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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Oct 29. 2019

<멜로가 체질> 매력을 반감시킨 개그 강박증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종방 때까지 시청률이 1%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종방 이후 넷플릭스에서 인기가 다시 올랐다. 1600만을 돌파해 역대 흥행성적 1위를 기록한 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 드라마 데뷔작인 만큼 시작할 때는 기대가 상당했다. 처음 방영 당시 드라마가 망한 이유는 쉽게 알겠는데 넷플릭스에서 다시 뜨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떤 포인트에서 실망했는지는 쉽게 알겠는데, 어떤 포인트에서 점수를 땄는지는 잘 모르겠다. 


드라마는 <멜로가 체질>이란 제목답게 주연은 물론 모든 조연들이 시시때때로 만나고 헤어진다. <멜로가 체질>은 이병헌식 사랑 이야기다. 사랑에 관한 이병헌의 거의 모든 생각과 말을 들이부은 드라마다. 어떤 연애는 특별해 보이고, 어떤 연애는 식상해 보인다. 연애하는 당사자에겐 세상 모든 게 다 특별해 보이지만 한 발 떨어져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면 모든 연애는 다 장단점이 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의 어떤 부분에 공감하고 어떤 부분에 실망한 것일까?


<멜로가 체질>  주인공 세 명은 모두 갓 삼십에 접어든 여성이다.

첫 번째 주인공 임진주(천우희)는 십 년 가까이 사귀다 헤어진 연인과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여러 차례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한다. 그 과정 끝에 완전히 질려버려 이젠 정말 남이 됐다고 생각했는데도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나니 생각이 많아진다. 하지만 이런 애매한 감정은 손범수(안재홍)가 나타나면서 자동 종결. 가장 평범한 연애 서사인 만큼 가장 달달한 역할을 맡게 되는 커플인데, 시종일관 여주가 아깝다는 반응이 많았다.(그런데 주위에 보면 안재홍 좋아하는 여성들이 제법 많더라.)


두 번째, 황한주(한지은)는 자타공인 퀸카. 언제나 주변에는 작업을 거는 남자들이 한가득. 그 어떤 작업남에게도 냉랭한 태도를 보이다 정작 시답잖은 개그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고, 개그로 다가왔던 사람은 어느 날 개그처럼 이유 없이 떠나버린다. 그리고 버려지듯 남겨진 한주는 이십 대 초반에 애엄마가 되어 생계에 대한 고민과 청춘을 맞바꾼다. 너무 착하고 사랑스럽지만 백치미가 다분한 캐릭터인데 작가가 여자였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캐릭터다. 남성 판타지가 투영된 캐릭터란 느낌. 


세 번째, 독립영화감독 이은정(전여빈)은 주인공 셋 중 가장 가치지향적 삶을 사는 캐릭터다. 영화를 만든 과정에서 만난 연인 홍대(한준우)는 일생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소울 메이트. 그런데 극초반에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다. 죽은 연인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은정 앞에 홍대는 환영으로 나타나고, 은정은 몇 년을 그 환영과 동거하며 살아간다. 


이 외에도 다양한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퀴어 커플도 나오고, 중년의 연애 이야기도 나온다. 


내 경우엔 가장 고통스러운 사랑에 끌렸다. 시종일관 이 세상에 없는 연인의 환영과 대면하는 사람의 결말이 무엇일까 궁금해서 드라마를 봤다. 도대체 저 지옥 같은 삶을 살면서도 저 사람을 버티게 하는 힘이 뭔지, 그 환영을 떨쳐낼 수는 있는 건지, 그 환영을 떨쳐낸 후에는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는 건지 궁금해서 드라마를 봤다. 


영화 <극한직업>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이병헌 감독은 개그에 대한 강박증이 있는 게 분명하다. 모든 순간을 웃겨야 한다는 강박. 매회마다 개그코드가 난무하고 대사가 너무 많아 종종 감정이입에 방해가 된다. 일부러 거리두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자주 짜증이 났다. 매 장면을 특별하게 만들어 버리려고 에너지를 너무 써서 역으로 불필요한 치장처럼 느껴지는 장면들이 많다. 왜 저 순간에까지 웃기려 드는 거지 싶은 장면이 많다. 아무리 삶이 어떤 순간에도 희극적인 요소를 품고 있기 마련이라지만 어떤 장면들은 너무 인위적으로 느껴졌다. 이야기와 캐릭터가 분리되어 붕 떠 다닌다. 


그런데도 드라마를 끝까지 봤다. 드라마를 끝까지 본 건 다큐 감독 때문이었다. 드라마가 픽션인 줄 알아도, 그 이야기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이상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는 그 시간들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궁금했다. 그 다큐 감독의 미래가 불안하면서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었다. 그 응원은 일정하게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므로. 내가 상상할 수 없는 해법을, 내가 상상하지 못해는 미래를 그려주기를 바랐다. 우리는 언제나 삶의 의미에 대해 목마르니까.  


아쉽지만 드라마는 끝내 밑도 끝도 없이 펼쳐놓은 상상력을 감당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드라마를 보며 순간순간 위로가 되었다. 어차피 해법은 없겠지만 그 순간순간의 힘으로 또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이 드라마는 단점도 많지만 매력적인 캐릭터 하나로 끝내 완주한 케이스다. 이 엄청난 실패 후에도 이병헌 감독은 드라마를 다시 하고 싶을까? 만약 그렇다면 ppl을 많이 따내서 작위적인 장면 분량만큼은 조금 줄였으면 좋겠다. 이병헌 감독이 만든 드라마가 나온다면 또 보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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