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일하지만, 교사는 아닙니다. 03

질긴 인연의 시작

by 냅다


3년을 다녔던 학교지만, 학생으로 등교하는 것과 직원으로 근무하는 것은 몹시도 다른 세상이었다. 나는 이제 돈을 받고 일하는 어엿한 근로자. 도움은 미약할지언정, 폐는 끼치지 말아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 엄연한 ‘첫 직장’이 아주 익숙하고 친근한 장소이며, 같이 근무할 동료도 친숙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무척 행운이었다. 덕분에 첫 근무때부터 나는 덜 긴장하고, 덜 실수하며, 덜 외로웠다.



사서 교사를 보조하는 사서실무사였기에 업무 또한 과중하지 않았고, 근로자의 근무환경에 매우 관심이 많던 선생님과 함께 일했기에 박봉이었지만 이것저것 잘 챙겨주셨다. 물론 개인적으로 대인관계에 힘들어하던 시기라 몇몇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정도의 어려움은 딱히 문제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S여고에서의 10개월 근무를 마치고, 반년 정도를 더 쉬었고 새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H여고와 과학실무사라는 이름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그때는 몰랐다. 이 일을 10년이나 하게 될 줄은.







H여고에 면접보러 간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늘 언덕진 학교만 다녀봐서 평지에(교문에서 바라본 학교는 평지에 가까웠다) 있는 학교는 숨차게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싶어서 좋았다. 운동장을 끼고 농구코트를 지나 과학부교무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니 심지어 엘리베이터까지 있는게 아닌가.(그래서인지 때때로 일반회사 같다는 생각도 했다.) 아무튼 과학부교무실에 도착해 출입문을 똑똑 노크하고 들어가니 아담한 인원의 선생님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당시 과학부장님이던 K선생님은 미리 제출한 나의 이력서를 보며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은 처음인지, 과학실험도구는 다뤄 본적이 있는지, 집은 가까운지 등등. 간략하고 가벼운 면접이 끝나고 바로 다음주부터 출근하기로 확정. 그 자리에서 확정이 되고나자 조용히 귀만 쫑끗 하며 나의 면접과정을 듣고 있던 선생님들이 하나둘 말을 걸어왔다.



보통은 12월-2월 사이에 구인공고를 내고 3월부터 근무하는 것이 보편적인데, 나의 전임근무자가 사정이 생겨 도중에 그만두게 되었고, 그래서 급하게 사람을 뽑는 과정에서 내가 마침맞게 지원한 것이라고 했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내가 비지땀을 흘리며 면접을 봤던 그 날은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되던 6월이었다. 이렇게 학기 중간에 사람을 구할 경우 대부분 구해지지 않아 공석으로 다음 학기를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지원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잘 부탁한다는 말도 들었다.








사실 H여고는 그날 처음 와본 것이 아니었다.



아주 예전에 재수를 하는 친구가 H여고에서 수능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응원차 함께 왔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H여고를 까맣게 잊고 지냈었는데, 이제는 나의 직장이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기도 했다.



인연이라는 것이 정말 있나,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이 학교에서 9년을 넘게 근무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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