계종족일 수 있음도 알았다. '벙커' 그 작은 곳에서 우주속의 미아라는 개념을 깨달은 것이다. 시작은 스타크래프트였다.


그에 앞서 둠이 있었다. 둠을 잘한 것이 아니다. 내 스타일의 게임도 아니었다. 앞에 글에서 언급한 '처음으로 생긴 컴퓨터' 안에 있는 무료 게임에 둠1, 둠2가 있었다. 당시 초등학생인 내게 그런 게임은 따라가기 어려운 게임이었다. 조작이 문제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총으로 이유 없이 쏴서 죽인다는 설정이 내 성격과 맞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저격하거나 쏘는 것은 어려워한다. 


그 앞에 시뮬레이션이 있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게임은 비디오 게임이었는데, 우주로 날아가서 다음 작전을 수행해야 했다. 흥미가 생겨 몇 번을 도전했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좌절했었다. 나이가 들어 알고보니 체험판이었다. 아마 체험판이 아니었다면 비디오 게임 쪽에 조금 더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고 나니 RPG가 남았다. 롤플레이 게임을 무슨 특별한 의도로 좋아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소설이나 만화가 익숙한 내게는 RPG를 통해 스토리를 알아간다는 재미가 컸다. RPG는 다른 말로 하면 소설이었고, 소설을 시각적으로 음악적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본적도 없는 세상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상상하던 시기였다. 파이널 판타지, 파랜드 택틱스, 삼국지 관련 게임들, 포켓몬, 창세기전 등등. 정말로 다양한 스토리들이 있었다. 영웅전설은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게임이었다. 밤 새는 줄 모르고 했다. 스토리도 찾아보고 숨겨진 이스트에그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그렇게 혼내지 않으시던 어머님 덕분에 나는 꽤나 가성비 좋은 취미를 얻었다. 그렇지만 늘 숨어서 했다.


숨었던 이유는 별 게 없었다. 

1) 낮에 할 수는 없었다. 공부도 해야 하고 눈치도 보이니까. 줄이는 건 잠이었다. 

2) 캐릭터들이 가끔 벗기도 했다. 새로운 세상이었고 은밀했다. 일본산이 많았다. 당시에 일본이 어땠는지 알 턱이 없었다. 나는 분명 캐릭터를 키우는데, 벗는 이스트에그가 있다는 소식에 호기심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그 게임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3) 벗는 내용이 전혀 없는 것들도 일본 게임 천지였다. 특히나 RPG는 일본게임이 탁월하게 많았다. 스토리도 방대했다. 지금 생각하면 일본 문화가 퍼지는 전성기 시대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죽은 문화가 우리나라에 늦게 혹은 내가 늦게 접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그 탁월한 능력이 게임에서도 앞도적이었다.


여튼 숨겼고, 그래서 부끄러워졌다. 스타크래프트도 스토리가 재미있었다. 나는 이기는 것보다 스토리를 더 좋아했다. 캐릭터의 능력보다 사연을 좋아해서 이상한 유닛에 정을 주곤 했다. 전략 시뮬레이션들도 좋아했다.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내가 하나를 조작해서 옮기면 다음 스토리가 달라지는 것이 좋았다. 전략은 특히가 그게 게임에 영향을 미치니 좋아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는 게임을 이기려고 하거나 잘 하려고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잘하지 못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도 저그와 프로토스의 기원과 유닛 하나하나의 설정에 더 집착하고 재미있어했다.


결혼을 하기 전에도 게임을 많이 했다. 롤을 그렇게 했다. 10년을 넘게 했다. 결혼을 하고 부인이 말하길  '이렇게까지 게임을 많이 한다는 말은 없지 않았나. 사기 결혼이다' 라고 했다. 나 역시 사기를 당한 부분이 많았음을 어필하면서 일단락이 되었지만, 내 게임 사랑은 식지 않았다. 역시 잘하진 못했다. 그냥 시간을 때우는 것이었다. 둘이 있는 집에서 한 명은 핸드폰을 보고 한 명을 게임을 할 뿐이었다. 게임을 하는 남편을 못마땅하게 보는 부인의 시선에서도 여전히 나는 부끄러운 취미를 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그걸 부끄러워했다는 게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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