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처마는 양 끝이 곡선을 그리듯 살짝 들어올려져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여러 말들을 한다. 명확한 답이 없으니 여러 가설들이 있는 게 당연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부분도 전 할 필요가 있어 생각을 적어본다. 보통 인터넷에 올려진 내용의 대부분은 겨울철 태양의 온화한 빛을 많이 받아 따듯한 집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이거나 여름철 비로 인해 나무가 빨리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건조의 목적이라 하지만 한옥을 만드는 한 사람으로서 나의 입장은 좀 다르다.
사람의 눈은 사물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사람의 눈은 수평대보다 정확한 수직과 수평을 느끼지는 감각적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선이 길어지거나 높이 올라갈수록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왜곡이 생긴다. 굳이 한옥의 예가 아니더라도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 보이는 긴 항아리 모양의 배흘림은 기둥이 얇아 보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며 건물의 중앙부를 볼록하게 하는 것은 처져 보이는 착시를 교정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긴 수평재를 보고 있으면 중앙부나 양 끝이 처져 보이는 현상을 느끼게 되는데 이런 부분들의 인식은 옛 선배들 또한 같은 생각이었던 같다.
처마를 처져 보이지 않게 하는 '귀솟음'
모든 건축에는 세월의 시간만큼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한다.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한옥에선 네 모서리에 위치하는 기둥의 높이를 다른 기둥들에 비해 조금 높게 하여 처마선을 들어 올려 주는 기법을 사용한다. 이 기법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집을 만드는 하나의 양식으로 나무라는 재료에 맞게 시간이 지나면서 하중에 의한 처짐을 계산하고 설계하는 방법이다.
안쪽으로 기둥을 기울이는 '안 쏠림'과 집의 네 모서리 부분의 기둥을 높게 하는 '귀솟음'
재료에 따른 지붕의 무게
잘 생각해 보면 초가집에는 평자로 지붕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지붕에 얹어지는 재료가 비교적 가벼운 억새나 벼 줄기를 사용해 지붕을 덧씌우고 단열을 하기에 지붕의 처마가 처지는 것을 걱정하지도 않고 몇 년마다 지붕재를 갈아줘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그때마다 고쳐 쓰면 그만이지만 진흙을 구워만든 기와는 무게부터 다르다. 또한 지붕 단열을 위해 진흙을 얹기에 그 무게는 수십 톤에 이르며 처마의 길이를 기둥에서 1m 이상 길게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지붕의 처짐은 당연한 일이다.
추녀의 역할
지붕 모양을 만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네모난 평면에 45도 방향에 놓이는 추녀라는 부재가 있다. 이 부재는 직재가 아닌 휘어진 나무를 사용하는데 집의 네 모서리에 놓여 지붕의 휘어짐(앙곡)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중요한 부재이다. 고대에는 지금처럼 휘어진 나무가 아닌 직재에 가까운 나무를 사용해 상단에 덧붙이거나 지렛대의 원리를 활용해 뒷 뿌리 부분을 낮춰 앞부분을 높이는 형식으로 지붕의 선을 만들어 갔다.
또한 추녀가 사용되지 않는 맞배 형식의 지붕에서도 처마 양 끝의 처짐을 감안하여 직재가 아닌 휘어진 서까래를 사용해 지붕이 처져 보이는 착시나 무게에 의한 처짐에 대비해 지붕의 끝선을 살짝 올려 시공한다.
추녀집과 맞배집
한옥의 처마선이 올라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처짐에 의한 해결책으로 하나의 기법은 세대를 거쳐 디자인화되어 하나의 양식이 된다. 엣 시대를 산 이들이 만든 보기 좋은 디자인이 아마도 우리에게도 아름답게 보여 지금도 사용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