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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Mar 16. 2020

<1917>  참호 안과 밖

두 개의 세계대전


한참 후에야 모든 것이 끝났다. 우리의 위치가 어디인지도 몰랐다. 얼빠진 독일 놈들이 우리 쪽으로 들어왔고, 우리 대위는 독일 참호로 들어갔다. 우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무엇을 위해 서로를 죽이고 죽는지에 대해 분노하고 역겨움을 느꼈다. 양 진영 모두 한 치의 땅도 더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참호전이었다], 자크 타르디, 서해문집


1차 세계대전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 민족주의 조직에 속한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면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어 동맹국인 독일이 전쟁에 합류했다. 세르비아 왕국을 후원하던 러시아가 참전하자 삼국협상(연합국)으로 묶여 있던 프랑스와 영국이 전쟁을 시작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자, 제국주의의 식민지 쟁탈전과 민족주의 발흥으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던 유럽 전체가 전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인도, 중동 등 전쟁을 거부할 선택권조차 없었던 식민지 민중이 의미 없는 전쟁에 동원되었다. 전쟁이 확장되면서 이탈리아, 일본, 미국이 연합국으로 참전했고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왕국이 동맹국으로 참전했다. 

1차 세계대전은 1918년 11월까지 계속되었고, 7천만 명이 참전하고 9백만 명 이상(군인 사망자수)이 사망하는 끔찍한 대재앙으로 마무리되었다. 

이탈리아는 삼국동맹을 파기하고 1915년 협상국으로 전쟁에 참가한다.


1917


독일은 동쪽으로 러시아와 서쪽으로 영국, 프랑스, 벨기에 연합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프랑스를 최대한 빨리 장악하고 러시아와 전쟁에 집중하겠다던 계획은 초반부터 무너졌다. 프랑스에서는 예상보다 진군이 늦어졌고 전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독일은 서부전선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참호를 파고 버티기에 들어간다. 이에 맞서 연합군도 참호를 파고 맞서게 된다. 일단 참호를 파자, 측면 공격을 피하기 위해 참호는 계속 길어졌고 결국엔 유럽 대륙을 종으로 나누는 거대한 선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전쟁은 길고 긴 교착국면에 빠져 들었고 무고한 살상은 계속되었다. 


영화 <1917>은 이 끔찍한 재앙의 한 복판에 놓인 참호에서 시작된다.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독일군이 참호를 비우고 후퇴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영국군은 이를 적절한 공격 타이밍이라고 생각하고 대대적인 돌격을 준비한다. 그런데 항공사진을 보니 이는 계획된 함정이었다. 전선을 살짝 뒤로 물린 후 공격을 유도한 후에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독일군이 비운 참호는 거대한 무덤이었다. 

공격 중지 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통신장비는 전투로 모두 마비 상태였다(당시는 대부분 유선 통신이었기 때문에 통신이 두절되는 일이 잦았다). 결국 사람이 직접 가서 공격 중지 명령을 전해주는 수밖에 없다. 무고한 1600명의 생명이 두 명의 병사(스코필드, 블레이크)에게 달렸다. 꼬박 하루, 전쟁터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14km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1차 세계대전의 참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참호 안, 1차 세계대전


에릭 홉스봄이 [극단의 시대-20세기 역사]에서 말했듯이 20세기 전쟁은 그 이전의 전쟁과 양상이 판이하게 달랐다. 규모(사망자수) 면에서 보자면 1위가 2차 세계대전, 2위가 1차 세계대전, 3위가 베트남 전쟁, 4위가 한국전쟁이다. (이는 통계를 내는 방식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는 한다.) 20세기 전쟁은 과학기술의 발전(대량살상 무기)과 근대 국민국가의 완성(총력전)이라는 토대 위에서 규모를 키웠다. 1차 세계대전은 그 시작이었다.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이었다. 


사람들은 해법이 없는 전선을 뚫기 위해 내달렸고, 전투를 한 번 할 때마다 시체가 즐비하게 쌓였다. 바닥에는 물이 고이기 일쑤였다. 심할 때는 참호 안에서 익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참호 밖에는 참호를 따라 길게 철조망이 늘어섰다. 사방에 포격으로 인한 거대한 웅덩이가 생겼고 물이 고였다. 참호 안이건, 밖이건 시체와 쥐들이 사방에 즐비했고 온갖 질병이 끊이지 않았다. 화학무기까지 사용되어 땅에도 물에도 가스가 스며들었다. 


교착상태가 지속되자 사람들은 이 전선을 유지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오직 전쟁광들만이 승리를 부르짖으며 무의미한 공격 명령을 내렸다. 이 정도 규모의 참호전은 유래가 없는 상황이라 어느 쪽도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정교함이 떨어지는 맹렬한 포격 뒤에 돌격. 기관총 난사와 흩뿌려진 시체들. 엄청난 물량을 쏟아붓고 사람의 목숨을 포기한 후에 고작 몇십, 몇백 미터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했다. 


