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일 차 - 대화라는 처방전

무기력한 방에서 바깥세상까지

by 강호연정

오늘의 증상 : 하루 종일 졸리고 무기력한 증상이 지속됨. 주치의와 상담 후 약을 바꾸기로 결정.

속이 좋지 않아 며칠 거의 먹지 못했으나, 저녁에 상태가 나아지자 과식. 다행히 폭식까지는 아님.


지난 한 주는 몸도, 마음도 가만히 주저앉은 날들이었습니다.

폭식과 다이어트, 거기에 무더위 속 멍청한 운동까지,,,,

몸은 버티지 못하고, 무기력은 이불속 깊숙이 나를 파묻었습니다.


침대에서 하루 종일 내려오지 못한 채

휴대폰 알림도 끄고, 모든 연락을 차단한 채

세상과 단절된 시간.

조용히 숨만 쉬며 천장을 바라보면서

내 안의 생기가 조금씩 마르고 있는 걸 느꼈습니다.

'이러다 정말 은둔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마침 오늘은 병원 가는 날, 병원을 미룰 수는 없지요.

겨우 몸을 일으켜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니

청소는커녕 숨결조차 정체된 집 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울할 땐 청소가 좋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일단 창문부터 열어 제켰습니다.


숨을 들이켜자 뜨거운 열기가 밀려왔고,

잠깐의 망설임 끝에 에어컨을 틀었습니다.

(그래, 환기도 중요하니까. 이건 합리적인 선택이야!)


세탁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고, 냉장고를 정리하고,

밀린 재활용품을 끌어내며 손을 움직이자

아주 조금, 감정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돈된 공간이 제 안의 혼란도 다소 잠재워주는 듯했어요.


마침 협력업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놀러 오세요.”


이 단순한 말 한마디가 며칠 만에 저를 집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사무실.

익숙한 얼굴들, 커피 한 잔,

디저트 한 입, 그리고 그보다 더 달콤했던

회사 욕.


그 자리에 있었던 우리 모두는,

그 회사로부터 화난 전력이 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웃으며 쏟아내는 말들 속에서

공감이 오가고 마음의 작은 조각이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 얘기, 사람 얘기, 앞으로의 얘기.

소소한 대화들이 제 안의 억눌렸던 감정을 톡톡 건드려

언제 무너졌냐는 듯 다시 웃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를 살린 건 약도, 휴식도 아닌

사람들과의 대화였습니다.


말이 오가는 사이,

분노가 무장해제되고 두려움이 조금씩 벗겨지며

저는 다시 조금 살아났습니다.


회사는 밉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만난 좋은 사람들 덕분에

저는 오늘 미움을 멈추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조금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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