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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쓰다 Feb 10. 2022

태명은 '축복이'입니다

#1. 

회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오른쪽 아랫배에서 자꾸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낀 지가 오래되었다. 그때 나는 회사일이 너무 바빠서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내던 시기라 큰 병은 아니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프로젝트가 다 끝나고 그제야 찾아간 병원에서 '자궁내막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자궁에 각 6cm 크기의 혹이 두 개 붙어있어서 총 12cm처럼 보인다는 진단이었다. 하나는 물혹이라 별일 없겠지만 하나는 생리혈이 뭉쳐 굳어버린 혹이라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날로 큰 병원에 가서 수술 날짜를 받았다. 


어릴 때부터 줄곧 앉아있는 게 곧 직업이었던 터라 한 번씩 산부인과 검진을 받고 싶긴 했지만 '산부인과'라는 병원의 문턱은 예전엔 너무나 높아 보여 쉽지가 않았다. 결국 그 두려움이 혹을 더 키우게 된 결과가 된 것 같긴 하다. 결국 수술을 받고 생리를 멈추게 하는 호르몬 주사를 6개월 간 맞아야 했다. 여자들에게 있어서 생리를 안 한다는 말은 적절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해서 사실 처음엔 좀 기뻤던 것도 사실이다. 주사를 맞는 동안에는 갱년기 증상을 겪어야 한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첫 달 호르몬 주사를 맞았을 때는 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시체가 되었다. 그 후론 주사를 맞는 날마다 휴가를 썼다. 결국 주사를 다 끝내지 못하고 5달만 맞았는데 차라리 생리통이 낫겠다 생각했다.


#2.

의사 선생님의 말대로라면 생리가 나와야 할 때쯤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을 떠났다. 회사 일과 코로나가 겹쳐 미뤄두었던 여행이었다. 여행 전부터 몸이 피곤하고 붓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 전보다 살이 많이 쪄있었기 때문에 운동이 부족해서 그럴 것이라고 짐작만 했다. 보통 신혼여행이라고 하면 관광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코스로 짜기 마련인데 우리는 호텔에 딸린 테니스장에서 매일 아침 격렬하게 테니스를 쳤다. 그러고선 바로 탁구대로 달려가 탁구를 열심히 치고 주변을 산책하며 온 힘을 다해 몸을 쓰고 돌아다녔다. 하루 한 잔 피로를 달래는 카페인 가득 커피를 마시고 언제 먹어보겠냐며 비싼 프랑스 코스요리를 곁들임 와인 무려 5잔과 함께 즐겼다. 


여행이 끝나갈 때쯤엔 생리가 시작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와서도 생리는 시작되지 않았다. 그리고 몸은 점차 무거워져 갔고 아침에 제때 일어나지도 못했다. 뭔가 이상한데, 에서 이건 진짜 이상해,라고 생각했을 때 바로 임신 테스트기를 했고 늦은 밤이었는데도 아주 진한 두 줄을 보고야 말았다. 남편은 진짜냐며 못 미더워했고 나도 얼떨떨하기만 했다. 다음 날 산부인과에서 조그맣고 동그란 아기집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려 5주 6일 차의 초음파 사진을 받아 들었단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초음파 사진을 건네주신 의사 선생님은 내게 처음 자궁내막증을 진단해주신 선생님이셨다. 그래서인지 '완치가 쉽지 않은데 축복이 찾아왔구만.'이라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엄마를 완치시켜준 아가라는 타이틀이 마음에 들어서 우리는 태명을 축복이라고 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에게는, 특히 나에게는 축복이가 정말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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