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멘솔로숀 Mar 13. 2024

육아동지의 입원

대행사 다니는 쌍둥이 엄맙니다

 남편의 두 번째 뇌졸중이다. 6년 전과 같은 병원에 같은 병실, 이제는 익숙한 얼굴인 담당 교수님이 들어오며 ‘외래 오는 환자가 입원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잠깐 저랑 사진 좀 보시죠.’ 라며 집중 치료실 중앙의 모니터가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 1월에 검사했을 때 경과가 좋아서 이제 3년에 한 번씩 보자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이번엔 다른 혈관이에요. 고비는 지난 것 같고, 이 부분이 찢어진 것 같아요. 지금은 혈관이 부어오르지 않기를 바라면서 약을 쓰는 것 밖엔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잘 지나갈 가능성은 한 40프로 정도, 혈관이 부어오를 가능성은 음 한… 20프로 정도. 혈관이 부어올라서 이 부분이 막히면 나오는 증상은 이런 것들.. 그리고 혹시 모를 가능성 때문에 오늘 밤에 검사 한번 더 할 거예요. 12시. 급하게 부탁했는데 나와서 봐주신대요 우리 병원에서 제일 잘 보시는 분.‘


 고비는 지났다니 안심이었지만. 혹시 모른다는 증상을 들었을 땐 몸에 짜르르하게 전류 자극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면담을 마치고 누워있는 남편에게 갔더니 남편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바위 같은 매력이 터지는 사람인데 이번만큼은 무섭고, 억울하고, 살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아니 그건 보는 내 마음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될 것 같다고 해?'라고 묻기에 더 나빠지면 음식 삼키는 게 어려울 수도 있다는. 들은 것 중 가장 양호한 후유증 하나를 알려줬다.


 그런데 오늘 식사 잘했고 잘 삼켜졌으면 됐다. 고비는 지났고. 팔, 다리 감각이 떨어진 건 젊어서 재활하면 돌아온다드라. 뇌경색 두통이 엄청 힘들다던데 잘 버티고 있다. 그런 말을 하며 시술도 못하고 그저 지나가길 기다릴 뿐인 그 시간을 또 기도로 내려놓고 내려놓았다.


 남편을 집중 치료실에 두고 돌아가는 나에게 담당 교수님은 남편이 외래 진료 때 쌍둥이 낳았다는 얘기를 했었다며 지난번에도 잘 이겨냈지 않냐.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덧대어해 주셨다.



 

 아이들은 내가 일어날 이유였다.


 남편은 입원했지만 아이들의 일상은 바뀌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 잘 잤어? 아침이야!’ 인사해 주고 재빠르게 거실로 튀어나가 소파에 앉아서 유튜브에서 ‘헤이지니’ 틀어달라고 주문한다.


 유치원 새 학기 전  짧은 봄방학이 시작됐다. 나도 휴가를 내고 아이들과 온전히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아가들은 먹을 걸 달라고도 하고, 배불리 먹으면 물 달라고 하고, 좀 심심하면 밖에 나가자고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슈퍼 좀 다녀오려면 한 세월이었는데 이젠 킥보드를 제법 탈 줄 알아서 내가 빠른 걸음으로 쫓아가야 할 판이다.


 우울한 마음은 굴러 떨어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걸 들여다보고만 있으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하는데 아이들은 적어도 기분이 굴러 떨어질 시간을 주지 않았다


 6년 전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남편이 같은 증상으로 입원했을 때에 나는. 심각하게 못 먹고, 못 자고 예민했다. 보호자가 주치의 회진 때 치료 계획을 듣다가 기절할 정도였다. 남편이 없는 집에 들어와 혼자 자는 게 싫어서 안방엔 들어가지도 않았다. 궁상맞게 거실에 요가매트 하나 깔아놓고 거기서 티비보고 거기서 누워 잤다. 친정에 가서는 소파에서 웅크리고 자니 우리 엄마 아들이 천적인 내 다리를 주무르며 누나 불쌍하다고 했더랬다.


 그런데 이번엔 아가들 먹다 남은 밥이라도 먹고, 아가들 재울 때 피곤해서 까부러져서라도 몇 시간씩 잤다. 남편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서 면회 갈 때 아이옷을 지퍼백에 담아 갔다. 옷 냄새 맡으면 기분이 좀 좋아질까 싶어서. 그 불안한 상황에서도 아이들과 통화할 때는 웃었다.


 아이들은 평소보다 나를 자주 안아줬다. 잘 때면 내 명치 위에 단풍잎만 한 손을 올려놓고 나를 토닥였다

정신없는 사이 내 표정이 무거워지는 순간에도 강아지처럼 볼에 침을 한가득 묻히며 뽀뽀를 갈기기도 하고. 매달리고 끌어안고 나를 넘어뜨려서라도 자기를 보라고 눈을 맞췄다.

 

 당시 SNS 알고리즘에 김창옥 강사의 토크 콘서트 짤이 떴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사람의 슬픈 기억은 근막에 저장되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근육이 굳는대요. 반면에 하루에 열다섯 번 정도 안아주면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녹는다고 합니다. 많이 안아주세요.‘


생각해 보면 아빠가 병원에 있는 동안 아가들은 감사하게도 그동안 달고 살던 그 흔한 코감기도 앓지 않고 매일 나를 열심히 안아줬다




 집중 치료실에서 첫 번째 면회를 마치고 막막한 심정으로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지하층 안내에 Prayer room이라고 쓰여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층 버튼을 눌렀다.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복도 끝에 불교, 천주교, 기독교 순서로 사무실이 있었다. 기독교 사무실이 비어있어서 열린 문 사이로 안을 잠시 들여다보고 돌아가려는데 천주교 사무실에서 수녀님이 나오셨다


 - 개신교?

라고 물으셔서 그렇다고 했더니 작은 예배실로 길을 안내해 주셨다. 수녀님을 따라 ‘개신교’ 예배실로 가는 기분이 묘했다.


 평일 오후의 예배실에는 목사님, 전도사님, 입원한 환자의 보호자 한 분이 있었다. 내 기도 카드를 받으신 목사님이 남편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데 그때 처음 마스크에 물이 고일 정도로 울었다. 다 버틸 수 있을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나도 모르겠으니 하나님 이거 어떻게 좀 해주세요. 그런 기도였다.


 다른 누구에게 기대도 너무 마음이 아팠던 상황이라 나는 모두에게 씩씩하고, 그 기도에 기대서 울었다.


주일 면회시간 때문에 병원 교회 예배에 한 번 더 갔을 때 전도사님이 나를 보더니 마치 스파이에게 암호를 묻듯


- 뇌졸중 집중치료실?이라고 하기에

- 네 그 환자.라고 대답했다.

  

 예배를 마치는 기도에서도 목사님은 ‘뇌졸중 집중치료실’에 있는 우리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 주셨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천주교와 개신교가 섞여있는 친구들과의 카톡방에 ‘오빠 뇌경색으로 집중치료실. 기도 많이 해줘‘ 라고 올렸다. 30대 들어서 돌아가며 힘든 일을 겪었던 친구들은 정말 기도로 ’ 배수의 진‘을 치며 함께 억울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나누어 주었다.


나랑 맨날 싸우고 화해 안하는데 같이 노는 친구의 카톡


 남편은. 그다음 면회 때는 초코 우유가먹고 싶다고 하고, 그다음 면회 때는 디카페인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먹고 싶다고 하면서 내 눈을 흘기게 하더니. 정말 빠르게 건강을 회복해 나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덕질 중에 최고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