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배전의 시간

자극을 덜어내고 깊이를 더한 뭉근한 삶의 변주

by 신중년의 일상

비 오는 날 깨소금을 볶았다.

비가 와서 미뤄진 약속이 또 미뤄졌다.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종일 내릴 것 같아,

남편과 커피를 내려 마셨다.


오랜만에 집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는 중에,

저녁을 준비하다가 깨소금이 떨어져

직접 농사지은 깨를 씻어 물기를 빼고

깨소금을 볶았다.



깨소금을 볶다가

문득, 요즘 내 입맛이 예전처럼

단·짠맛을 제대로 느끼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최근에 “진짜 맛있다.” 하는 음식이 없었다.

내가 요리해도 예전 맛이 나지 않았다.


입맛이 변한 건지,

혀의 감각이 굳어진 건지,

삶에 활기가 없어서인지.


어른의 맛은 오감으로 느끼는 맛보다,

맛을 통해 삶의 깊이를 느끼는 마음의 온도이지 싶다.


젊은 날은 오미 중에 쓴맛을 좋아했다.

진하게 내린 쓴 커피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극적인 맛보다 순한 중배전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다.


마음이 허할 때,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

애쓴 삶이 억울해서 마시는 진한 커피 한 잔이

인생의 쓴맛을 희석시키며 힘을 내는 에너지가 된다.


짠맛은 남편이 좋아하는 젓갈, 멸치국물, 된장찌개의 맛이다.

짠내 나는 오래 삭힌 맛은 추억과 그리움을 버무린 맛이다.


어머니가 그리운 날,

멸치다시를 진하게 우려 된장을 풀어

애호박과 두부, 감자, 바지락, 마늘을 넣고

대파를 송송 썰어 고춧가루를 살짝 뿌린

얼큰·매콤한 된장국을 끓인다.


어릴 때 그 짠내를 싫어했던 나는

지금 그 짠내 나는 된장국이 그리워진다.


단맛은 언제부턴가 절제된 맛이 되었다.

건강을 염려해 단맛을 줄이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단맛이 ‘진짜 맛있는 단맛’이 아니었다.

때로는 그 단맛 안에 감춰진 오묘한 단맛의 정체를

알아차리게 되면서 단맛을 절제하게 되었다.

조청처럼 뭉근한 단맛이 좋아졌다.


신맛은 또 어떤가.

신김치처럼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신맛은

단·짠맛의 감각을 누그러뜨린다.

드립 커피의 에티오피아 산미를 좋아한다.

그 산미는 산뜻한 맛을 낸다.

구질구질한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감각으로 살아난다.


어느 날은 매운맛이 당길 때가 있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 날, 침묵을 삼키고

칼칼한 매운맛으로 복수라도 하듯

매콤한 국물을 들이키며 숨통을 틔운다.

이내 폭풍 같은 시간은 소리 없이 흘러간다.

이처럼 어른의 맛은 커피를 내리는 기다림과

절제하는 마음이 버무린 씁쓸한 단단함으로

마음의 간을 맞추고, 인생의 단·짠맛을 조절하는

산미를 더해 살아간다.


저녁 밥상에 오른 겉절이는

깨소금의 고소함으로 미각을 일깨우고,

맥락 없는 이야기들이 오가는 식탁 풍경은

혀끝에 닿는 다섯 가지 다른 맛이 빚어낸

내 삶의 변주다.


밥상을 물리고 ‘어른의 맛이 이런 맛인가?’

혼잣말이 나왔다.


시간을 놓친 식어버린 된장국처럼,

마음의 온도가 식은 것은 아닐까.


어쩌면 세월이 흘러 감칠맛 나는 맛의 감각을 잃어버린 것은

삶의 여정에서 느낀 맛이 깊어졌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무심한 세월을 탓하는 동안 하루가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