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들보의 적층 구조와 퇴칸으로 풀어보는 한옥
본 글은 '대들보'에 대한 이야기 이다.
사진/글 @ 한옥을 짓다
제 2장
고대로부터 건축물은 중력의 무게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되었다.
시대의 변화는 기술의 발전을 가져왔고
이는 지붕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억새나 나무 껍질 같은 가벼운 자연 재료 대신
진흙을 빚어 만든 기와처럼 육중한 재료가
지붕을 덮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지붕의 무게가 무거워짐에 따라
이를 묵묵히 버텨야 하는 대들보의 두께 또한
필연적으로 커져만 갔다.
하지만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들보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에 걸맞은 나무를
얻기 위해 인적이 드문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했고 변변한 교통수단이나 장비 하나 없던
시절 거친 산길을 뚫고 수십 톤의 나무를 현장까지
운반하는 일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고된 노동이었을 것이다.
결국 지붕의 육중한 하중을 견디면서도 거주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선조들은 무조건 큰 나무에만 의존하는 대신
부재를 층층이 포개어 올리는 독특한
'적층(積層)' 구조를 발전시켰다.
단일 부재로 긴 거리를 가로지르는 대신
부재를 겹겹이 쌓아 올림으로써 무게를 분산하고
집의 앞,뒤 폭을 점진적으로 넓혀 나간 것이다.
나무는 길이와 둘레에 분명한 끝이 있다.
하지만 '집'이라는 공간은 가족 공동체가 함께
밥을 먹거나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기둥 없는 넓은 공간을 얻기 위해서는
지붕의 무게와 그 무게를 감당 할 수 있는 나무가
허락하는 거리가 있다.
현대의 철근 콘크리트는 기둥 사이를 10m 이상
띄우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나무는 다르다.
기와지붕의 경우 하중을 버티면서 휘어지지 않으
려면 기둥 사이의 거리가 무한정 멀어질 수 없다.
소나무 원목의 강도와 휨 성질을 고려했을 때,
안전하게 하중을 지지할 수 있는 기둥 간의 거리는
보통 6자(약 1.8m)에서 8자(약 2.4m), 넓게는
12자(3.6m) 정도다.
즉, '칸'은 인간이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나무가 부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자연의 물리적
한계가 그대로 건축의 기본 단위로 굳어진 것이다.
고려 전기까지만 해도 건물 내부를 넓히는 것은 기술적으로 큰 난제였다.
건물의 앞뒤 폭을 넓히려면 그만큼 거대한
나무(대들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국 건축사의 흐름을 짚어볼 때 대략 13세기 경에는
집 안쪽에 높은 기둥인 '고주(高柱)'를 세우고 그 사이에
'퇴보'를 걸어 실내를 획기적으로 확장하는 건축술이
완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건축사>김동욱
내부 기둥이 다른 기둥 보다 1m 정도 높다.
일반 가정집에서의 '퇴칸'은 복도 겸 마루로
한여름의 쉼터로 자리 잡았다.
이에 반해 '절'이라는 기도의 공간에서는 좀 다른 형태의
변화로 퇴 한옥 특유의 여유로운 공간감을 완성했다.
이처럼 한옥은 그 용도와 규모에 맞춰 재료의
규격을 결정하는 고도의 공학적 설계와
삶의 미학이 응집된 결과물이다.
즉, '칸(間)'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 나무의 한계를 지혜로
극복해낸 공간적 단위이다.
더 넓은 공간을 얻기 위해 무한정 긴 나무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선조들은 공학적 지혜를 발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