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제안

by 재은

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부터 아빠는 말했다. "재은아, 우리 가게 차려볼까? 아빠와 딸 컨셉으로 떡볶이집 있던데 우리는 치킨 어떠냐?" 아빠의 은퇴와 나의 졸업 시기가 겹치면서 '재은이랑 하면 뭔가 될 것 같은데. 같이 해볼까' 제안이 번번이 이루어졌다. 치킨에서 피자, 분식, 카페… 종목이 바뀌는 거 말고는 가게를 내자는 말을 두 달에 한번 꼴로 듣고 있다. 아빠는 은퇴 후 지금도 계약직으로 근무 중이다. 올해가 직장을 다니는 마지막 해라고 했다. 경제적 불안은 가게를 차리면 해결된다고 기대하시나 보다. 나는 콧방뀌를 뀌다가 최근에 회사를 그만두고 아빠 제안에 혹했다. 고정적으로 출근하는 곳이 없어지니 괜한 공허함이 몰려오던 차였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가게를 여는 건 우리 몫은 아니다.


우선 굳이 우리가 하지 않아도 가게가 차고 넘친다. 번화가를 걷다 보면 요란한 간판에 눈이 아프다. 동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파트 사이에 있는 빌딩엔 온갖 매장이 가득 찼다. 게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곳도 많아서 자주 가던 빵집이 언제 있었냐는 듯 새로운 간판을 걸었다. 한국은 전체 자영업자 547만 명, 1년에 100만 명이 창업하고 80만 명이 폐업하는 세계 1위 '자영업 공화국'(한겨레 2019.03.25)이 맞다. 인생 2막이랴 청년창업이랴 홍보하지만 안전망은 찾아보기 어렵다. 임대료도 무시할 수 없다. 친구가 강남의 한 카페 매니저인데 한 달 임대료가 1500만 원이라고 했다. 도대체 점포를 내면 누구에게 이익인가. 땅을 가진 사람들만 배부른 구조이다.


또한 카페 알바를 한 달째 하면서 장사는 피곤하고 고독하다는 걸 알았다. 남들 휴일일 때 출근한다. 일주일 내내 꼼짝없이 자리를 지키며 별 사람을 다 만난다. 반말로 주문하는 사람에 욱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나에게 고민상담을 하는 손님을 만났다. 내가 무슨 책을 읽는지, 휴일에 뭐하는지를 묻다가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를 토로하기 시작했다. 당황했지만 다른 손님이 오지 않는 이상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맸다. 그녀의 이야기를 언제까지 들어야 할지 가늠하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커피 내리기와 청소는 어렵지 않다.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에 에너지를 얼마나 많이 뺏기는가. 알바가 끝나면 녹초가 된다. 시급 8350원은 터무니없이 적다. 해보지 않고는 몰랐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장사하기엔 무른 성격을 지녔다. 아빠는 홀로 붕어빵이나 꽈배기 파는 사람을 보면 꼭 사야 하는 성격이다. 몸에 안 좋고 살찐다고 타박하면 "저 사람들도 살아야지" 말한다. 아빠는 거절을 못 해서 보증서고 돈을 날린 적이 있다. 나는 장사란 잇속에 밝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리하게 상대 돈을 챙길 수 있어야 오래 장사한다. 나는 아빠를 빼닮았다. 장사를 잘하는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친구들이 오면 속절없이 퍼줄 것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도, 저것도 먹어봐." 지금도 알바하는 카페에 친구들이 놀러 올 때마다 곤혹스럽다. 날 보러 왔으니 뭐라도 사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무엇보다 사 먹을 줄 알지 만드는 건 못한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어보라 권하는 것도 긴장되는데 판매한다고 생각하면 속이 타들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장사와 맞지 않다. 사실 가게를 여냐, 아니냐는 부차적인 선택일지 모른다. ‘직장에 가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질문이 남는다. 일하지 않는 다른 시간을 상상할 수 없다. 35년 넘게 직장을 다닌 아빠가 은퇴를 하고도 다시 자영업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가끔 근심 어린 표정으로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신다. 나 역시 6년간의 직장생활을 멈춰보니 그 불안을 조금 알겠다. 빈둥대는 시간을 보내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초라해진다. 주변 사람들은 바삐 걷는데 혼자만 뚝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가게 오픈을 준비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삶을 풍요롭게 가꿀 수 있을지, 잘 쉰다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