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은 목동아파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살다 보니 눈을 감아도 동네가 선명하다. 목동아파트는 아빠가 어린 시절 살던 동네이기도 하다. 나는 종종 아빠와 뒷산을 산책한다. "여기는 원래 논이었고, 이 길을 따라 학교에 걸어갔어. 학교 앞에 고구마 밭이 있었는데 말이야." 길을 걷다 보면 아빠의 어린 시절이 펼쳐진다. 곳곳에 아빠가 녹아있다. 고향이란 이런 거겠지, 나도 언젠간 이 길을 걸으며 아빠와 나눈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줄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파트가 세워지긴 했지만 흔적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흔적은 뿌리가 된다. 그런 뿌리가 모두에게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런 목동아파트가 30년이 되어 낡고 불편해지자 재건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세 가지 입장이다. 첫째, 주차난이 심각하다. 지상주차장에만 세우다 보니 차 세울 곳이 부족하다. 단속이 없는 밤이 되면 아파트 주변은 자동차 띠가 형성된다. 둘째, 아파트 바닥에 매립한 배관 수명기간이 지나면 건물을 헐고 새로 지어야 한다. 셋째, 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 물량이 부족해진다. 결국 지하 주차장을 만들고 배관을 정비하여 초고층으로 짓자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거래가 위축된 탓에 서울 아파트 값이 25주째 하락세인 가운데,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은 4주 연속 올랐다.(2019.05.12. 조선비즈) 내가 살아가는 터전을 중심으로 어떤 욕망이 작동하는가.
모든 소비에 따른 인프라를 구축하기엔 이미 포화상태이다. 한 집당 소유하는 차를 수용하려면 땅이 남아나지 않는다. 생태잡지 <작은것이 아름답다>에 따르면 1980년대에 건설된 아파트 녹지율이 40퍼센트를 넘는다. 전국 재건축 아파트 도시 숲을 합하면 작은 국립공원 1개 넓이 거대한 숲이 사라지는 셈이라고 한다. 오래된 아파트 숲은 도시민의 휴식, 아름다운 경관, 야생조류의 서식공간, 도시를 시원하게 하는 찬 공기 생성과 바람길 같이 도시 기후를 조절하며, 도시를 생태적으로 안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2017년 12월 호) 지하가 주차장이 되면 식물은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다. 주차장을 만들 것이 아니라 차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좋은 삶은 무엇인가. 그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질문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또한 '좋은 삶'이 가능하려면 그에 맞는 기술 발전이 필요하다. 첨단 기술은 앞다투어 소개된다. 배관을 교체하려면 왜 건물을 다 헐어야 하는지, 그러지 않고도 교체하거나 보완하는 기술은 없는지 묻고 싶다. 접히는 폴더폰,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VR 같은 것은 부차적이다. 내 속도로 살아가려면 기술은 새롭고 참신한 무엇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다. 손 때가 묻어 애정이 깃든 것들을 고쳐 쓰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집도 마찬가지이다. 집은 단순한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음을 놓고 쉴 수 있던 곳, 그때 나의 시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이 헐려서 사라지지 않도록 오래 이어지는 기술이 발전되어야 한다. 헐고 짓고, 버리고 소비하는 삶은 지속하기 어렵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우리에게 어떻게 다시 돌아오는지만 알아도 쉽게 헐고 버릴 수 없다.
마지막으로 도시에 인구가 늘어 수요에 맞는 공급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인구수는 날로 감소한다. 2만 명이 살던 토지를 5만 명이 살 수 있게 재건축한다고 해서 신생아가 급증하지 않는다. 신생아 출산율은 2017년에 40만 명이었으나, 2019년에는 20만 명대로 내려간다고 우려한다. 신생아 수가 빠른 속도로 감소한다면 전체 인구수도 곧 감소 추세로 바뀌어 명실상부한 인구감소 시대에 들어선다. 인구감소의 직격탄은 지방이 먼저 맞게 될 것이고, 지방 소멸은 눈앞의 현실이 될 것이다. (한겨레 2019.01.02) 수도권을 중심으로 신도시를 개발하고 서울의 노후화된 아파트를 재개발하는 데에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지역과 도시가 고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획일화된 개발은 유효하지 않다. 지역 특성에 맞는 움직임이 번져야 사회는 풍요로워진다. '좋은 사회'에 대한 질문을 놓쳐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