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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Sep 26. 2019

정치에는 수학이 필요하다

수학을 무기로 정치하는 사람, 앤드류 양


202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공화당 내 대선주자들의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신예 후보 앤드류 양은 대만계 미국인으로 아직까지 인지도는 듣보잡에 가깝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인지도와 인기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데 나에게까지 소식이 들려와서 유튜브를 찾아볼 정도면 그땐 이미 상당히 떴다는 의미다.(그 정도로 나는 뭔가 새로운 트렌드를 찾아다니는 데는 비교적 게으른 사람이다.)

 

그렇게 찾아본 앤드류 양의 연설은 강력했다. 한 번 보면 쏙 빠진다. 며칠 전에는 그레타 툰베리가 날 감동시키더니 오늘은 앤드류 양이다. 연설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 가운데 앤드류 양의 사용하는 방법은 수학이다. 헉~ 수학이라니. 그렇다 수학이다. 앤드류 양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방법은 구체적인 데이터다.



트럼프의 상극은 수학을 좋아하는 아시안이다.


미국 사람들에게 아시아 사람들은 수학을 잘하는 범생 이미지로 종종 비치는 모양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이런 사고를 반영한 대사가 자주 등장한다. 인종주의와 폭력의 문제를 전면에 내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영화 <그랜토리노>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꼬장꼬장하고 꽉 막힌 보수 할아버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옆집으로 이사 온 소수민족 몽족(주로 동남아시아 쪽 고산지대 거주) 소녀를 보며 "너도 수학을 잘하냐?"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앤드류 양은 미국 사회에 퍼져 있는 아시안계에 대한 이런 이미지를 역으로 적극 활용해 자신은 수학 잘하는 사람이고, 데이터에 근거한 내 주장이야말로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앤드류 양의 열성 지지자를 뜻하는 양갱(yang gang)들은 심지어 수학(math)이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다니기도 한다.


위 동영상을 보면 시작부터 질문이 핵심을 지른다. 우리(민주당)는 왜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졌는가?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강력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는 앤드류 양이 제시한 답은 명료하다. 뉴스전문채널을 보면 트럼프에게 진 여러 가지 이유를 찾으려 애를 쓰지만 결국 그 이유는 숫자에 있다는 것이다. 오하이오, 미시건,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미주리, 아이오와 같은 중서부 경합주에서 트럼프가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고, 트럼프가 경합주에서 이긴 이유는 기술발전과 자동화로 사라진 400만 개의 일자리에 대해 불만을 품은 사람들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앤드류 양은 말한다. 앞으로 기술발전과 자동화 등 소위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는 더욱 심각해질 텐데 트럼프처럼 인종주의 강화, 이주노동자 배제, 보호무역 강화와 같은 과거회귀적인 방식으로는 이 문제를 풀 수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해법은 기본소득이 되어야 한다고 앤드류 양은 주장한다. 모든 시민들에게 1000달러씩 지급하자는 것이다. 지금은 개인정보가 원유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는 시대지만 어떤 기업도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며 개인정보에 대한 대가를 '테크 체크'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


아마존은 해마다 200달러를 벌어들이지만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정보가 곧 돈이 되는 사회인데 누구도 이에 대한 대가는 지불하지 않고 있으며, 기술발전이 인간을 대체하고 있는데 누구도 이에 대한 해법을 고민하지 않고 있다. 앤드류 양은 기본소득이 가사노동과 같이 지불되지 않는 노동에 대해서도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노동에 대한 관점을 전환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는 유보다. 나는 소득을 국가가 지급하기보다 주거, 교통과 같은 기본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해주는데 국가자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동시에 GDP와 같이 거시경제 지표로만 경제의 가치를 측정하던 방식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작년 미국 GDP는 최대치를 갱신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불행하고 불안한 사회가 되었다며 삶의 질을 수량화할 수 있는 여러 가치를 포함하는 새로운 지표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녀의 연설은 왜 귀에 쏙쏙 들어올까?

  

이전에도 오바마 연설을 많이 들었었다. 시상식에서 화제가 되는 발언이 나올 때마다 연설을 열심히 듣는다. 말 잘하고픈 욕심이 있다. 특히 다수 사람을 상대로 설득력 있는 말을 던지고픈 욕구가 있다. 아마 강사라는 직업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레타 툰베리 연설도 그렇고 앤드류 양의 연설도 그렇고 평균적으로 서구 정치인들의 연설이 훨씬 강력하게 들리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다.



일단은 그들 특유의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한국사회는 일단 자신을 지나치게 높이면 거부감을 갖는 문화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강조하는 게 우선시 되거나, 레드 콤플렉스 같은 통념도 강력해서 자기와 다른 주장을 쉽게 비난한다. 툰베리나 앤드류의 연설을 보면 자신의 특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데 막힘이 없다. 툰베리는 자신이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고 시종일관 눈물을 그렁거리며 분노를 감추지 않는다. 앤드류를 보면 제스처를 취할 때 막힘이 없는데 소위 영어권 연설 특유의 어떤 스웩이 있다.



그리고 숫자를 많이 언급한다는 사실. 앤드류 양은 자기가 숫자를 좋아하고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라 데이터에 근거해서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한다고 대놓고 어필한다. 툰베리 역시 사람들에게 기후위기의 절실함을 설명하기 위해 온갖 수치를 인용하는데 특히 탄소배출과 관련된 각종 통계자료나 연구결과를 언급함으로써 설득력을 높인다. 툰베리는 위기를 깨닫게 만들기 위해 100년 후에 지구는 어떻게 될까라고 말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2078년에 저는 75번째 생일을 축하할 겁니다. 그때 여러분들에게 여전히 조치를 취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냐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수학적 태도가 당신의 말발을 늘려줄 수 있다. 숫자가 모든 걸 말해주지는 않지만 설득력을 높여줄 수 있다. 단지 고귀한 태도만으로 움직이기에 현대사회는 너무 복잡하고 사람들은 충분히 영리하다. 적어도 자신과 직접 맞닿아 있는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말이다. 설득의 핵심은 결국 '이것은 당신 문제다'라고 느끼게 만드는데서부터 출발해야 하고, 수학이 소소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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