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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Jan 02. 2020

<골목식당>에 비친 한국사회 풍경

"포방터 돈가스집" 편을 보고

눈물겨운 포방터 돈가스집


포항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숙소에서 <골목식당> 포방터 돈가스집 편을 봤다. 

돈가스를 먹기 위해 전날 밤부터 줄을 서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맛있고 값싼 수제 돈가스를 만들고 파는 부부, 갑작스러운 인기를 시기나 하듯 민원을 넣어대는 인근 주민과 상인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의 난데없는 시비까지. "가만히 있으면 자꾸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는 남자 사장님의 말처럼 TV를 시청하는 내내 뭔가 애잔한 마음에 울먹울먹 하며 봤다. 


사연은 정말 눈물겨웠다. 1년 전 <골목식당>에 소개된 이후로 가게는 유명해졌고, 수많은 손님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그런데도 사장님들은 욕심내지 않고 가격을 그대로 유지했고, 새벽부터 일어나 수제 돈가스를 준비했다. 힘줄 제거와 고기 다지기로 시작하는 새벽의 망치질 소리는 손님을 대하는 사장님의 태도가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전날 밤부터 줄을 설 정도로 손님은 넘쳐나지만 음식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준비된 재료만큼만 손님을 받는 시스템도 여전했다. 


그런데 막상 포방터 돈가스집은 제주도로 떠나기로 결정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전날 밤부터 기다리는 손님들이 동네를 시끄럽게 한다며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편집을 보면 단순 소음으로 인한 민원뿐만 아니라, 미묘한 시기와 질투까지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이에 대해 검색해보면 온갖 가설들이 나오고 있으니 참고할 것. 방송에서는 무엇도 밝혀진 것은 없다.) 아무튼 사장님 내외는 그렇게 뼈 빠지게 일을 했고 가게는 떴고, 장사는 흥했으며, 팬덤에 가까운 지지자들이 생겼음에도 결과적으로 돈은 한 푼도 벌지 못했고, 1년이 지나 온갖 스트레스와 고민으로 정든 포방터를 떠나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결과적으로 돈가스집은 제주도로 옮겨가 장사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전한 돈가스집은 금세 명소로 소문 나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사장님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얻는 것만 같아서, 그리고 그 소박했던 마음이 끝내 보상을 받는 것 같아서 흐뭇했다. 그런데 보는 내내 감동적이면서도 비릿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모든 것이 행복하게 끝났으니 이대로 좋은 걸까?


감동적이지만 비릿한


<골목식당>을 본 적이 없다. 현재 예능 시청률 1위를 오가는 인기 프로고 수많은 화제를 뿌리는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이 프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유는 불편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자가 고용 노동자라 불리는 자영업자의 고통은 새삼스럽지 않다. 자영업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황인가를 나타내는 통계지표는 차고도 넘친다. 기사를 조금만 검색해봐도 이들의 현실이 어떤지 금세 드러난다. 



자영업자가 힘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영업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전체 취업자에서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율(무급가족 종사자까지 포함)이 OECD 국가 중 3번째로 높은 25%에 달한다. 이는 전체 시장 규모를 봤을 때 지나친 공급 과잉 상태다. 


여기에 높은 임대료, 프랜차이즈 갑질, 온라인 거래 증가로 인한 소비패턴 변화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자영업자 빈곤화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 이를 일시적인 정책으로 해소하기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심각하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은 임대료와 프랜차이즈 갑질과 같은 문제를 완화하고, 4대 보험 가입 확대 등 자영업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공급 과잉을 없애려면 좋은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늘려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불경기인 데다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릴 나누기 같은 사회적 해법에도 사람들은 무심하다. 이런 해법이 나오려면 재벌을 비롯한 기득권층에게서 세금을 엄청나게 늘려야 하고, 노동자 내부에서도 일정한 상호 이해와 양보가 필요한데 한국은 극단적 상호불신 상태에 놓여 있어 사회적 합의에 의한 해결책이 나오기는 요원한 상태다. 결국 이는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고, 정치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백종원의 <골목식당> 같은 프로그램이 자영업자의 구세주처럼 비치는 현실은 바람직한가? 거의 뼈를 갈아 넣을 정도로 일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한 화법이야 한국사회 어디나 과잉경쟁, 과잉노동 상태이기 때문에 포기해 버렸다. 그런데 백종원이 나서서 장사할 공간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그 어떤 해법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 환영할 만한 일인가? 이런 감동스토리 속에서 정작 우리는 자영업자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변화를 잊고 지내 온 것은 아닐까? 온갖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어 골목시장을 살리는 존재인지, 골목시장을 파괴하는 존재인지도 불분명한 백종원에 대한 열광이 불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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