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은 친구 말대로 조금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아주 재밌게 읽었다. 김애란에 대한 편애, 성장소설에 대한 선호(죽음과 대면하는 성장소설이라니..), 어쩐지 최근에 가까워진 병/몸/죽음과 같은 단어에 대한 궁금증.
어릴 적부터 잔병치레가 거의 없었고 입원한 경험도 없다. 그냥 건강한 몸을 믿는 편이었고 대체로 알아서 회복했다. 약도 거의 먹은 적이 없었다. 감기에 걸리면 일부러 약을 안 먹기도 했다. 주로 이열치열로 이겨냈다. 두툼한 옷을 입고 보일러를 빵빵 틀고 이불은 잔뜩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자고 일어나면 나았다.
자전거를 타면서 크고 작은 사고가 여러 번 났는데 그 중에 두 번 정도는 꽤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 때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고 다시 몸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암벽타기를 배우며 이유 없이, 즉 별다른 부상 없이 인대와 힘줄이 아프기 시작했는데 모두 자전거 사고가 났던 부위였다. 오른쪽 손목은 8년 전, 왼쪽 어깨는 4년 전. 이전과 달리 몸은 더디게 회복되었고 병원 도움 없이 잘 낫지 않는다. 거기에 치아교정을 시작했고 며칠 전 시술받은 어금니 뼈이식과 임플란트 때문에 종일 두개골이 울린다. 예전에 엄마가 임플란트 하고 와서 한 달 내내 앓는 소리를 하며 차라리 빼버리자고 화낼 때마다 으레 하듯 투정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몸도 성치 않은 엄마에겐 상당히 고통스러웠을텐데 라는 생각을 이제서야 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여러 경험을 통해 깨닫고 보니 나는 그냥 건강하지 않은 상태를 매우 두려워하는 거였다. 사람의 몸은 어느 순간 이후부터 계속 닳아져 사라져 가는 것이고, 단지 사람에 따라 그 속도를 조절할 수 있을 뿐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의사가 그랬다. “인대나 힘줄은 다치면 재생이 되지만 점점 재생력이 떨어진다. 재생되는 총량에 한계가 있다. 그걸 계속 소모하며 사는 거다. 그러니까 아껴 써야한다.” 가끔씩 스스로 내 몸을 통제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내맡길 수밖에 없을 때 막연한 두려움과 무력감이 밀려온다.
기본적으로 글재주가 뛰어난, 즉 말을 자유롭게 가지고 노는 소설이 좋다. 김애란이야 원래 그런 작가인데 이 소설은 대놓고 오글거리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작가가 평소에 아껴두었던 주옥같은 문장들을 작정하고 다 쏟아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멈칫 멈칫, 눈시울 붉혀지며, 가슴 쿵 하는 문장이 많았고 되새김질을 하려고 접어둔 페이지가 제법 많았다. 그런데, 그래서 조금은 동화처럼 혹은 환타지처럼 느껴졌다.
상황 자체가 참 가슴 아픈 상황이지만 시종일관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언제든 감동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건 보통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고통 속에서도 항상 초롱초롱 빛나기란 힘든 일이다. 가족 중에 누군가 오랫동안 아프면 감동보다 상처가 더 많다. 아니 나중엔 상처랄 것도 없이 무한 반복되는 상황 속에 무뎌지고 지쳐가기 마련이다. 병원을 묘사하는 대목들은 그래서 부쩍 더 공감이 가기도 했다. 또 현자의 격언처럼 난데없이 툭툭 쏟아지는 문장들은 참 읽기 좋았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들.
세상에 육체적인 고통만큼 철저하게 독자적인 것도 없다.
부모는 왜 아무리 어려도 부모의 얼굴을 가질까? 자식은 왜 아무리 늙어도 자식의 얼굴을 가질까?
나는 내게 몸이 있단 사실을 깨닫는 데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
나는 그게 괜찮다는 건지, 괜찮아질 거라는 뜻인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인지 분간할 수 없어 한참 동안 두 눈을 끔벅였다.
엄마, 나는 ...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아요.
초록을 자빠뜨린 주황. 주황을 넘어뜨린 빨강. 바람은 조금씩 여름의 색을 벗기며 땅밑의 심을 앗아가고 있었다.
조금 약한 후반부는 어쩌면 죽음이란 게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무력감을 갖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주인공과 거짓으로 편지를 주고받던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마무리 지으려는건가 궁금했는데 아쉬운 채로 끝났다. 주인공이 부모님께 마지막 선물로 남겨준 자작소설은, 물론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냥 안 보여주는 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김애란이 썼으나 열일곱 주인공이 쓴 것처럼 조금은 다른 톤으로, 일부러 덜 잘 쓴(못 써도 안되니) 티를 내는 게 영 어색했다. 그래도, 역시 김애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