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핑계삼아 과천을 향했다.
일은 생각보다 일찍 싱겁게 끝났고 지척거리에 위치한 경마공원을 향한다.
최근 렛츠런파크에서 온 무료입장권도 있고
예전의 올드한 분위기에서 젊은 층인 2040만 들어갈 수 있다는 2040존도 만들었다하고
운칠기삼의 시간이 전~혀 아닌 정말 말보러가요란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후끈한 날씨만큼 후끈한 열기가 ATM기기부터 느껴졌다.
'대박'까지는 아니어도 소소한 배당을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감이 우리라고 다를 수 없다.
동반한 남편의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아까보다 훨씬 더 빠르게 경쾌해졌다.
남편은 경마장을 마치 어제 온 듯 이곳 저곳을 안내한다.
도박할 때 도파민이 나온다는데 조금 전 마지못해 동행한 사람인가싶을정도로
자기주도적인 모습이다.
평소 "돈없다"란 말을 달고 사는 양반이
뜬금없이 프레첼을 사준다고 하질않나
나보고 더 먹으라고 하질않나
알고보니 베팅할 기대감에 영혼없이 하는 말이었다.
경마공원은 데이트할 때 한 번 갔었고
아이들이 어릴 때 포니를 보여주기위해 갔던, 딱 두 번이지만
전자에 대한 기억은 그리 좋지않았다.
경마장에 널브러진 예상마 전단지를 심각하게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그 당시에는 흡연구역이 따로 없었다) 불안안 눈빛의 어르신들이 표정을 보면서
덩달아 불안감을 느꼈기에 그랬던 거 같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만큼 경마공원, 눈에 띄는 변화가 있더라.
일단 어린아이와 함께 온 젊은 가족단위,
데이트 온 청년들도 적지않게 보였다.
그들은 2040존이란 특별구역에 들어 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여성전용구역, 흡연구역, 말박물관등도 전에 없던 공간이다.
말과 함께 등장한 여자기수들도 변화의 하나였다.
말에 올라타는 기수분들은 대부분 키가 작았다.
속도를 내야하니 키와 몸무게는 당연히 중요한 조건이리라.
예전에 키가 아주 작은 남학생이 있었는데 진로를 걱정하던 차에
"기수" 를 권유받았다며 좋아하던 지인의 아들이 갑자기 리콜되었다.
그 지인의 아들, 모험심도 대단했는데 기수가 되었을까 궁금도 해진다.
(실제로 기수의 조건은 키 168센티에 49키로라고 한다)
경마는 마주, 말, 기수외에도 조교가 필요한데 경마용 말이 따로 있다고 한다.
늘씬한 다리, 길쭉한 다리, 달리기에 적합한 체격의 말은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2미터가 된다.
어금니는 있지만 송곳니가 없고 700키로나 되는 거구임에도 초식동물이다.
전체적인 외모가 준수한 것에 비해 이빨은 독특하게 튀어나와있는데
그게 풀을 입안으로 들이밀기위함이란다.
말박물관에서 이성계의 8가지 말, 마패, 적토마와 관우
그리고 시장에서 소금수레를 끌고가는 늙고 병든 말이 천리마인 것을 알아보았다는 손양이란 춘추전국시대의 인물도 읽어본다.
천리마도 대단하지만 그 천리마를 알아 본 손양도 대단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말에 대한 상식은
-절대 말뒤에 서지말라
-놀래키지말라
아마 이 정도아닐까싶다만 커다란 눈망울에 긴 속눈썹의 말을 보면
말부터 걸고싶어진다.
그러나 왠만한 사람의 어깨까지 오는 말높이는 막상 올라타보면 두려움이 먼저다.
그러니 속도가 생명인 경마에서 기수들이 가지는 마음가짐은 오죽할까
제주경기가 시작되기 전 전광판의 배당율은 한 눈에 읽기에 복잡한데 대충
숫자가 적을 수록 사람들이 많이 배팅한, 적중말이란 얘기다.
반대로 숫자가 크면 예상말에서 멀어졌지만 대신 대박이 터지는 거다.
제주경기는 구경만 했다. 남편은 시동을 켜보자고했다.
서울경마를 베팅하기 전 말들이 사람들앞에서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를 돌아보는 시간이 있다.
어떤 말은 촐랑거리고
어떤 말은 힘겹게 걷는다.
기수가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화이팅을 외치고 기수들도 인사를 한다.
초아마츄어 눈에는 촐랑거리는 녀석이 우승마같기도 하고
진중한 녀석들이 우승마같기도 하다
어디 기수분들은 어떤가보자~
그래봐야 11마리
45개의 숫자중 6개를 맞추는 로또보다 쉬울 것 같은데
기수는 전력공개에 예상마도 알려주는데 왜 못맞춘다는 걸까
시작은 500원
촐랑이를 고를까하다가 진중함으로 골라본다.
그렇게 서울경마가 시작되었다.
전광판에서 조금 전 촐랑거리던 말이 순위권에서 뛰고 있다
" 거봐,. 내 말이 맞잖아"
피니쉬라인이 가까워지자 순위가 살짝 바뀌었고 주변에서 들리는 웅성거림.
나는 500원 베팅을 했음에도 가슴이 콩당콩당해진다
재미삼아 해보는 건데도 왜 이렇게 두근거릴까
2040세대들은 전광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신설된 마사회의 '박수를 쳐요' 란 안내를 따라하는 것에 반해
내 주변의 꽤 많은 사람들이 비속어를 쓰기도 했다.
남편은 일만원을 쓰기로 작정했단다.
그래봐야 일만원이지
맞아 일만원
혹시 또 알아
주차비는 건질지
혹시 또 알아
저녁값은 나올지
그렇게 일만원을 다 소진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맞추지못했다.
어떤 때는 예상마가 중간에 1등을 뺏기는가하면 예상마가 예상대로 1등을 했음에도
2등을 못맞춰 꽝!
재미로 했다지만 돈잃고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우승마를 맞추는 비결은 유트브도 보고 말, 기수에 대하여 열심히 연구하는 거라는데
그 과정없이 전단지와 감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다. 운칠기삼의 운은 실력이다.
20년을 다니셨다는 한 어르신
예상마를 알려주는 전단지를 보고 있자
옆에 있던 어르신이 말을 건다
" 그게 맞아? "
" 좀 가르쳐주세요"
" 내가 알면 내가 여기있어?"
이 경마장에 다니신지가 20년 되었다는 그 어르신은 경로당도 재미없고 주말이면 여기 오는 게 낙이다라며
하루 종일 베팅할 15,000원짜리 전표를 보이셨다.
" 옆에 앉아있는 여자도 매일 여기 와, 근데 옷도 안빨아 입나봐 왜 저렇게 더럽게 하고 다녀?"
" 우리 딸도 아들도 내가 여기 오는 거 알어. 전화해서 기운없는 목소리면 -아빠 오늘 잃었어?- 대번에 알어 허허"
" 몇 번이 들어왔어? 뭐? 아이구 또 꽝이네"
제주경마도 봐야하고 서울경마는 나가서 직접 보기도 해야하는데 어르신은 우리에게 자꾸 말을 거신다.
20년동안 그 어르신
돈을 벌었을까
잃었을까
경로당보다 더 재밌다는 이 곳
경마장 가는 길은
기대반
설렘반
집으로 가는 길
그래봐야
ㅣ만원인데도
콩당콩당과
약간의 비속어때문인가
당분간 재방문의사가 없는 두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