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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Mar 09. 2020

산 자들

죽은 것처럼


한국사회가 평균적으로 고통스러운 사회인가라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답할 것이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더 끌리는 나는, 아무래도 이 사회는 어쩐지 회색빛이라고 생각한다. 흑빛이 아닌 이유는 의지로 낙관하는 부분마저 놓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 사회는 여전히 희망적이거나, 충분히 행복한 곳이기도 할 것이다. 

어떤 경우든, 지금 여기에서 고통스러운 자가 누구냐고 묻는 것은 항상 의미가 있다. 이 사회가 충분히 고통스러운 곳이건 아니건 더 나아지기 위한 조건은 고통스러운 자들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 


여기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고통스러운 자들의 목록이 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 대기발령받은 노동자, 해고자, 자영업자, 철거민, 취업준비생, 인디뮤지션, 수험생...


여러 편의 단편 소설은 다시 자르기, 싸우기, 버티기라는 항목으로 분류된다. 노동을 매개로 먹고사는 문제를 기록한 10편의 소설은 지금 이 시대에 잘리지 않기 위해 싸우거나 그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버티는 일이, 또 그래도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잘려나가는 일이 일상임을 증언하는 현장의 기록에 가깝다. 해고자 이야기를 다룬 <공장 밖에서>를 읽으면 누구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떠올리고, <사람 사는 집>은 용산 철거민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현수동 삼국지>에 등장하는 빵집 사장님들은 자가 고용 노동자가 되어버린 자영업자의 현실을, <음악의 가격>은 실제 뮤지션유니온(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던 인디뮤지션들의 고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기자 출신 장강명이 잘 쓸 수 있는 소설. 


산 자들이란 제목은 자연스럽게 죽은 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직접적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자들이거나, 적어도 삶 자체가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자들의 이야기다. 따라서 산 자들은 죽지 못해 살거나, 혹은 겨우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다. 


조금씩 단골이 생겼다. 손님들이 빵 너무 맛있다고, 과자만 먹던 아이들이 이 집 빵을 먹고 피부가 깨끗해졌다고, 두 분 장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하면 순임은 헤헤헤, 웃기만 했다. 맞장구를 치거나 뽐내지는 않았다. 방정을 부리면 금방 불행한 일이 닥칠 것 같아 두려웠다.
그녀는 자신들이 마분지로 만든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사히 강기슭에 이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장강명 《산 자들》 중 <현수동 빵집 삼국지>, 122쪽


이들의 삶은 마분지로 만든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것처럼 위태하다. 이 위기는 특별한 어느 누구의 이야기라기보다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노동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 모두의 이야기다. 빗물에 흘러내린 수채화처럼 뭉개진 표지가 책을 펴기도 전에 고단한 삶을 전한다. 산 자들의 목록에 누구를 추가할 수 있을까? 당신은 그 목록으로부터 얼마나 빗겨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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