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러버 집에는 커피가 없다

끊는 게 아니라 자유롭고 싶다.

by 요일


제일 좋아하는 진한 아메리카노. 촘촘한 금빛 크레마를 호로록 마시는 순간을 제일 좋아했어요. 어쩌면 그 한 모금을 위해 커피를 마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리 뽑아놓은 샷을 넣거나 추출이 잘못되어 멀겋게 옅어진 커피를 받은 날은 탄산 없는 콜라를 마시는 기분이었죠. 저는 커피 중독이었습니다. 테이크 아웃 1-2잔. 스틱 3-4개. 기상 후 2시간 전에는 코르티솔 분비가 많아 카페인을 자제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새벽부터 저녁 전까지 계속 마셨어요. 일상의 피로가 쌓이는 만큼 커피의 농도도 진해졌습니다. 일회용 드립이나 다양한 스틱 커피를 마셔도 허전함이 메워지지 않아 근처 카페로 달려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식비의 1/8이 커피값이 되고, 현금보다 쿠폰으로 두툼해진 지갑을 보면서 제 자신이 참 한심스러웠어요.




나는 왜 커피에 집착하는 걸까?




커피를 끊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두근거림, 수분 부족, 불면증이 아니었습니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심리적 집착이 더 힘들었어요. 1년 중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날은 하루 이틀. 감기에 걸려 목구멍이 따끔해 물 밖에 넘어가지 않는 날 뿐입니다. '내일부터 커피 끊을 거야!’라고 다짐한 기간만 10년. 그 무수한 내일과 무수한 포기가 저의 나약함을 증명해주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마치 저를 위해 쓰인 듯한 글을 만났습니다. 담배만큼이나 지독한 나의 커피 집착을 말해주는 듯한 글을.




담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은 담배를 끊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일이다. 정신의 자유란 무엇에 집착하고 또 그것을 단칼에 베어 내는 행위에서 벗어나, 버릴 수도 있고 가질 수도 있는 무념무상일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고 최인호 작가님 <산중일기> 중에서



'너무도 좋아하는 걸 단번에 끊어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구나.' 의지가 깃털보다 가벼운 사람이니까요. 끊어야한다는 생각 또한 집착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생각할수록 매몰되는 기분이었으니까요. 그럼 버릴 수도 있고 가질 수도 있는 상태란 어떤 걸까? 무념무상까지는 아니어도 억지로 끊어내지 않고 자연스레 멀어지는 방법은 도대체 무엇일까? 코로나로 일상이 멈추면서 집 안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관찰을 시작했습니다. 커피 외에도 다른 습관들을 돌아보며 짧은 글들을 썼습니다. 코로나라는 암울한 상황과 커피 집착이라는 문제가 글을 쓰도록 만들어 준 것이죠. 어제보다 조금씩 나아지자의 첫 번째 기록이 커피였으니까요.





그러니까, 몸과 마음이 먼저였어.




커피가 마시고 싶은 순간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눈을 떴을 때, 피곤할 때, 지루할 때, 자극적인 음식을 먹었을 때. ‘그럼 반대로 해보는 건 어떨까?' 아침에는 따뜻한 보리차를, 차선으로 홍차를 마신다면, 몸의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신선하고 담백한 음식들을 먹으면 어떨까? 정말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건 몸과 마음을 제대로 돌봐 달라는 신호였습니다. 먹는 것보다 마시는 게 좋은 잘못된 식습관, 운동 부족, 심리 상태. 이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커피와 멀어지고 두 달이 지나자 피부 트러블이 줄어들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어려운 숙제, 제일 약한 부분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 자신에 대한 믿음도 조금씩 쌓여 갔지요.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었어요.


한 동안 커피를 마시지 않았지만, 다시 한 잔씩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커피를 완전히 끊었습니다!'라고 해야 더 멋진 글이겠지만!) 하지만 분명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커피를 마실 때의 마음가짐일 거예요. 이른 아침 아이들의 등교를 도와주고, 설거지를 끝내고, 방바닥을 닦습니다. 전날 정리해 놓은 쓰레기 를 버리고, 커피를 진심으로 마실 만반의 준비를 해 놓는 것이죠.



아침 9시, 텀블러를 들고 집을 나섭니다. 하늘을 올려보고, 계절 감각을 느끼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커피를 받자마자 길을 걸으며 한 모금 마십니다. 입 안으로 들어오는 크레마를 요리조리 굴려가면서.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아 천천히 얘기하듯 마십니다. 그리고 쿨하게 헤어집니다. ‘아~ 오늘 커피 맛있었다!’ 몸의 피로를 급하게 누그러뜨리기위해, 마음의 갈증을 없애려고 들이키던 예전과는 많이 다르게.



매일 1,500원 정도. 한 달에 5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다른 곳에 돈을 잘 쓰지 않는 저를 위한 작은 선물이기도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집에 커피를 사두지 않습니다. 또다시 습관적으로 손이 갈지도 모르니까요. 그 많던 스틱 봉지 쓰레기도 사라졌습니다.



아침에 마시는 이 커피 한잔을 위해.

그래서 더 애틋하고 맛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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