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dplay의 오랜 팬이다.
10대 마지막 자락부터 20년 동안이나. 엄청나게 열성적인 팬은 아닐지라도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 누구예요?”라고 물어본다면 단박에 대답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세상의 모든 우울과 불안을 끌어안고 살던 그때. 몽환적이고 멜랑꼴리한 영국 밴드들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트래비스와 라디오헤드를 좋아하다가 그 계보를 잇는 콜드플레이를 만나게 되었다. 밴드 이름에서부터 쿨함이 느껴졌다. 정작 아무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이 더 매력적이여서 여기저기 닉네임으로 붙여쓰기도 했었다.
그들은 꾸준했다. 많은 밴드들이 전성기를 지나 해체하거나 잊혀졌지만 변화를 거듭하며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마치 나의 고민들과 마음을 읽고 있는 것 같았다. 매우 감성적이고 몽롱한 느낌의 초창기 음악은 나의 10대를, 찬란한 혁명과도 같은 느낌의 Viva la vida는 나의 20대를.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에 몰입하며 일상의 고단함으로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 2017년도 그들의 첫 내한 소식을 듣고 몸속의 세포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비록 치열한 티켓팅을 뚫더라도 자그마한 아이를 맡기고 콘서트에 간다는 건 상상할 수 조차 없었지만. 그저 기사를 읽고 동영상을 보며 현장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흡수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내 언젠가 꼭 콘서트에 가고 말테다!’ 다짐하면서.
아이들이 크고 나니 뽀로로에서 클래식을 지나 내 음악적 취향을 다시 찾을 여유가 생겼다. 2019년도에 발매한 Everyday Life라는 곡을 듣는 순간! 아이들을 키우면서 날카롭던 모서리가 둥글어진 나처럼, 그들의 음악도 달라진 느낌이었다. 세상의 아픔을 껴안아주는 듯한 따뜻함과 긍정적인 메시지들이 녹아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첫 공연 장소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이었다. 보통의 아티스트들이 일반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그곳에서, 일출과 일몰에 맞춰 조명 없이 진행되었다. 콘서트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2-3년간 투어를 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발표가 내심 아쉬우면서도 자랑스러웠다. 정체되지 않고 늘 변화하며 나아가는 모습이 20년이 넘도록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Hold tight for everyday life/
1년 동안이나 카톡 프로필에 적어 둔 그 가사가.
나를 위로해주고 힘을 실어주었다.
요즘 첫째는 BTS 노래를 외워 부른다.
태권도장 스피커에서 흘려듣던 노래들을 영상으로 보여주니 첫째의 눈빛이 반짝였다. 가사도 찾아 외우고 뮤직비디오도 함께 보았다. 이 나이에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BTS 음악은 무언가 달랐다. 해외 리액션 영상들을 보면서 그들의 음악에는 세대와 언어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분명 있었다. 남편도 꼬셨다. 내가 그랬듯 처음에는 반응이 시원찮았다. 그러던 어느 날 웃고 말았다. 남편 핸드폰에 저장된 BTS 플레이 리스트가 자동차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지난 금요일. coldplay와 BTS의 콜라보 소식을 듣고 마음이 한없이 콩닥거렸다. 이미 아들에게 콜드플레이 팬심을 고백했기에 신곡을 틀어 함께 들었다. 얼마 전 엠비규어스 컴퍼니와 콜라보한 곡의 뮤직 비디오를 함께 보았을 때 아들은 엄마의 모습이 살짝 낯선 눈치였다. 조금 요상한 댄스와 애매한 느낌의 Higher power를 매일 외치는 엄마의 모습이란. 하지만 이제는 먼저 알아봐준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밴드 맞죠?" 라며. 그리고 그 밴드가 아들이 좋아하는 BTS와 함께 곡을 완성했다. My universe. 살아생전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저 놀라웠다.
유튜브 어떤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가 나에게 비틀즈를 알려주었듯, 아들에게 콜드플레이를 들려주고 싶다고.' 그리고 BTS까지 더해본다. 아들에게도 언젠가 사춘기가 찾아오겠지만 그 어떤 연결고리 하나는 남겨 두었으면 좋겠다.
크리스 마틴의 핑크색 운동화 끈처럼.
마음만은 영원히 늙지 않고 이어지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