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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Aug 28. 2019

불안감을 자극하는 수학용어

경제성장률 둔화, 지금대비 해야 한다 (20190826. 전라일보)

韓, 대내외환경 악화에 성장률 둔화 우려 (20190822. 동아경제)

금융硏 "올해 韓경제성장률 2.1% 전망"…석달만에 0.3%p 하향 (20190813. 연합뉴스)


경제 관련 뉴스를 보다 보면 '경제성장률 둔화'와 같은 표현을 많이 볼 수 있다. 둔화라는 말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어서 그 자체로 불안감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는 거 아냐? 살림살이 더 팍팍해지는 것 아냐? 즉각적으로 이런 반응이 나오게 되어 있고, 실제 대부분의 기사는 독자로 하여금 불안감을 자극할 목적으로 이 워딩을 자주 가져다 쓴다. 둔화라는 말을 듣고 있으면 뭔가 퇴보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심지어는 마이너스 성장을 의미한다는 착각까지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모든 세상이 영원한 성장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경제학자도 아니고, 경제에 사정이 밝은 사람도 아니어서 경제성장률이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목조목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냥 내가 가진 상식 수준에 수학적 지식을 덧대어 몇 가지 기본적인 고민을 던져보려고 한다. 


경제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2.5%에서 2%로 떨어졌다고 하자. 경제성장률이 둔화되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경제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이것이 엄청나게 큰 위기인 것처럼 말을 하지만 현실은 지금도 경제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경제규모가 계속 성장하면 전체 파이가 커지는 것이기 때문에 똑같은 성장률이라 하더라도 성장량이 완전히 달라진다. 무슨 이야기냐?


가령 지금 경제규모가 100인데 2% 성장한다면 경제규모는 102가 된다. 즉 2만큼 양적 성장이 이루어진다. 

가령 지금 경제규모가 1000인데 2% 성장한다면 경제규모는 1020이 된다. 즉 20만큼 양적 성장이 이루어진다. 


경제성장률이 일정해도 경제규모가 계속 커지면 증가량이 점점 커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제규모가 계속 커지는데 경제성장률이 일정하게 계속 유지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경제성장률이 일정하게 지속되면 


경제규모가 무한대로 뻗어나가게 된다. 가령 경제성장률이 2%를 유지한다고 하자. 현재 경제규모를 A, n년 후 경제규모를 f(n)이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관계식이 성립한다.  


이 상태에서 경제규모가 두 배로 커지는 데는 대략 230년 정도가 걸린다. 한마디로 지금과 같이 2%로 지속적으로 경제가 성장해도 230년 후에는 경제규모가 두 배로 커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최근 중국이나 과거 한국같이 10%씩 성장하는 초고도 성장기가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는 25년이면 경제 규모가 두 배로 커진다. 25년 마다 경제 규모가 두 배씩 커진다고 상상해보자. 2, 4, 8, 16, ... 100년 후면 경제규모가 16배로 커진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과연 이 세상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각자의 상상에 맡기기로 하자.


속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경제성장률이 일정하게 유지되면 경제규모는 무한대로 뻗어나가게 된다. 이것이 인류가 필멸하는 길임은 부정할 수가 없다. 이미 기후변화를 비롯한 생태계 파괴가 심각한 수준이다. 지금처럼 전세계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성장에 열을 올리는 사회는 스스로 위기를 확대시키고 있는 샘이다. 끊임없는 성장을 전제로 하는 경제모델은 언제가 거대한 재앙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 재앙은 온전히 인재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끓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죽어가고 있는데도 고통을 모르는 처지일 수도 있다. 


불안감을 자극하는 수학용어의 남용


세계 부동산시장 변곡점…`안정성·투자다각화·선택과 집중` 화두(20190329. 매일경제)

변곡점에 선 증시…"지금은 증시서 발 뺄 때 아니야" (20190606. 한국경제)

미국 경제마저 꺾이나? … 10년 ‘나홀로 호황’ 변곡점 다다를 듯 (20190106. 중앙일보)


마찬가지 맥락에서 사람들의 불안감을 자극하는데 남용되고 있는 수학용어가 '변곡점'이다. 변곡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골짜기가 변하는 점이다. 수학에서는 볼록성이 바뀌는 점을 의미하는데 무슨 의미인지 그래프를 통해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위 그래프는 해마다 경제규모가 두배씩 늘어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일정하면 그래프 모양은 이와 대동소이한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 상황을 표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처럼 단지 경제규모가 증가하는 게 아니라 증가량 자체가 또 증가할 때 이 그래프를 아래로 볼록이라고 부른다. 위 그래프는 직관적으로 '아래로 볼록'하게 보인다. 다음과 같은 그래프는 전부 아래로 볼록한 그래프다. 

이와 정반대인 경우, 즉 함숫값이 증가량이 감소할 때 이 그래프를 위로 볼록이라고 부른다. 표로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이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모양이 된다. 

다음과 같은 그래프는 모두 위로 볼록인 그래프들이다. 

자 이제 마지막. 그럼 변곡점은 뭐냐? 그래프가 아래로 볼록에서 위로 볼록으로 혹은 위로 볼록에서 아래로 볼록으로 바뀌는 점을 변곡점이라고 부른다. 다음과 같은 경우가 모두 변곡점에 해당한다. 



'변곡점에 선 한국경제' 이런 말을 들으면 한국경제가 대단히 큰 위기에 봉착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기사에 사용되는 변곡점이란 용어는 패턴이 뭔가 긍정적인 방향에서 부정적인 방향으로(혹은 그 반대로) 바뀐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런데 왼쪽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다가 다시 낮아질 때, 하지만 여전히 경제규모는 계속 성장하고 있을 때도 변곡점은 존재한다. 즉, 변곡점의 존재 자체가 위기인 것이 절대 아니며 동시에 변곡점의 존재가 성장이나 마이너스 성장으로의 변화를 의미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 일상에는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막연히 불안감을 자극하는 비유로 사용되는 수학용어들이 있다. 이들은 이미 본래의미와 다르게 사회적 맥락을 가미한 관용어구가 되어 그 자체로 어떤 뉘앙스를 풍긴다. 사람들은 기사를 읽으면서 본래 의미나 정확한 데이터를 알지 못해도 어떤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정말 이러다 마이너스 성장이 필요한 시대라도 오면 어떻게 될까? 한없는 성장을 전제로 하는 이 불안감 이면에 정말 커져가는 본질적 위기가 따로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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