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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일 Aug 20. 2021

빈 병과 코인 사이에서


어느 일요일 아침 8:30분



모아 둔 맥주병을 담아 편의점으로 갔다.

한 병에 130원씩, 모두 8병이다. 옆에서 커피를 내리던 젊은 손님의 시선이 느껴진다. 아르바이트생의 늦은 일처리가 신경이 쓰이는 걸까, 이 시대에 병을 바꾸러 다니는 사람이 신기한 걸까. 나는 계산대 옆에 비켜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를 내린 손님이 떠나고, 이번에는 중년의 남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계산대 위를 가득 차지한 맥주 8병을 보는 순간, 아저씨의 눈은 동그래졌다. 평소에 가던 마트로 갈걸 그랬나, 좋지 않은 예감이 엄습했다.



" 오! 학생! 부자 되겠는데?"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탓에, 어쩌다 나는 공병을 바꾸러 다니는 가난한 학생이 되어버렸다. 무언가 불편한 마음이 일었지만 일단은 정중히 말씀드렸다.



" 저는 학생이 아닙니다."

" 아, 그래요? 음. 돈을 모으려면 말이죠... 그런데 이 동네 살아요?"



우여곡절 끝에 1,040원이 내 손에 도착했다. 8병의 공병이 돈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일요일 아침에 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걸까... 급히 호주머니에 돈을 넣으면서도 왠지 모를 억울함에 할 말은 하고 싶었다.



"돈 때문이 아니고요, 공병은 재사용할 수 있어서 바꾸러 오는 거예요."



돈을 모으는 일에 대한 훈계는 그렇다 해도, 이 동네에 사는지는 왜 물어보시는 건지.. 차가 없는 텅 빈 도로를 건너며 마음이 한없이 술렁거렸다.




나는 가끔 병을 바꾸러 다닌다.

남편은 절대 하지 않는 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 부끄럽다고 여기는 일이다. 걸을 때마다 장바구니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병들을 진정시키느라 걸음이 조신해진다. 어깨도 아프고 수고스러운 일이지만, 매일 착실히 쓰레기를 배출하는 내가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다. 가까운 곳에 회수 기계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독일의 판트처럼  플라스틱, 유리병, 캔이 모두 돈이 되어 돌아온다면 우리도 조금 더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공병은 세척하여 수십 번 넘게 재사용할 수 있음에도, 우리나라는 아직 그 횟수의 절반밖에 안된다고 하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 사실 말이지. 얼마 전에 코인을 샀어!”


조심스럽지만 단도 진입적으로, 이 전화의 주제는 코인이었다. 코인의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지인의 들뜬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우리의 형편을 걱정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망설이다가 전화를 한 것이다.



"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엄마는 돈을 꽤 벌어서 채굴기도 샀다니까."

" 아... 정말요? 채굴기.. 가... 얼마나 환경에 유해한데요.. 아.. 하하 "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은 이랬다. 비트코인 채굴장으로 인해 미국의 세네카 호수가 온천처럼 펄펄 끓는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읽은 탓이다. 저녁 9시면 소등하는 집에서 24시간 내내 돌아가는 채굴기라니. 상상만으로도 다음 달 전기세가 걱정되었다.



그녀에게 코인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감성적이고, 속세와는 멀게 느껴지던 사람이었는데. 나만 빼고 모두가 투자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놀라움은 잠시 접어두고 진심으로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전했다. 불행히도 시드라고 불릴만한 돈이 없다는 말과 함께. 과연 돈이 있다 해도 간이 벼룩만 한 내가 버틸 수는 있을까? 멘탈이라도 단단해야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살아남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오후 내내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흥미로운 코인 이야기들로 내 머릿속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비트코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블록체인이란 무엇인지, 세상에 코인의 종류가 이렇게나 많았었다니! 영화 속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현재 진행형임에도 그동안 전혀 관심이 없었다. 누군가는 코인으로 돈을 벌어 대출을 갚았다고 했다. 잠시 상상을 하며 마음이 두근거렸다가, 코인 사기의 충격으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읽고 식은땀이 났다. 이건 무리다. 물의 상태, 깊이를 알지 못하면서 발을 담근다는 것은 도박과도 같은 일이니까.









그분은 정말 내가 안타까웠는지도 모른다.

빈 병을 바꿔 돈을 언제 모으냐고. 돈이 모래처럼 가벼워 차곡차곡 쌓아만두면 가치가 날아가버리는 세상이니까. 20여 년 전쯤일까. 지금과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10평대 우리 집값이 최고점을 찍고, 모두가 투자 열기로 뜨거웠던 그때, 아빠는 집을 팔았다. 전세를 구하고 남은 돈은 예금으로 묶어 두신다고 했다. 기댈 곳이 예금 금리뿐이던 아빠의 통장은 무사할까? 나는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경제 기사를 읽다가 집에서 뒹구는  아이가 살아갈 날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가끔씩 멈춰서서 생각해보자고.  중요한 것을 잊고 있지는 않는지. 끊임없는 홍수와 산불 소식에 마음이 무거웠던 여름.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있다.



빈 병과 코인 사이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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