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으로 배운 건 하나도 없지만
허리를 숙였을 때 손 끝이 바닥에 닿으시나요?
형편없는 유연성에 이곳저곳 근육들의 비명이 통증이 되어 몰려옵니다. 그래도 인생에 운동은 없을 줄 알았어요. 걷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게, 산책보다는 읽는 책이 좋았으니까요. 아이 둘 낳고 키우면 아픈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운동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남편의 조언에 드러누울 시간 조차 없다고(정말 그때는 그랬습니다만) 하소연을 하며 핑계를 늘어놓기 바빴고요.
새벽 6시. 차가운 부엌 바닥에 앉습니다. 자그마한 담요가 도움이 될까 깔아 봅니다. 매트를 주문해서 기다릴 시간이 없었어요. 당장이라도 빠질 것 같은 손목과 어깨를 어떻게든 해야 했으니까요. 헬스장이나 요가 수업을 끊을 생각은 감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입고 갈 요가복도 없거니와, 5분이라는 물리적 거리가 50분처럼 느껴지리란 걸 잘 아니까요. 그러니 ‘갈 수 없었다’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집에서 시작해 보자고 결심합니다.
유튜브 요가 선생님을 모셔 왔습니다. 닮고 싶은 매력적인 롤 모델이 있다면 열심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움직이기만 하면 됩니다.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사실은 책을 통해 배웠으니까요. 가장 쉬워 보이는(게다가 앉아서 할 수 있는) 동영상을 고릅니다. 손목과 어깨를 풀어주는 10분짜리 동영상을 2주간 반복하니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얼마나 나의 몸에 무심했는지 사죄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드디어 ‘운동'이란 걸 시작했다는 자신감도 살며시 샘솟았고요. 그렇게 바닥에서 일어났습니다.
8개월 정도 지나니 할 수 있는 동작들이 늘어갔어요. ‘나도 이제 제법?’이라는 자만이 슬슬 올라오던 시기였고요. 좋지 않은 식습관에 급성 축농증이 걸려 며칠을 끙끙 앓으며, 아직 바꿔야 할 습관들이 많음을 깨닫습니다. 물구나무서기를 시작한 건, 코의 혈액 순환을 도와주어 비염에 좋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였어요. 몸에서 제일 약한 부분을 돌봐줘야 밧줄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게 매일 아침 벽을 마주합니다.
머리를 숙이고 양 손의 깍지를 낍니다. 머리를 감싸며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 집중합니다. 한 발씩 몸을 향해 걸어오다가 다리가 들려지는 지점을 찾습니다. 팔꿈치가 바닥에 뜨지 않도록 주의하고요. 균형이 무너지면 실패. 다시 내려와 호흡합니다. 집중력을 가다듬어 다시 한번 다리를 들어 올리기. 신체 모든 부위가 힘을 나눠가며 균형을 이루는 순간의 짜릿함이란! 자전거 탈 때,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고 흔들리는 핸들이 바로 잡히는 느낌일까요? (저는 자전거를 잘은 못 탑니다만)
정식으로 배운 게 하나도 없는 인생이었어요. 늘 넉넉하지 못하다는 핑계를 대며 과감히 투자하는 일이 두려웠습니다. 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지 못한 채 결혼을 하고, 엄마라는 자리를 지키게 되었어요. 그래도 가끔은 생각합니다. 정식으로 배우지 않아서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고. 마음이 이는 순간 바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진입 장벽이 낮으니 바로 폴짝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 금세 포기하지만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잃을 것도 없다는 이유로 말이죠.
노트북을 열고 백지를 마주할 때마다 생각합니다.
‘미. 치. 겠. 다...!!’
유튜브에 잠시 도망가서 음악 한 곡을 듣고 돌아오기를 반복합니다. 일기장도 부끄러워 남기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 노트를 활짝 펼쳐놓고 글을 써야 합니다. 그대로 열어두는 일에도 적응해야 하고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거리를 걷고 있는 것처럼 부담감이 밀려옵니다.
다시 물구나무서는 일에 대해 생각합니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을 조금씩 쌓아오지 않았다면. 굳은 몸 여기저기를 깨워가며 유연성을 기르지 않았다면. ‘어차피 안될 거야’라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새벽 6시, 차가운 부엌 바닥을 떠올리면서. 어떻게든 브런치 북 하나는 만들고 도망가자고.
벽이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한계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제쯤이면 벽 없이도 멋지게 물구나무를 설 수 있을까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