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지칠때가 되었다
신(神)도 지칠 때가 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가버나움은 다섯 개의 떡과 두 개의 물고기로 많은 사람을 구제했다는 일명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별 볼일 없다는데 최근 네이버 영화 소개에서 상위 평점을 받은 영화 제목도 공교롭게 “가버나움”이다.
영화 주인공인 “자인”은 열두 살 남아로 실질적인 가장이다. 동생들이 하나 둘 셋 넷...줄줄이 사탕이다. 그러나 출생신고도 하지않은 부모, 능력은 커녕 애정도 전혀 없어 보인다. 아기는 신(神)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이상한 신념아래 낳고 여자애는 팔고 또 낳고를 반복한다.
제일 좋아하던 여동생이 생리를 시작했을 때 그는 불안하다. 부모가 동생을 양아치같은 아저씨에게 팔아넘길 것 같다. 생리혈이 묻은 옷을 빨래해주고 자신이 입던 티쳐스를 벗어주지만 무식한 어른을 이길 수는 없다.
열한살의 여동생은 강제로 결혼시킨 뒤 바로 임신하였고 하혈이 너무 심해 병원에 갔으나 출생신고서가 없다는 이유로 문턱도 못 넘기고 죽었다. 고작 열한 살이 임신이라니!
한 때는 훌륭한 어른이 되고싶었던 자인은
“인생은 x같아요. 부모가 더 이상 아이를 낳지않도록 해주세요”라며 부모를 고소한다. 그의 열두 해 삶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자인은 실제로 시리아 난민이고 현지에서 캐스팅되었고 주인공들의 대부분의 진짜 삶은 영화보다 더 후진 상황이었다고 전한다. 시리아는 종교, 정치,국내외 간섭등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몇 년째 내전중이며 전쟁없는 일상을 누려본적이 없다고 한다. 마치 복합MSG같은 분쟁의 원인들은 어디부터 풀어야 하는지 과연 풀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영화를 계기로 자인은 출생신고와 함께 학교를 갈 수 있는 “법이 인정하는 인생”이 되었단다. 가버나움재단이 설립되고 지속적인 도움도 준다고 하니 자인과 그 진짜 가족은 어떤 의미로는 “대박”인 셈이다.
영화는 억지로 눈물을 짜내기도 하고 저절로 욕이 나오게도 한다.
어른이 어쩜 저렇게 무기력하고 무지할까. 자식의 말대로 애 낳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애를 낳았을 뿐 양육의 책임은 왜 지지않는 것일까
사실 시리아 내전만 MSG가 아니었다. 내 마음도 그랬다.
영화의 어느 장면부터인지 한 때 일했던 아동보호센타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곳은 이웃, 유치원, 학교 교사들의 신고로 들어 온 어린 아이들을 임시로 보호하는 기관이었다. 당시 학습담당인 내가 아동들에게 가정사를 질문하는 건 금지사항이었고 설사 가정사를 안다해도 학습방법이 달라질 건 없었다. 그러나 묻지않아도 어떻게 양육되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한글을 모르는 아이, 앉은 순간부터 쓰레기가 쌓이는 아이, 욕을 달고 사는 아이, 또래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 내내 우는 아이. 마음이 아픈 아이, 몸이 아픈 아이. 심지어 어린이 미투도 있었다. 한 마디로 잘못된 양육자를 둔 아이들이었다.
반말로 “ 우리 엄마야” 라며 젊은 여자 사진을 보여준 친구는 초등학교 2학년임에도 자기 이름을 쓰지도 읽지도 못했다. 글을 몰라서일까 종이만 봐도 질겁을 했다. 사물의 이름, 쉬운 단어도 대답하지못했다. 지능이 낮은 건 절대 아닌데 서너살이나 관심있을 소꿉놀이감에 손이 갔다. 그것도 오분이지만. 사진속의 젊은 여자는 아홉 살이 될 때까지 도데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인지라 시간이 지나면 마음의 문을 열고 엄마, 아빠가 이렇게 했다. 새아빠가 저렇게 했다, 집에 가고싶지않다, 심지어는 죽고싶다란 표현까지 했다. 전문가도 아닌 내가 상담은 안 될 말이고 최대한 그들의 심기가 안정되도록 다독여주는 몇 마디가 최선이었다.
많은 아이들중 유독 한 아이가 내 맘을 들었다 놓았는데 나뿐이 아니었다.
거기 어른들 모두에게 “받는 것 없이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가녀린 아이가 입을 떼는 순간 이렇게 맑고 고운 목소리가 있나 정말 깜짝 놀랐던 첫인상이 생생하다. 그 목소리가 듣고 싶어 자꾸 말을 걸어볼 정도였다.
다른 아동과 달리 자기상황을 끝까지 말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않았다.
학습태도도 좋고 가르쳐주는 대로 속속 받아들이고 칭찬하면 “ 저 잘하죠?” 라며 확인웃음을 지었다.
문제라고는 전혀 없어보였다.
그러나 무엇때문인지 느닷없이 책상에 엎드려 한참을 울곤 했다. 옆의 친구가 괴롭혀 우는 거라면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상담교사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기를 여러 번, “ 정말 불쌍한 아이예요.”
내가 들은 건 그게 다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센타에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에 격리될 만큼 잘못된 양육이란 건 쉬이 짐작이 된다. 담당자가 말해주지도 않겠지만 안듣기로 했다. 듣는 순간 예쁜 아이, 목소리가 좋은 아이는 사라지고 그냥 불쌍한 아이가 되어 사랑보다 동정이 앞서게 되니깐.
퇴소가 결정될 때 아이가 또 울었다. 센타의 아이들은 원인이 해결되어 귀가하거나 아니면 소그룹 지역아동센타로 보내지는데 그 아이는 후자였다.
메마른 나의 정서에도 사랑스러운 아이, 어디를 가나 사랑받을 만한 아이. 그러나 세상에 본의 아니게 태어나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서류하나로 움직이는 인생을 아홉 살이 짊어지기엔 참 가혹하다.
내가 만진 건 코끼리다리다. 내가 만난 건 얼른 반성하고 다시는 안그러겠다 다짐하는 양육자 몇몇이다. 귀가를 한 게 좋은 건지 지역아동센타로 가는 게 나은 건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서류로는 “이상무” 이니깐.
시리아와 같은 전쟁이 없는 이 나라에도 똑같이 슬픈 인생이 태어나고 아프게 자라는 인생들이 있다. 출생신고를 하고 병원문턱은 넘겠지만 내가 낳은 내 새끼를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양육자, 보호자들이 있는 한 슬프고 아픈 어린 아이들은 영화보다 더 후진 유년시절을 보내지않을까
아이는 신(神)이 선물로 주셨다란 “자인”의 부모말이 맞다. 그러나 신(神)이 모두에게 다가갈 수 없기에 어머니를 대신 두었다란 말도 맞다. 우리는 모두 그런 어머니를 두었고 모두 그런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선물로 주셨는데....신(神)도 지칠 때가 되었다.
#아동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