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스페인의 플라멩고가 있다면
아르헨티나에는 이 탱고(땅고)가 있다.
여인의 향기에서 두 사람이 음악에 맞춰 추는 이 장면
언제 보아도 기분좋다.
음악 원제는 por una cabeza란 간발의 차이라는 곡이다.
경마에서 간발의 차이로 승부가 갈리듯
연인들의 관계도 간발의 차이로 사랑을 혹은 이별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란다.
"(중략)모든 슬픔을 지우고 쓰라림을 가라앉히겠네"
알파치노와 여인이 초반보다 격정적으로 추는 순간
음악은 실연의 아픔을 달래는 마지막의 가사를 담고 있더라.
기여코 이 음악이 나를 흔들었다.
춤을 배우기로 한 것이다.
그것도 에어로빅이나 왈츠도 아닌 탱고를
" 탱고????"
나의 수강신청에 모두들 놀라고 우스워하고 신기해했다.
나 혼자 배운다고 해도 웃기는 상황인데
남편과 같이 배운다고 하니 반응이 난리다.
비웃음인지 응원인지 뭔지모를 한참의 웃음소리가 지나가고
한 달간의 수강이 우리 부부사이에 어떤 작용을 했는지 증언(?)하자
조금전의 웃음이 아닌 의미있는 도전이라며 진심 잘했다며 독려로 바뀌었다.
함께 춤을 배운다고 말하는 대상이 사실
우리 부부를 잘 아는 사람들이긴하다.
이후 일본영화 shall we dance에서 주인공이 자석에 이끌리듯
춤을 배우고 활력소를 얻지않았냐는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
" 아뭏든지 재밌는 부부야"
나나 남편이나 몸치, 그것도 몸매가 받혀주지못하는 몸치다.
춤을 함께 배워보자란 생각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부간에 너무 공통취미가 없다란 약간의 권태감,
대면대면한 관계의 심심함을 달래보고싶었던 차
주변인의 추천이 한 몫했다.
" 부부간에 춤만한 게 없어. 말할 필요도 없고 조금만 춰도 땀도 나고 운동도 되고...즐겁다구"
처음 수업을 받으러 간 날, 우리 부부가 제일 뚱뚱한 것에 저으기 놀랬고
함께 온 동반자와만 추지않게 계속 체인지파트너가 되는 것에 살짝 당황스럽고
실수할까싶어 긴장되었다.
그러나 그 실수들이 파트너에게 약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말을 하시는 분은 오직 강사분, 수강생들은 마스크를 낀 채 아무말을 않지만
모두 같은 목표, 춤을 추고싶다란 의지가 있으니 2시간의 레슨시간내내
열심이 가득이다.
쉬는 시간 얼른 의자를 당겨앉았다.
역시 선배수강생들은 다르다.
본인 마음에 들 때까지 발을 차고 돌고 차고 돌기 같은 동작을 쉬지않고 반복한다.
거울을 바라보며 혼자 연습하는데도
아름답고 우아하다.
연습하는 모습도 그림이다.
얼른 저 수준이 되고싶다란 의욕이 불끈이다.
집에서 먼 학원이라 몸은 피곤하지만
가고 오는 길 차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장점이다.
" 우리 초등학교때는 포크댄스를 배웠어. 체인지파트너할 때 인사하고
좋아하는 아이를 만나면 부끄러워하고 친한 아이와 마주하면 일부러 막 세게 돌리는거야. 장난치고..."
" 그랬지. 남자는 이렇게 인사, 여자는 이렇게 인사. 남자애들이 더 많아서 남자짝끼리 하면 손도 안잡고.."
" 요즘 아이들도 교과수업만 말고 이런 비교과 배우면 좋겠다. 그치?"
미영에서 보면 결혼식날, 딸과 함께 아빠가 추는 춤도 얼마나 보기좋은지. 크루즈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춤을 추는 장면도 보기좋아 하는 말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하는 단계지만 탱고음악이 나오면
남편과 나는 손을 마주하고 배운 그대로 움직여본다.
가끔은 남편이 주는 신호를 못알아들어 발이 꼬이거나 균형을 잃기도 한다.
" 그 때 이렇게 하라고 했잖아. 아냐. 아냐.." 며 각자가 기억하는 과정에 대해
왈가왈부하다가 유트브를 찾아 누구말에 맞는지 확인도 해본다.
그래도 탱고음악에 맞춘 잠깐의 움직임은
함께 등산을 하거나 함께 밥을 먹을 때와는 또 다른
뭐랄까
뭐랄까
서로 눈을 마주하지않고 아무 말이 없어도 공감되는...
아뭏든지 음악이 주는 정서도 있겠지만 춤 배우기를 잘했다싶다.
탱고가 처음 시작된 것은 아르헨티나 항구주변의 이민자들의 향수, 연인들의 애정이었단다.
당시 입었던 복장이 남자들은 긴 부츠에 쇠발톱, 여자들은 풍성한 치마를 입어
우리가 보았을 때 간혹 과한 탱고동작들은 그런 복장때문에
나온 게 아닌가싶기도하다.
초반의 열정적인 춤에서 우수에 젖은듯한 느낌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제 막 동작 서너개를 배운 우리 부부가 느낀 탱고는 열정적인 것도 우수도 아닌
매우 예의있는 배려하는 춤이다.
무엇보다 남자의 리드가 중요하다.
남자는 어디로 가야할 지 무엇을 해야할 지 여자를 최대한 편안하게 리드해야한다.
파트너가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지않도록
다른 동선과 다른 동작을 빨리빨리 계산해야한다.
그렇다고 남자 마음대로 파트너를 잡아당기거나 밀거나 돌리는 건 아니다.
회전이나 다른 방향을 갈 것을 말없이 힘조절로 설명해줘야한다.
여자 또한 그 매너있는 리드를 믿고 따라주면 추는 당사자들도 보는 이들도 즐길 수 있는 탱고가 되는 게다.
초등학교때 파트너와 함께 췄던 포크댄스는 밝고 즐거웠지만
어느 순간, 춤이란 분위기를 한껏 띄울 수 있는 마치 장기자랑하듯
잘하는 사람만 나설 수 있는 장르.
남앞에서 춤시위를 하는건 부끄럼이 되었다.
젊은 날 회식때 갔었던 디스코장, 클럽은 또 다른
장르고 버전이다. 다같이 추니 부끄럽지는 않다.
일단 술이 들어갔으니 흥도 있다.
거울을 보며 혼자 도취되어 추는가하면
친목도모를 위해 어깨동무를 한 채, 발을 앞으로 올렸다 내렸다 빙빙 돌기도 했었다.
누군가 나를 가운데로 밀면 부끄럽지만 말춤을 추기도 했었다.
그러다 블루스타임이 오면 여자들은 줄행랑, 그 와중에 상사의 기분을 맞추기위해
모모대리가 희생양(?)이 될만한 여직원의 손목을 잡아끄는 일도 종종 있었다.
" 부장님, 혼자 있잖아. 신경 좀 써줘"
장기자랑이나 블루스타임이나 말춤이나
춤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추억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성인남녀가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사교댄스는 사교란 단어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끈적거리고 춤바람이 날 것 같고 그냥 칙칙하다는 편견,
오해고 편견이었다.
춤은 밝고 즐겁고 건강한 것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