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회복 기간에 들어갑니다
누구든지 변화하기 위해서는 시도해야 하고, 시도는 곧 주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주기적인 상담과 약물치료를 통해 나아지고 있다는 걸 자각해도, 더 이상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는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상담을 끝내고 나서도 매일 집에만 있거나 활동성 없는 여가 생활만을 이어간다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 밖으로 나와 자연을 만끽하고 하고 싶은 일을 새롭게 도전해 보면서 현재와는 다른 삶, 혹은 안정적인 일상을 이어나가면 우울감에서 더욱 빨리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생활습관을 고치기 위해 강제로 약속을 잡거나 스케줄을 만들어 활동했다. 검정고시 시험 한 달 전에는 독서실에서 하루를 보내며 이를 악물고 생활을 버텼다. 하지만 18년도까지는 검정고시 공부만을 목표로 달려왔는데, 막상 8월에 검정고시를 마치고 나니 스케줄이 사라져 또 놀고먹는 게으른 나날이 시작되었다. 기껏 상담과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정신 건강을 회복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다시 원 상태로 복귀하면 애써 가꿔온 생활이 무너질 게 분명했다.
검정고시가 끝났다고 해서 학교 밖 청소년 생활 역시 끝나는 건 아니다. 대학 입학이나 취업을 택하기까진 아직 시간과 기회가 많이 남았으니, 성인이 되기 전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열여덟 살의 가을부터 집 밖을 나와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다. 나만의 책 만들기부터 영상 제작 프로그램, 청소년 인턴 프로그램 등 관심 분야에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각종 일을 찾아다니고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좋은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으며 돈도 벌고 즐거움도 쌓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바쁘게 산다는 건 힘들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만큼 의미 있고 보람찬 시간을 보낸다는 뜻도 된다. 열여덟 살을 넘기고 찾아온 2019년, 열아홉 살의 나는 무척이나 바쁜 나날들을 보냈으나 그만큼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행복을 느꼈다. 그 이전까지는 무기력하고 조용하고 어두운 밤이 되면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지냈는데, 바쁘게 일하고 활동하며 지내다 보니 그런 상념에 잠길 시간도 없었다.
인턴 프로그램 참가를 위해 근로지에서의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어느 날, 문득 ‘행복하다. 내일이 기대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는 행복하다거나 앞으로도 살아가고 싶다는,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생각들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우울한 생각에 잠기지만 않으면 다행인 날들이었고 가끔은 살기 위해 먹고 씻는 일마저 귀찮아 잠에서 깨어나서도 몇 시간 동안 누워 휴대폰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랬던 내가 학교에 가는 시간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다니. 직장 상사인 어른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며 주어진 일거리를 마치고, 남는 자유 시간에는 계약한 글을 쓰며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삶.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며 다음 날 할 일을 생각하고 잠드는 일상이 평화롭고 안정적이라는 걸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이런 나날들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고.
상담을 받은 지 1년이 다 되어갈 즈음, 내 상태가 좋아졌다는 걸 느낀 선생님은 이제 슬슬 상담을 마무리해도 괜찮을 것 같다며 종결을 알렸다. 그 후 한 달에 한 번씩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 등의 사후관리가 이어졌다. 실제로 상담을 끝마친 내 상태는 자퇴를 막 했던 직후,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었다.
스스로도 긍정적인 마음과 행복감을 느끼니, 주변 사람들 역시 내가 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가족들과 친교를 쌓을 시간이 늘어나면서 관계가 회복되고 친구들과는 미래를 계획하면서 연대감을 쌓아갈 수 있었으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시간들을 얻게 되었다. 더 나아질 수 있다,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은 곧 현실이 되어 내 자존감을 높여주고 자신감을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또, 내가 작가로서의 직업정신을 갖게 해준 작품 계약의 기회 역시 좋은 시기에 다가왔다. 혼자서 글을 쓰기만 하고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나 실력을 선보일 자리가 없었다면, 작가로서의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꾸준히 노력하고 주변에 글을 쓰는 사실을 어필하자, 노력을 알아봐 준 사람들이 기회를 주었다. 그 기회를 시작으로 작품을 정식 출판하며 작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단순히 책을 한 권 내고 마는 작가가 아니라,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을 하며 내 이름을 알리고 싶다는 명예욕이 들끓었다.
주저앉은 사람이 다시 일어나는 데에는 휴식과 안정도 필요하지만, 목표를 향해 달리기 위한 의욕도 필요한 것 같다. 작고 사소한 활동들부터 해나가며 성취감을 얻으니 더 큰 활동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과 함께 나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그래서 청주를 벗어나 서울까지, 단기적인 프로젝트에서 장기적인 팀 활동까지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고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는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그 당시 아무것도 없었던 내가 의지를 갖고 도전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도, 다양한 기회를 얻지도 못했을 테니까.
건강하고 긍정적인 나로 돌아가기 위해 걷는 과정은 짧지 않았지만, 성공이라는 이름의 끝은 분명히 있었다. 어느새 뒤를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수많은 발자취가 보였다. 비로소 나는 뿌듯함과 행복감에 매료되어 뜀박질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을 바꿔놓은 큰 선택인 자퇴와 나의 본심을 돌아볼 수 있었던 상담을 통해 성장의 전환점을 밟은 셈이었다.
그렇게 나는 바쁘고 활기찬 마지막 십 대 청소년기를 마치고 성인의 길로 들어섰다. 스무 살이 되던 2020년 1월 1일 12시, 나는 친구들과 함께 새해 축하를 외치며 음식점에서 술을 주문했다. 앞으로 들이닥칠 수많은 미래들을 생각하지 않은 채 친구들과 성인의 기쁨을, 젊음을 즐겼다. 미래에 대한 불안 대신 현재를 만끽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희망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으므로,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안주와 함께 넘긴 술 한 잔이 씁쓸하면서도 달콤했다.
<우울과 5년째 동거 중입니다>는 주 1~2회 연재로 이루어집니다.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에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