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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모 Aug 20. 2024

내 부끄러운 취미, 게임-1

초등학교 6학년 때 집에 586 컴퓨터가 처음으로 들어왔다. 당시에도 컴퓨터 가격은 300만원 정도 했었는데, 아버지가 그 당시 무슨 생각으로 컴퓨터를 사주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여튼 덕분에 나는 타자도 컴퓨터도 익숙한 세대가 되어 당시의 문화를 향유하는 아이로 성장했다. 


586 컴퓨터로 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것들이 몇 가지있었을테지만, 컴퓨터를 처음 접하는 내가 책을 보면서 배운 것들이 타자 연습, 한글, 인터넷 접속, 그리고 게임이었다. 그 중에서도 게임은 신기하게도 익숙해지는 속도가 가히 역대급이었다. 다른 것들은 '공부'를 했지만 게임은 '놀이'를 해서 그런가 도스도 들어가고 디스크에 압축도 해서 친구들과 주고 받으며 뭔가 대단한 걸 하는 것처럼 했지만, 결국은 불법으로 복제한 게임을 하고 다니는 것일 뿐이었다. 인터넷으로도 게임을 다운 받을 수 있었지만, 주변에 선도적인 친구들은 CD로 게임을 접하고 있었고, 어느새 나는 CD를 굽고 그걸로 다른 친구들에게 주기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컴퓨터를 사주시던 아버지 마음은 모르지만, 당시의 나는 명확히 게임을 좋아하게 되었다. 키보드로 무언가를 조작해서 게임을 한다는 것이 초등학생에게는 여간 재미있던 일이었겠지 싶다. 종류는 또 얼마나 많던지. 그 전에 게임기를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그보다 다양한 조작을 심지어 실행까지도 뭔가 복잡한 게임이 그리도 재미있었던 것 같다. 대전 게임, 둠과 같이 총을 쏘는 게임, 시뮬레이션 게임 처럼 꽤나 다양한 게임들이 사전 탑재 되어 있었다. 그걸 하느라고 꽤나 긴 시간을 보냈었다. 


당시 부모님은 내게 게임보다는 프로그램을 좀 하라고 하셨어야 했다. 그렇지만 컴퓨터를 모르던 부모님께서는 그 이상의 교육 방침을 세우기란 어려우셨던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컴퓨터에 수록된 몇 백개의 게임을 하나하나 해보고, 그 외의 다른 게임에도 친구들과 함께 눈을 뜨게 되면서 그렇게 내 인생의 취미를 만나게 되었다. 


최근에 게임에 대한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이은조 <게임의 사회학>, 김초엽 <아무튼, SF게임>. 게임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책을 연달아 두 권이나 읽는 건 관심이 있기 때문일테니, 누군가 내게 '게임을 좋아하나요?' 라고 물으면 '맞다'고 답할 수 밖에 없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만난 컴퓨터 게임들은 자연스레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로 성장시켰으니까. 그렇지만 '게임을 잘 하시나봐요?'하고 물으면 그 무례함에 눈을 흘기고는 '아니오' 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눈을 흘기는 건, 나도 잘하고 싶어서 그렇다.)  


나도 안다. 좋아한다고 해서 그걸 자주 하거나, 잘 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 그렇다. 나는 게임을 잘해본적이 별로 없다. 노래를 좋아한다는 말이 노래를 잘한다는 말과는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며 살아왔다. 공부를 좋아한다는 말을 해도, 실제로 공부를 해본 경험의 끝이 그만큼은 아니었다. 일하는 걸 좋아하지만, 야근은 싫어한다. 그렇지만 게임을 좋아한다는 말이 어느 정도는 게임을 잘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면 좋을 뻔 했다. 이전까지도 많은 이들은 내가 '게임을 좋아하지만 잘하지는 못해요' 라고 했을 때 '그럼 왜 해요?' 라고 되묻기 때문이다. (특히 부인이 그랬다)


어쩌면 잘 못해서, 어쩌면 잘 하고 싶어서, 또는 어쩌면 그냥 어릴 때부터 접했던 게임이지만 내심은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게임은 주로 다들 자는 시간, 어두운 시간에 집중했고, 컴퓨터는 늘 방 구석에 자리했으며, 인터넷에 접속하고 게임 잡지를 보고, 친구들과 게임 얘기를 하는 것이 숨겨서 해야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여전히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기 몇 개월 전부터 게임을 안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금 더 변명해보자면 어른이 된 지금은 게임 외의 취미가 별로 없는 것이 부끄러워졌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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