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연탄가스중독, 큰언니는 자기 방을 가졌다
요즘 사과껍질을 깍는 방법을 중학교 가정시간에 배워 그게 수행평가란 말을 들었다.
과도로 꼬다리를 한 번 팍!치고(주병진개그맨의 어록에 의함, 과일기절시키기라고 한다)
칼과 엄지, 검지손가락을 적당히 밀면서 최대한 얇게 돌려깍기
집이 아닌 학교에서 그것도 중학교에서 배운다는 게 당황스럽다.
연필도 그렇다. 아이들은 펜슬샤프너가 없으면 심이 부러진 연필을 재생시키는 방법을 모른다.
또 라떼이야기인가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해야겠다.
펜슬사프너가 없었던 나의 어린시절에는 도루코칼로 연필을 쓱쓱쓱 밀어 깍고 다듬는게 당연했고
혹시라도 중간에 연필심이 부러졌다싶음
연필껍질을 손톱으로 긁어서라도 재생시켜 다음을 이어갈 수 있었다.
뿐인가
어머니의 부재시 연탄을 갈아햐했고
번개탄으로 불도 살렸다. 연탄과 연탄이 붙으면 식칼로 내리쳐서 불이 활활 붙은
두 놈을 가르기도했다.
가스가 없었던 당시 석유곤로에 석유를 리필하는 방법
곤로심지가 올라오면 성냥으로 불을 붙혀 왠만한 화식도 만들었던 우리..
그 나이의 시작은 없다.
초등학생도 했고 중학생도 했고 고등학생이면 다 했다.
요즘 아이들은 공부말고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누구때문일까
아이들에게는 "학원" "공부"만 강요한 요즘 엄마들의 문제이기도 하고
곧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연탄.
구멍의 갯수에 따라 9공단, 19공탄, 22공탄으로 구분되는데 보통 가정용은 22개 구멍을 가졌다.
연탄이 주연료인 그 당시 까만 연탄이 창고에 쌓이면 한 마디로 걱정이 끝이다.
낮에는 다들 정신차리고 있으니 연탄불을 꺼뜨리지않지만 한 밤중이 문제였다.
깜박 잠이 들었다싶으면 영락없이 연탄가는 타이밍을 놓치기마련이다.
그나마 온 집안 대소사의 주인인 어머니는 왠만해선 불을 꺼뜨리지않지만
어머니의 부재시 담당은 첫째
첫째가 나가면 둘째
둘째가 나가면 그 다음으로 이어지고 아들은 귀하니 건너뛰고 막내인 내게까지 내려온다.
어쩌다 깜박해 불을 꺼뜨리면 두 가지가 걱정이다.
방바닥이 차가운 것
그리고 정신머리하고는...쯧쯧쯧..하면서 야단치실 어머니와 형제들이다.
부리나케 수퍼로 달려가 번개탄을 사고 성냥으로 불을 붙히고 부채로 활활
재가 날아다녀 이리저리 몸을 피하고 눈이 매워 눈물이 나도 불씨는 살려놓아야한다.
어깨너머로 한 번 본 것을 그 때는 잘도 기억하지만 어떤 날은 잘 붙고 어떤 날은
부채질을 쉼없이 해야 겨우 붙기도 한다.
8번종점의 대저택으로 이사오기 전에 살던 많은 거주지중에 상가주택이 있었다.
커다란 방 1개와 작은 방 1개의 구조였다.
큰 방에서 부모님과 여러 형제가 잤지만 이제 직장을 다니는 큰언니와 둘째언니는 좁더라도 자기들만의 공간이 필요하니 늘 작은 방에서 잤는데 한 날, 일이 터졌다.
일산화탄소중독, 연탄가스를 마신 거다
큰언니는 지금도 40키로초반의 야리야리한 몸인데 그 때문인지 두 자매가 함께 잤음에도 큰언니만 연탄가스를 마신거다.
어떻게 발견했는지는 기억나지않는다.
모두가 일어났고 큰언니는 다리가 축 늘어져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의식이 없었다.
아버지가 언니를 안고 이름을 여러 번 불렀다. 뺨도 때렸다.
어머니는 동치미국물을 가지고 오셨다.
큰언니가 집에서 불리우는 이름이 있었는데 왜인지 언니는 그 이름이 너무 촌스럽다며 절대 부르지말라고했다.절박한 순간에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것은 그 촌스런 이름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이었을까
찰나였겠지만 새벽에 일어나 소동이 일어났으니 내게는 꽤 오랜 시간처럼 여겨졌다.
