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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기록이 콘텐츠다

기장의 기록

by 그냥 써 봄

시간이 유수 같다더니, 금세 새해다 싶었는데, 벌써 봄이 성큼 다가왔다. 새해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 새해 목표는 '덜하자'다. 새해는 숨 고르기 하듯 쉬엄쉬엄하고 싶다. 그럴 때가 된 것 같다. 신체적인 한계에 달했다. 9년째 칼슘과 고지혈증 약을 먹고 있으면서 예사롭게 방치하다가 1월 2일 고혈압 처방을 받아 고혈압 약을 추가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는 안 된다. 여기서 당뇨가 더해지면 걷잡을 수 없다는 마음을 다잡고 '덜 하자' 구호처럼 내걸고 새해는 건강을 우선으로 해야지 마음먹었지만, 또 시간은 흘러 벌써 3월도 중순에 와 있다.


운동과 다이어트는 왜 안 되는 걸까요? 미련해서 성과가 있든 없든 꾸준히 하는 것을 잘하는 편인데, 운동과 다이어트는 작심삼일이 반복된다. 고지혈증과 고혈압은 운동이 필수임에도 그게 안 된다는 게 문제다. 스스로 처방을 내리고, 심신이 쉬어갈 수 있는 느린 시간을 살아보기로 했다. 또 다른 목표 하나는 연구회 에세이 발간이다.




올해 첫 기획 회의가 있는 날, 우리는 최근에 기장근대역사관이 개관하고 시민에게 개방한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의 시작은, 무더운 여름 어느 날, 문득 기장 지도를 펼쳤다. 기장에 살면서 늘 궁금했다. ‘기장이 부족한 게 뭘까? 이토록 아름답고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는 도시에.’ 이 질문은 도시재생을 공부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물음을 가지고 몇 해 전부터 기장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기장역사문화관광연구회 동아리를 결성했다. 처음에는 동아리 회원들조차 “그게 뭔데, 그게 뭐가 될까?”정체성이 없었다.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하는 뜬구름이 뭉게뭉게, 기장을 걷고 읽고 쓰고 말하며 기장의 기록을 더해가고 있다.


기장은 다른 도시 못지않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곳인데, 왜 기장은 늘 외면당할까? 여기서 ‘기장의 기록’은 출발했다. 기장을 걷다가 마주한 돌멩이 하나에 역사를, 나무 한 그루에 시간의 가치를, 발걸음이 멈춰 선 과거의 흔적에서 서성거리며 기장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우리는 현지인으로서 부산에서 가장 넓은 땅, 기장군의 역사· 문화 ·관광지를 여행자의 시선으로 소개하고 싶었다. 기장의 아름다운 해안 절벽에 과감히 축대를 올린 노을 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즐비한 카페와 기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숨은 맛집까지.


그 사소한 기록들이 콘텐츠가 되어가는 시간.


첫 기획 회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시선은 한 곳으로 향해가고 있다. 우리는 현지인으로서 기장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발품을 팔아 기록한 역사· 문화 ·관광지를 소개하고 싶었다. 회의 안 건은 부족하고 서툴지라도 기장 에세이 발간이다. 공동체 의식을 갖는다는 것, 함께 한다는 것은 서로의 배려와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공동체라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몇 명을 떠나 마음을 한데 모아 함께 한다는 것이 진정한 공동체가 아닌가 싶다. 있으나 마나 한 연구회를 몇 년째 지속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스며들어 오랜 친구 같은 회원이 되었다.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 소소한 일상에서 마주하는 기장의 역사· 문화 ·관광지에 관심을 가지고 기록한다. 그 소소한 기록들이 콘텐츠가 되어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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