그래서 아마도 2차 세계대전이 아니라 1차 세계대전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고 참호를 대면할 방법은 없다. 참호를 파괴할 충분한 기술적 해법이 나왔던 2차 세계대전에서는 인간의 얼굴이 사라지는 일들이 잦았다. 



반전평화주의,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


그 어느 전쟁이든 명분이 없는 전쟁은 없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 항상 반전 사상이 놓여 있다. 전쟁의 명분은 그저 정치인들과 전쟁광을 위한 것일 뿐,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안된다는 반전평화주의는 20세기 들어, 특히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하나의 체계화된 신념으로 발전했다. 

20세기 마지막 르네상스형 지식인으로 불리는 버트런드 러셀은 1차 세계 대전 중에 전쟁과 징병을 반대하는 글을 썼다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쫓겨나고,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원래 100파운드의 벌금형이 전부였으나, 버트런드 러셀은 저항의 의미에서 의도적으로 벌금을 내지 않고, 감옥을 선택했다. 헤르만 헤세는 독일의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평화주의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매국노라는 비난에 시달렸고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전쟁의 유일한 효용은 바로 사랑은 증오보다, 이해는 분노보다, 평화는 전쟁보다 훨씬 더 고귀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것뿐이다.

헤르만 헤세, 1914.11.03,  스위스 신문 《노이에 취리허 차이퉁》


평화주의는 양심적 병역거부 이어졌다. 그 이전에도 병역거부는 있었다. 하지만 이전의 병역거부는 대부분 종교적 이유에 국한되었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평화주의에 기초한 병역거부가 확산되었고, 이는 전쟁을 거부하는 적극적 실천으로 발전했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를 도입하는 국가들이 생겨났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1921년 네덜란드 빌토번(Bilthoven)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평화주의자들은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ar Resisters’ International)을 창설했다. 오늘날 병역거부는 UN이 인정하는 보편적 권리로 발전했다. 



참호 바깥, 2차 세계대전


1차 세계대전 때는 지금처럼 폭격기, 중전차, 정밀한 로켓, 벙커버스터가 없었다. 기술이 부족한 자리를 인간이 채웠다. 그러나 전쟁 가운데 살상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했다. 1차 세계대전이 지속되면서 정찰 목적으로 쓰이던 항공기는 조금씩 폭격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고 조직적인 항공부대 편성으로 발전했다. 뒤늦게 참전한 미국은 초보적인 형태의 전차를 사용했다. 화학무기도 등장했다. 이 모든 경쟁이 또 다른 참사(2차 세계대전)를 예비하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오랫동안 그 후과를 남겼다. 1차 세계 대전에서 살아 돌아온 징병자들은 대부분 전쟁 혐오증에 시달렸거나 혹은 함께 목숨을 건 용기로 살아남았던 체험으로 인해 야수적인 우월감-특히 여성이나 징병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을 느꼈다. 이들이 전후 극우 파시즘의 지지기반이 되었다. 히틀러도 1차 세계대전을 통해 탄생했다. 이들은 더 큰 전쟁을 준비함으로써 과거의 상처를 극복했다. 2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2차 세계대전에서 잘 알려진 '드레스덴 폭격'은 후에 병역거부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던 하워드 진의 저서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 잘 나와 있다. 하워드 진의 묘사는 전혀 끔찍하지 않다. 폭격수였던 하워드 진은 그 어떤 인간의 얼굴도 보지 못했으므로. 폭탄은 감정 없이 떨어졌다. 독일을 겨냥한다고 하지만 그 폭탄에 쓰러지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수천 미터 상공에서 단지 버튼을 누르면 그뿐이었다. 무모한 살상이었다고 말하면 한편에서는 '독일은 이보다 더 잔인하게 더 많이 죽였다'라고 응수했다. 


바깥을 상상하기 어려운 참호가 마지못해 1차 세계대전을 끝냈으므로 참호 바깥을 상상하는 순간 2차 세계대전은 시작된 것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는 희생된 사람의 1/3이 민간인이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이 수치가 2/3로 올라갔다. 대량살상이 쉬워지면서 전쟁은 점점 인간의 얼굴을 지워갔다. 그래서 영화는 1차 세계대전을, 그리고 참호전을 보여주려고 했을 것이다. 


 <1917>은 참호에서 시작해 참호로 끝나는 영화다. 참호 바깥은 다른 참호로 가기 위한 중간 여정이다. 주인공은 가장 잔혹한 로드무비처럼 참호 안과 밖을 끊임없이 내달린다. 그 과정에서 마주한 상황이 전쟁의 잔혹함과 무의미함을 소리 없이 웅변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잘 만든 전쟁영화는 모두 반전영화다. 전쟁은 문명화된 카니발리즘(Cannibalism, 동족 포식)이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전쟁으로 이득을 챙기는 자들이, 다시금 명분을 들이밀며 말한다. 이 전쟁은 정의롭고, 착한 전쟁이라고. 전쟁은 그저 과거의 일일 뿐이라며 그 감각이 무뎌져 갈 때 길게 늘어 선 참호가 말을 걸어온다. 세상에 착한 전쟁 같은 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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