언니의 입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나왔고 아버지는 살았다 살았어를 연발하셨다.
이후 그 작은 방은 옷가지, 창고방이 되었고 연탄가스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된 사건이었다.
또한 부모님의 내집마련 계획표가 서둘러진 계기이기도 했다.
약간의 점프업과 워밍업으로 집을 옮겼을 때 방수는 절대부족임에도 부모님이 한 방,
큰언니가 한 방, 나머지가 한 방을 차지할 수 있었다.
형제가 여섯이니 방 두개에 세 명씩 나눠써야 공평한데도 큰언니는 늘 독방사용권이 있었다.
심지어 작은 방이 아닌 큰 방을 언니가 선점하는 불공평속에서도 아래형제들은 군말이 없었다.
대신 방을 지칭하는 이름이 명확한 게 장점이었다.
안방, 마루, 큰언니방, 작은 방.
나의 아들은 중학교때 크게 다쳤고 작년 이맘 때 크게 아팠다.
중학교, 한창 잘 먹고 잘 놀 그 시기에 발뼈가 부러졌고 성장판도 깨졌다.
응급실에서 당직의는 이상없다라며 귀가했지만 밤새 끙끙 앓고 다음 날, 내원했을 때 성장판이 부러져 당장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을 때 나는 바닥으로 철버덕 내려앉았다.
철심을 박는 수술실에 들어갈 때도 울었고 나올 때도 울었고 재활할 때도 울었고 휠체어로 등하교를 하는 순간에도 간간히 울었다.
수술결과가 좋아 짝짝이 다리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 영향인지 덜 컸다란 생각이 늘 미련으로 남아
아들을 볼 때마다 안쓰럽다.
작년 의료파동이 크게 났을 때 한 마디로 병원은 아비규환전쟁터가 따로 없을 때 아들이 갑자기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병원마다 전쟁이었고 당장 피를 흘리는 게 아니면 다른 병원으로 가는 게 낫다고 했다.
평소같음 눈물부터 나왔겠지만 울 겨를이 없었다. 세 번의 거절끝에는 들어 간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들은 자신의 발로 서기도 힘들어 질질 끌려갈 정도였다.
맹장도 아니고 게실염도 아니고 그럴것같다라고 잠정 내린 결과는 조개류로 인한 복통이었다.
똑같이 먹은 나머지 가족들에게는 없는 증상이라 의아스러웠지만 여하튼 세 번의 거절끝에 병상이라도 잡은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축 늘어진 아들, 체온을 재고 상태를 지켜보면서 차라리 부모인 내가 아픈게 낫지싶다란 생각을 수 없이 했다. 자식이 아픈 게 다 의학적 이유가 있겠지만 부모라는 책임자의 길티. 그 유죄감의 끝은 없는 것 같다.
겨울, 누가 요즘 연탄을 쓸까 아직도 연탄을 쓰는 집이 있다고라고 하겠지만 난방비를 아끼기위해 연탄으로 바꾸는 가정이 느는 현실이라고한다. 한 장에 700원이 넘어 연탄을 쓸 수 밖에 없는 가구에서는 그마저도 부담이 된다.
22개의 구멍에서 뿜어나오는 화력은 제법이지만 그 화력을 내는 과정에 피할 수 없는 일산화탄소중독도 있다. 가까운 병원도 없고 이동수단도 없이 의식없는 딸의 이름을 수 없이 불렀던 아버지,
아버지는 가스가 새는 그 작은 방을 쳐다보기도싫다고하셨다. 다 키운 여식을 잃을까 애가 좀 탔을까
가끔 어머니에 가려 아버지의 사랑이 가물가물하나
아버지늘 늘 그 자리에서 그만큼의 사랑을 주셨다.
누군가의 글에 아버지 소주잔의 반은 눈물이다란 표현, 자녀는 우리 아버지, 누군가의 아버지, 모두의 아버지가 흘리는 눈물같다.
가장의 책임, 나는 없고 그저 아버지만 있는 어른 남자. 그 무게감이 오죽했을까 사실 가늠초자되지않는다.
내 아들이 아플 때 나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게 다였다. 뭘 어쩔 수 없으니 그저 이름만 불렀다.
뭘 할 수 있을까.
대신 건강이 회복되면 뭐든지 해줄께 그게 부모의 길티를 조금이라도 덜게 해준 게 아닐까
큰언니에게 기꺼이 큰 방을 수여했던 것, 우리형제가 군말이 없던 이유, 따질 필요가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