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식비는 어떻게 줄이지?”
각종 쿠폰, 포인트, 1+1 상품을 노려도 숫자는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매월 이월되면서도 목표 금액은 수정하지 않고 한 숨만 늘어갔습니다. 그러다가 급성 축농증을 호되게 앓고, 내가 바꿔야 하는 것은 숫자가 아님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가 유전적이라고 믿는 것, 어쩔 수 없다고 병원에서 얘기해 준 것들이 사실은 식생활 개선으로 나아질 수 있는 문제라는 걸 말입니다. ‘4인 가족 한 달 식비’, ‘식비 줄이는 방법’을 검색하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그 대신 입맛을 다시 길들이기로 결심했지요.
비 윌슨의 ‘식사에 대한 기준’이란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은행에 있는 돈보다 양질의 음식을 얼마나 쉽게 구할 수 있느냐로 좋은 삶의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고. 지구 반대편에서 같은 종류의 식재료를 소비하고, 음식이 넘쳐흘러 갖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월 줄이려고 했던 식비의 숫자에는 내가 걸릴 질병에 대한 치료비는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150여 년간 모든 경제학자의 동의를 받고 있는 엥겔의 법칙. 저는 이 법칙을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작년 한 해 제로 웨이스트 실천으로 생필품비가 줄고, 소비 단식으로 가계부에서 식비의 그래프는 더욱 더 높아졌습니다. 어려운 문제이지만 스스로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전 세계 식품산업이 만든 혼란 속에서, 우리 몸을 아프게 하는 정크 푸드와 완벽을 강조하는 세계 10대 슈퍼 푸드 같은 식품 트렌드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싶었습니다. 평범한 식사. 소박하지만 건강한 식사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고, 우리 집만의 몇 가지 규칙들이 만들어지게 되었어요. 덕분에 온 가족 병원비 제로. 지긋지긋했던 코감기와도 이별했습니다.
채식 위주의 건강한 식사
평범한 육식가였습니다.
곱창과 닭발 같은 매운 음식도 즐겨먹고, 하루 한 끼에는 무조건 고기가 들어갔어요. 건강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저는 육식을 멈춰보았습니다. 식탁 위에 고기가 올라가는 횟수도 더불어 줄어들었고요. 기후 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 멀리 북극곰을 구해야 한다는 정의롭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 우리 식탁에서 소고기를 줄여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철 음식 위주로 식단을 짜고, 고기는 가끔씩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할 때 목살을 굽거나, 한살림 가공육을 사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건강을 생각하는 일은 동시에 환경을 살리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직접 장보고 포장해 오기
‘뭐 좋은 거 없을까나?’
밤늦게까지 온라인의 각종 행사 상품과 쿠폰을 찾는 일은 또 다른 정신적인 집안일이었습니다. 새벽 배송으로 계란 10구를 사면, 더 큰 부피의 완충재가 함께 왔지요. 문 앞까지의 친절함은 좋았지만, 분리수거 날은 그 만큼 힘들어졌지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직접 장을 보러 다닙니다. 근처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이 있을 때, 월 1회만 온라인 배송의 도움을 받기로 했어요. '전쟁은 가게의 선반에서다!'의지력, 절제력이 종이 한 장의 무게처럼 가벼운 사람이니, 안 좋은 음식을 집 안으로 들이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외식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고, 배달 앱은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조금 더 적응이 쉬었을지도 모릅니다. 음식을 포장하려면 용기를 들고 직접 갑니다. 그리고 어느덧 남편도 비닐 한 장은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네요.
쟁여 놓지 않기,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양배추 심지도 오독오독 씹어 먹습니다.
비타민 U와 비타민K가 제일 풍부한 부분이였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죠. 음식물 쓰레기가 온실가스의 또 다른 주범이며, 연간 20조 이상의 경제적 손실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알 게 된 후로, 야채 손질할 때 버려지는 부분을 최소화합니다. 지난해 코로나로 인해 세계 기아인구가 2억 7천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버려지고, 반대편에서는 굶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오이식스라는 온라인 배송 식품회사에서는 고기의 식감과 비슷한 ‘버섯 밑동 세트’를 만들어 히트를 쳤다고 합니다. 우리가 정해놓은 보편적인 기준에서 조금 벗어나면, 버려질 위기에 처한 아까운 것들을 구해 낼 수 있구나 알게 되었죠. 작년에는 한살림에서 '대견한 사과'를 사다가 먹었습니다. 이상 기후로 인해 상처가 생긴 사과들을 모아서 판매한 것인데, 어려운 농가에 작은 힘을 보태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이제 아무것도 없는 냉장고를 열지 않습니다. 집 근처의 마트들이 우리 집 냉장고요, 냉동실이니까요. 과자를 먹고 싶은 날은 아이들과 함께 가서 직접 고르게 합니다. 불필요하게 간식을 먹는 일도 줄어들었고요.
규칙적이고 적당한 양의 식사 • 마음 돌보기
아이들이 어렸을 적 끼니를 챙겨 먹기 힘들어 야식을 거하게 먹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숙면이 어려웠고, 더부룩함이 남아 아침은 늘 개운하지 못했어요. 지금은 잠들기 전 3시간 공복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의 저녁식사는 6시 전에 마칩니다. 건강한 음식을 적당하게 먹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피곤하거나 심리적으로 힘들 때 가장 쉽게 가라앉히는 방법이 음식이니까요. 대신 그럴 때마다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다른 처방전을 내립니다. 분명 음식 말고도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걸 떠나서 제일 중요한 건 따로 있었습니다. 식사시간은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제 아무리 영양학적으로 훌륭하고 완벽한 식사라고 해도 어떤 사람과 어떤 분위기에서 먹느냐에 따라, 음식의 맛도 다르게 받아들여지니까요. 아이들이 커서 우리 집 식탁의 풍경을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합니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소박하고 따뜻한 식사였다고 떠올려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얘들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