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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 Jul 13. 2021

모래

기억도 안 나는 어렸을 적, 모래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발바닥에 모래가 달라붙는 게 싫어 모래사장에 내려놓자마자 방방 뛰며 안아달라고 울었다고 한다. 그러다 물에 젖은 모래에 닿게 놓아주면 그건 또 아무렇지 않아 했던 나. 딱딱한 곳에 발을 내딛는 두려움을 겨우 이겨낸 어린 나에게 밟으면 흩어져 버리던 모래는 공포였던 걸까.


어려운 날들 위를 걸어 나가다 보면 내가 밟고 있는 게 모래라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열심히 밟다 보면 딱딱해지거나, 높이 올라가야 하는데, 밟아도 밟아도 남는 게 없는 듯한 기분. 그럼에도 이제는 내 눈을 가리고 안아 올려 줄 사람도 없고, 내 앞길 모래에 물을 뿌려 단단하게 만들어줄 사람도 없다.


흩어지는 모래들에 파묻혀 오히려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려진다. 그리고 밟으면 밟을수록 내 발에 남는 잔상도 더욱 커져서 다음 발걸음 내딛기 무거워진다. 꺼슬꺼슬한 부스러기들은 물놀이가 끝난 후에도 한참이나 몸 이곳저곳에 남아있다.


발을 내딛는 게 무서운 날은 여전히 있었다.

느끼지 못했던, 생경함 속에서,

그저 눈 가리고 아웅 하고 싶은 날은 여전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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