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과 도덕
피카소는 여자관계가 복잡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스쳐 지나간 여자는 셀 수 없을 정도'라고 얘기할 정도라고 한다 , 약물 중독 화가인 ‘브라이언 루이스 사운더스’는 수많은 페인팅을 업로드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도 간혹 가수나 많은 예술가들이 스캔들이나, 마약사건에 연루되는 기사들이 많이 나온다.
과연 그들이 영감적 삶을 살아가는데 그것들이 진정으로 도움을 주기 때문일까.
영감을 찾는 것은 예술가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자 고통이다. 그 여정을 위해서라면 예술가들은 그 어떠한 경험을 겪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인가, 일반적인 평범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경험 이외에 , 그들은 여러 가지 도덕에 벗어난 유혹들에 일부러 넘어가야 했던 것 일까. 예술가 이퀄, 도덕에서 좀 더 자유로운 사람들인가?
이러한 생각과 질문을 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외국에서 살면서 사람들은 만나면 미술을 한다고 하면 간혹 미술가들은 미치광이야 , 그들은 정말 자유롭잖아, 너도 그렇지 않니 라는 질문들을 적지 않게 듣는다. 자유롭다는 것은 여기서 도덕적인 기준을 벗어난 행동을 말하는 거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사람이 외모만 보고 판단하지 않으니까...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ㅎㅎ;;
내가 그렇지 않기에, 나는 나 스스로 도덕적 기준 아래 생각은 자유롭게 가지되 행동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서 나는 또 이렇게 대답한다 미술을 한다고 미술가들이 다 자유로운 건 아니에요.
이 "예술가", "영감" 이란 용어와 직업환경으로 나뉘어서 그 도덕의 범의 노출 범위 여부를 가리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나처럼 예술을 공부하는 친구들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개별마다 다르겠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 보다 자유롭게 살아가거나 어떠한 예술적 영감을 위해 사회가 만들어내는 규범이나 윤리적 밖의 행동을 다른 일반 사람보다 "더"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 예술 집단에 당연히 존재한다. 근데 나는 "그들이 예술을 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사람이다"(자유를 여기서 나는 비 윤리적인 행동이라고 칭하겠다)라기보다는 "자유롭기를 선택하고 그들은 예술을 한다"라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직업과 환경으로 구성된 "사람"이기전에, "인간" 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육체와 정신을 사회적으로 사용한다. 여기서 핵심은 정신일 것이다. 정신적으로 인간이 나약할 때 인간은 의지 할 것을 찾아낸다.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부모의 가르침과 울타리 안 즉 환경이라는 울타리에서 성격과 인성이 형성되지만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인간은 언제나 자기 테두리를 만들 수 있다. 그 테두리 안에 자기 스스로가 지도할 수 있는지, 누구를 따를 수 있는지 이러한 역할들을 자연스레 경험하고 알게 된다. 자연히 고된 일을 경험하고, 상처 받거나 어떠한 역경을 겪는다. 그럴 때 인간은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의지할 만한 예시를 발견한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어떠한 믿음을 따르게 하는 종교이거나, 어떤 책의 문구 일 수 있다. 이는 더 여러 가지 형태로 되어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사람은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운동을 하면 스트레스를 줄여준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술을 마시고 울적한 마음을 푸는 사람이 있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 속에 존재하는 것들은 사회가 만들어준 인간 자기 위로 제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정도로 무방하다. 사람이 어른으로 성장하고 사회에서 겪는 여러 정신적 육체적 타격은 다시 사람사회로 전달된다. 그 중심에 인간이라는 동물이 있다.
한국의 속담: 우물 안 개구리. 우물은 개구리가 만들어낸 테두리이다.
테두리와 우물은 인간과 개구리에게 주어진 환경이다. 그 범위와 크기는 천차만별이다. 그 울타리는 결국 인간이 지은 발명품이고 우물은 애초에 개구리가 물을 찾아 직접 뛰어들어간 것이다.
개구리는 그 우물 안에서 다시 뛰어나올 수 있고, 인간은 그 울타리의 문을 만들고 물을 열고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인간과 개구리들은 그렇지 않았고, 그렇지 않다. 그 울타리와 우물에 물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익숙해짐은 나와 당신을 불속 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위에 언급했듯이 사회에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자기 위로제들이 넘쳐난다고 언급했다. 그것들이 인간을 위로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지만 인간에게 이로움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건강을 해치거나 윤리적인 문제로 다른 고난을 겪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법이 존재하고 그것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와 인간의 울타리 우물 속 개구리들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울타리는 인간이 만들어낸 장치였고, 개구리들은 물이 있는 곳을 향해 뛰어 들 어간 곳이다. 그곳이 우물이었다.
즉, 울타리와 우물은 스스로가 선택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 공간 밖에서도 숨 쉬고 먹고 생존할 공간이 있다는 것을 이미 개구리나 인간은 알고 있다. 그러나 내부의 공간은 밖의 공간과 다른 세계이다. 절대로 같을 수가 없다. 인간의 감각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직접적인 인간의 육체적 행동에 더할 나위 없이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개구리는 바로 몇 미터 앞에서 벌어지는 우물 속 광경이 몇 키로 미터 떨어져 있는 개울가 보다 자신의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하늘을 보면 파란 하늘이 보이고 다른 숨 쉬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두 다리를 뻗쳐 뛰어나오기 쉽지 않다. 그 울타리와 우물에는 나와 애초부터 절대 같지 않은 다른 인간이 나 다른 개구리가 살고 있는데, 그들의 행동은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한다. 또 우리 인간은 이 울타리 안에서 자기 위로 제를 발견한다. 외부공간이 아닌, 장치나 벽이 있고 울타리 가 있는 내부 공간에서 우리 인간은 자기 위로 제를 발견한다. 그렇게 때문 소속집단 즉 그 우물과 울타리리라는 것이 자기 위로 제의 선택의 범위와 형태를 자지 우지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예술가 집단에서 마약 집단이 많다는 것은 잘못된 선 판단일 것이다. 만약 이러한 비윤리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전공과 분야의 사람들보다 예술집단에서 수적으로 많다면 , 아마도 예술활동 전후와 상관없이 자신이 선택하고 문을 열고 들어간 울타리에서 자기 위로 제 중 하나이 마약이라는 것을 찾아낸 것이고 그 증상을 예술로 승화하는 것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그 울타리 내부에서 그 자기 위로 제를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이고 선택이다. 또 그 울타리를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보호막이라는 전제하게 만들어내진 벽과 장치는 어쨌든 간에 수동적 실천과 노력을 요구한다.
결론은 이렇다 사람이 이루려는 목적과 방향성이 뚜렷하게 살며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역사적으로 그 수많이 교훈과 가르침을 통해 전달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살아가는데 희망을 잃고 있고 고된 삶을 격는다면 또 당신이 예술가며 새로운 창조를 위해 새로운 영감을 얻으려고 고군분투한다면, 당신의 울타리를 먼저 살펴보아라.
그리고 그 울타리 안에서 최대한 선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배제하려는 용기를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가까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가까워졌다면 용기 있게 문을 열고 나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것이 마약을 하는 집단 사람만이 아니다, 당신의 연인 일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언급하는 울타리라 이런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말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울타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당신이며, 울타리를 쳐내는 것도 당신 자신이고 울타리에 영향받는 것도 당신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도 같은 문맥이다.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거대한 새인 붕鵬으로 변화하는 이 장엄한 사건 즉 메타모르 포시스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다음 편에서 얘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