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갓 입학해, 걸어가는 발자국마다 삐약 소리가 날 것처럼 가볍게 보내던 날이었다. 의미 없이 쓰고 다니던 안경 콧대가 갑자기 떨어져 나갔다. 내게 안경이란 사실 세상을 조금 더 멀리서 보는 도구에 그치나, 콧대가 떨어져 나간 안경이 불안정한 게 싫어 안경점을 찾아 나섰다.
그때의 나는 외로움을 맞닥뜨리기 싫어 의도적으로 깊은 사유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날, 낯선 공간에서 낯선 이에게 받은 위로. 안경점에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으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서울이라는 공간에 동떨어져있던 나를 위로해 준 낯선 안경사.
자그맣고, 포근한 공간이었다. 나무로 된 장식장들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구식으로 보이진 않았다. 공간의 한가운데에 서있던 안경사는 들어오는 이를 맞이하기 가장 편한 자세로 나를 맞았다. 내 안경을 맡기고, 잔잔하고 소소한 대화를 시작했다.
어떻게 안경을 처음 쓰게 되었는지, 어쩌다가 안경 콧대가 갑자기 떨어져 나갔는지, 이럴 땐 어떻게 하면 되는지. 조그만 드라이버를 꺼내, 잘 보이지도 않는 나사를 슥슥 돌리는 안경사의 손길을 보며, 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사실 서울에 오기 전까지 내 안경에 관심을 가져주던 건 아빠였다. 조금 삐뚤어진 것도, 손자국이 남은 것도 나보다 더 빨리 알아차리고 금세 원상태로 돌려놓곤 했다. 아빠가 부재한, 어딘가 동떨어진 서울에서, 콧대가 떨어져 나간 안경은 갑자기 한순간에 내가 정말 홀로임을 인지하게 했다.
수리는 금방 끝났다. 그리고 마지막에, 안경사는, 아빠가 그립겠네, 했다. 안경점 이름이 적힌 안경 닦이와 함께 조그만 드라이버, 명함을 함께 내밀며 앞으로도 이런 일 있으면 또 자기를 찾으라 하던 손길. 바로 그 손길에서 낯선 위로를 받았다. 단순히 대가를 받지 않고 수리를 해준 것을 넘어, 그가 건넨 말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깊이 남겨졌다. 서울이라는 낯선 동네에서 살아가도록 도와준 버팀목이 되었다. 한동안 계산하고, 쌓아가는 관계 속에서 알게 모르게 실망하던 중이었기에 무언가 대가를 주지 않았음에도 받은 위로가 반가워 울컥했다.
그 이후로 안경 수리를 할 일은 없었다. 나는 노트북을 붙잡고 사는 사람이 되어 눈이 더 나빠졌고, 새로운 안경을 맞췄다. 이전보다 더 두터워진 안경알은 상처 받기 전에 미리 사람들을 밀어내는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함께 주셨던 드라이버는 어디 갔는지 행방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갑 한구석에 여전히 명함만은 남아있다. 명함을 넘어, 위로가 되어있다.
낯섦 속에서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