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들꽃이 건네는 위로
화창한 봄날 홀로 계신 어머니를 뵈러 고향으로 갔다.
마을 입구 신작로에서 차를 멈췄다. 갓길에 피어난 보랏빛 들꽃이 먼지를 덮고 흐트러진 채 군락을 이루었다.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보랏빛 들꽃을 마주하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당시는 들꽃은 풀처럼 무심히 밝고 지나다녔던 때라 꽃이 피는 줄도 몰랐다.
언제부터였을까. 들풀인 줄 알았던 이름 모를 들꽃에 마음이 머물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만개한 들꽃이 말을 걸어오듯 "혼자만의 계절도 괜찮다'라고 했다.
문득, 이름 모를 들꽃을 보면서 나를 마주했다.
우주 속 작은 점 하나, 어딜 가나 존재감 없이 묻힌 채 묵묵히 살아내는 나처럼 말이다.
들꽃을 오래 보고 이동했다.
마을 입구 언덕에 노란 개나리가 고향 찾아온 이를 환하게 반겼다.
카메라를 꺼냈다. 사진과 영상으로 담았다.
종 모양처럼 생긴 꽃을 만져보았다. 노란색 개나리 꽃이 곱디고왔다.
노란색이라 그런지 마음이 따듯해졌다.
그 순간,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무심히 피었다 지는 들꽃과 화사하게 핀 개나리 꽃을 보고
질문 하나가 내 안에 맴돌았다. 나는 그 질문에 서두르지 않는다.
젊은 시절은 화사한 개나리꽃처럼 피어나고 싶었으나,
마음껏 살아내지 못해 안달복달했다.
어느날 깨달았다. 고요하게 물 흐르듯 미세하게 떨리며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어쩌면 깊은 삶일지도 모른다고.
개나리와 들꽃을 보면서 화사하게 핀 개나리 꽃보다 무심한 채 피어난 들꽃에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개나리는 바람이 차가운 계절의 끝자락에서 노란빛으로 봄의 계절을 열고, 가지마다 매달린 꽃들은 햇살을
머금고 환하게 웃으며 피어난다. 그 밝은 색에 이끌려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나마 봄을 실감하게 된다.
개나리는 넓고 아름다운 정원보다 골목길, 담장 아래, 학교 운동장 옆에서 더 빛나게 피어난다.
그래서 더 친근하고 따뜻한 것 같다.
반면 들꽃은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채 갓길에서 무심히 자란다.
누구도 일부러 심어주지 않았지만, 계절이 바뀌면 어김없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작은 잎 하나, 가느다란 줄기 하나에도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들꽃은 낮은 자리에서 피어나
바람에 흔들리지만 쉽게 꺾이지 않는다. 밟히고 스쳐도 단단하게 자리를 지킨다.
개나리가 봄을 알리는 환한 인사를 건넬 때 들꽃은 눈길을 끌지는 못해도 그 계절에 피어난다.
개나리는 눈길을 끌지만, 들꽃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 화사한 봄이 오면 개나리 아래에 시선을 낮추면,
그 곁을 지키는 들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고향에서 들꽃과 개나리 꽃의 풍경 속에서 화려함과 소박함이 공존하는 봄을 만났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누군가는 개나리처럼 빛나고, 누군가는 들꽃처럼 일상을 버티며 제자리에서
자신의 계절을 살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봄은 더 아름답고 따뜻하지 않을까.
그날의 봄은 익숙한 풍경 위에 어린 날의 기억이 겹쳐지며,
더욱 정답고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