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country for the old( for old men)
제목만 봤을 때는 노인삶, 노인처우와 관련있을 것 같았던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란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과연 누가 진짜 주인공인가?
감독이 끝까지 살게 해줄 주인공을 찾느라
심장이 여섯근이 되게하는 총질 추적극이다.
내용은 우연히 발견한 돈가방때문에 만신창이가 된다는 로드영화인데
가방 가득히 담긴 100달러뭉치가 그렇게 짐스러워 보일 수가 없다.
저 정도되면 돈가방은 행운이 아닌 액운에 속한다.
그와중에도 노인은 중간중간마다 등장하는데
매번 저 노인 도와주다 죽겠다, 괜히 말걸다 죽겠다 싶은게
인간미라고는 전혀 없는 프로킬러의 원칙은 너무 이기적이고 대항마가 없어 보인다.
2008년에 개봉되었다 2018년에 재개봉되었는데
작정하고 봄직한 영화중의 하나다.
노인들은 인지상정이 있다. 어려운 상황을 보면 낯선이라해도 그냥 지나치지못한다.
그게 복이 되어 돌아오면 좋으련만 영화처럼 화를 당하게 되면 쓸데없는 참견을 해서
화를 돋군다란 뒷말을 듣는다.
동네의 한 어르신이 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내외는 어머니에게
신신당부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할 정도로 여기저기 참견안하는 곳이 없다.
야단만 치는 건 아니다.
인사잘하고 옷이 예뻐요 요즘 반찬 해먹을게 없어요하면
김치고 고등어고 옷이고 느닷없는 딩동소리에 깜짝 놀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문제는 그 내용물이다. 받는 사람입장에서 좋은 상품은 아니라는 거다.
왜 자식부부가 가만히 있으라는 건지를 이해하기는 오래 걸리지않았다.
자식이 지지를 안해주니 마음이 외롭고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알아봐주니 고맙고
그래서 뭔가 갖다주는 일련의 행위는 없이 살아 나눠주던 세대에게는 익숙할지 모르나
인테리어 리모델링 소음사인은 일일이 받아가도
이사떡은 돌리지않는 요즘사람들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처치곤란의 낯선 입맛을 거절하기 어려운 게 누적되다보니
그냥 인사만 오가는 인자한 어르신이었으면 좋겠다란게 솔직한 심정이 되었다.
키가 커서 좋겠다. 아들이 키가 크면 얼마나 좋을까란 화제로 분분했던 한 모임에서
요양사자격증을 취득한 지인이 말했다.
" 요양원에서 제일 인기없는 사람이 누군지알아?
키크고 몸집큰사람들, 뼈대가 굵은 사람들.
00처럼 작고
왜소한 사람들을 요양사들은 이뻐라 해. "
그도 그럴 것이 기저귀갈때나 목욕할 때 남들보다 두배의 힘을 가해야 하는 큰 체격은
매력은 커녕 한숨부터 나올게 뻔하다.
남의 손에 맡겨지지만 않는다면 큰 키는 장점이 더 많다라며 결론을 내렸지만
문득 영화 벤자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가 연상되었다.
주름이 쭈글거리는 신생아로 태어나 40-50대에 인생황금기처럼 아름다웠다가
다시 지금의 신생아가 되어 죽는다는 다소 획기적인 소재,
차라리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젊어지고 어려져 죽는게 낫겠다싶다.
주름이 많은 노인얼굴이라해도 자식이라면 다르다. 부모는 못난 자식도 쉽게 버리진않으니깐.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어찌된 영문인지
천사같은 사랑스런 모습으로 태어나
찰나 이쁘고 멋있다가
거울도 보기싫고 사진도 찍기싫은 모습으로 변해간다.
아무리 우리생애 제일 젊은 날이라며 외쳐도 작년 얼굴 다르고 올해 얼굴 다르다.
누가봐도 아가씨, 오빠였던 외모는 찰나 아줌마 아저씨가 되더니
순식간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다.
아, 중력의 힘이란 영화 속 프로킬러처럼 인간미라고는 하나도 없이 자기 원칙만 고수한다.
요즘 전철을 타는 사람들이라면 노약자석이 확실히 자리잡으면서
은근스레 젊은이와 늙은이구역이 나눠지는 걸 느꼈을 것이다.
노련하고 약삭빠른 사람이 앉는 자리란 인식에서
설사 자리가 비어있어도
어르신을 위해 앉지말아야 하는 자리란 인식처럼
2-1과 2-4를 제외한 다른 자리에 노인이 있는 게 보기드물다.
자리의 특성상 3명밖에 못앉는 노약자석에 자리가 없어도
2-2로 선뜻 가게 되지않는다는 걸 노인분들 대화를 통해 들었다.
더구나 노인은 무임승차다. 그동안의 세금을 낸 떳떳한 댓가가 아닌
그냥 무임승차란 느낌이 드는 건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이다.
" 노인을 위하..."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 어른을 위한 존대어도 더이상 존재하지않을거다"
예전의 외국인들이 한국의 미풍양속이라며 놀라워하던
어르신에게 했던 자리양보도 조만간 없어질 게다.
엄연한 노약자석이 있는데 왜 젊은이들자리까지 뺏으려하는가란 뒷말이 있으므로.
영어에는 노인을 지칭하는 씨니어(senior)란 단어가 있지만
초고령화가 되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늙은이 노인 실버 어르신이란 호칭조차 정립되지못했다.
순수 우리말이란 늙은이란 표현도 정말 듣기싫어한다.
심지어 10대 아이들은 어르신을 틀니딱딱이라고 부른단다.
손주들이 있어도 할머니라고 부르면 싫어하고
70-80이 되어도 경로당얘기를 하면 " 내가 왜?" 라며 화를 내기까지 한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노인인 것 같은 그 분들도 서른둘의 시절이 있었을거고
갑자기 칠순 팔순이 된 듯한 광속같은 시간의 흐름을 겪었을 거라는 것,
우리가 모르지 않는다.
나도 곧 노약자석에서 느릿느릿한 꿈뜬 행동으로
젊은이들의 한숨을 들을 날이 분명 온다는 것도 모르지않는다.
노약자석에 앉은 노인들끼리 뭣때문에 빈정이 상했는지
"그 나이 되도록.. 나이를 어디로 처먹었냐 나이가 몇살 먹었냐"며
언성을 높혀 분위기가 험해진적이 있다.
꽤 연세가 있어보이던 택시기사분이 횡단보도에서
한 할머니가 지팡이를 잡고 걷는건지 정지화면인지 모를 느린 행보에
혀를 쯧쯧쯧 차면서 " 저 정도면 나다니지말아야지"란 말을 들으면서
어쩌면 젊은이뿐 아니라
덜 늙은 어르신들조차 연장자에 대한 예우는 없다란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이애란가수의 백세인생이란 노래에서
" ....알아서 갈테니 재촉말라 전하라 자존심상해 못간다고 전해라 " 란 가사가 있다.
알아서 간다. 자존심 상한다. 재촉말라...
우리의 삶이란 모두에게 기쁨과 탄성을 지르게 태어나 탄식과 안쓰러움만 가득한 모습으로
갈 길을 재촉하고 재촉당하다 자존심상해서 가는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벤자민이 될 수 없다면 그저 최대한 덜 자존심상하게 덜 재촉당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나이대접은 이제 사장(死藏)된 단어다.
그 나이가 되도록...나이를 어디로 처먹었냐란 소리만큼은 진짜 안듣고싶다.
내일 모레면 또 한살 먹는다. 진짜, 나이는 어디로 먹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