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하고 아이가 생기기 전, 그러니까 신혼이라고 불리는 시절에 종종 부부싸움을 했다. 부부싸움이라는 건 참 묘한데, 늘 다른 주제로 시작한 싸움은 늘 같은 소재들이 나와서 같은 결론을 향해 간다. 둘 다 하나도 미안하지 않은 채로 끝이 난다. 잘못한 경우가 명확하다면 모르겠지만, 심지어 그 경우에도 감정을 상하게 한 원인이 또 다시 피어나기 때문에, 부부싸움은 시작이 다르지만 끝이 같은 일종의 만화책 '원피스'와 같을지도 모르겠다.
여튼 그 부부싸움을 몇 번 하면서 도대체 게임이 뭐라고 내가 가정의 불화를 가져오는가 라는 결론을 내린적이 있었다. 그 때 한 4개월 정도 게임을 멈췄었다. 게임을 안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1주일 정도는 상당히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무지 소파에 앉아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게임을 안하기로 했는데 모바일 게임을 하는 것도 눈치가 보였던 터인지, 책을 들었었다. 책은 또 다른 탈출구였기 때문에 몇 일 정도는 잘 버틸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영화였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을 때우는 건 고전적인 방향이었다. 그렇지만 게임이라는 건 누군가와 싸우기도 하고 혼자서 생각도 하면서 시간과 과정을 탐닉하는 것에 비해, 도피처로 생각한 컨텐츠는 늘 수동적이었다. 나는 그저 받아들여야 할 뿐이었다. 부부이기 때문에 '같이' 하는 것이 좋지 않냐고 물을거라면 사전에 차단하겠다. '같이 해야 하는 것' 이라는 주제도 부부싸움의 한 소재가 될 수 있었음을 밝힌다.
다음은 식도락이다. 먹는 것도 시간을 보내는 유용한 방법이다. 먹고 마시는 일은 즐거운 일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요리라는 것도 서로 따닥이 맞아야 한다. 한 사람은 요리 하고 한 사람은 치우기만 하는 것은 지치기 마련이다. 오히려 좋지 않냔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런게 맞는 사람과 사는 것에 감사할 일이지, 치우기만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말이다.
운동을 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은 내가 좋아서 시간을 보내기 위한 용도로 무언가를 하는 것과, 즐겁지 않은 채 하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바로 '몰두' 였다. 몰입보다는 조금 더 즐거운 상태랄까. 집중력을 가하지 않아도 집중이 되는 상태. 그런 상태를 만들어주는데 게임은 아주 탁월했다. 이것은 조기교육의 영향일까? 어린 시절부터 게임으로 나만의 시간을 보내온터라, 게임이 주는 편안함과 즐거움을 다른 무언가가 대체하기는 참 어려웠다. 결국 다시 게임을 했다.
오기로 시작한 게임을 하게 되어 스스로 실패를 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게임 말고 무엇을 하라는 것인가? 같이 사는 이는 내게 그런 것들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저 게임은 이상한 사람들이 하루 종일 방구석에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었을 뿐이었다. 반론의 여지가 많은 말이었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부부싸움의 시작과 소재는 정말 다양했다. 게임을 인정해주는 사람과 만났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었다. 나는 게임을 하는게 정말 즐겁다고 해맑게 말하면서 상대의 의지를 꺾어놓을 만큼 그렇게 게임을 자랑스러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 한 켠에서는 지금 내가 게임만 하고 밤 늦게 까지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 행위가 부끄러운 행위인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은 부인을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과 동일한 것이었다. 닮은 이들이 결혼한다 했던가. 취미가 딱히 없는 둘이 결혼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