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아웃? 아니 투아웃!
H여고의 경우 아이들이 주로 사용을 하던 실험실은 생명과학실험실과 화학실험실이었다. 과학부교무실과 같은 층에 있어 위급상황 발생 시 빠른 대처가 가능하고, 아이들이 하려는 실험의 대부분 준비물이 해당 층 과학실 곳곳에 비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시약과 대부분의 초자기구는 물론이고, 폐수 보관함도, 넓은 실험대도, 바로 세척 가능한 개수대도 전부 몰려 있다 보니 태반의 탐구실험 같은 경우 이 두 실험실에서 진행되어야 했다. 하지만 해당 층에 이러한 실험실은 2개뿐이고, 각 실험실마다 실험 테이블은 6개. 게다가 일과시간을 제외하곤 3타임만 신청이 가능하다보니 과제탐구 시즌이 오면 실험실 예약은 몹시도 치열해진다.
아침이고 점심이고, 실험실 사용 계획서를 들고 쫄래쫄래 찾아온 아이들로 교무실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때 받는 실험실 사용 계획서는 사실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때는 이걸 받지 않고 마음대로 실험실을 사용하게 했더니, 아이들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몰라 여기저기 뒤적거리게 되고, 나는 정확한 재고 파악이 어려웠었다. 분명 시약대장엔 4병이 남아 있던 수산화나트륨이 어느 순간 똑! 떨어지는가 하면, 깨진 채 나뒹구는 비커와 세척하지 않고 방치된 채 바싹 말라버린 막자사발을 마주하는 날이 늘었다.(말라버린 막자사발은 세척이 몹시 힘들다!)
또한 고등학교이다보니 사용하는 시약과 기구들이 위험한 것들이 많아, 반드시 상주하는 교사가 한 명은 있어야 했다. 과학부 선생님들 모두가 일정이 있어서 정시 퇴근해야 하는 날 불쑥 실험 하겠다고 남는 아이들이 생길 경우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여차저차하여 실험실 사용 계획서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실험실 사용 계획서에는 필요한 물품을 하나부터 열까지 적게 한 뒤, 그 팀을 담당하는 과학선생님께 이런 실험을 하겠노라, 허락을 구하고 싸인을 받아오면 나에게 제출 가능했다.
그럼 나는 계획서에 적힌 필요 물품들을 요리조리 찾아내 사용하기로 한 날짜에 맞춰 한 바구니에 담아 둔다. 그리고 신청한 사용 시간 전에 받아가도록 했다. 실험이 끝난 뒤엔 다시 바구니에 착착 담아 나에게 제출하도록 했다. 그래야 내가 원래 있던 자리로 정리를 하고, 시약이 얼마나 남았는지 실시간 체크가 가능했다.
실험실 선점은 무조건 선착순. 완벽하게 적어낸 실험실 사용 계획서를 먼저 제출해야 원하는 시간에 실험실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실험을 한 뒤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거나, 사용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고 사용했거나 할 경우 투아웃제도를 도입해 실험실을 쓰지 못하게 했다.
야박해보일 수는 있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역시 실명제를 사용해야 아이들이 순순히 말을 듣는다.(?) 어쨌든 이로써 나의 업무는 한결 가벼워지고, 아이들은 책임감을 배우는 계기가 된다.
고등학생 정도면 제법 다 커서 알아서 잘 할것 같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특히나 작은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과학실험에 있어서는 적절한 통제와 규율이 아이들을 좀 더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