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회복 기간에 들어갑니다
왜 우리는 감정을 숨기게 되는 걸까?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하는 상담에서도, 상담사에게 본심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거나 본래의 이야기를 과장해서, 혹은 축소해서 털어놓게 되는 것일까? 본래 마음은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무의식적인 방어기제 때문에 드러나는 반응일 것이다. 실제로 내가 나의 모습이나 상황을 좋게 말하려고 포장하거나 마치 제삼자의 일인 것처럼 거리를 두고 말하는 행동 역시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설명을 들은 바 있었으니까.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착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면서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 증후군이 우리 한국 사회에, 그것도 특히 여성들에게 많이 발견된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의 가정양육방식과 성장환경에 있어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착한 아이가 될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거다. 물론 나 역시 이러한 증후군이 나에게 있다는 걸 느꼈고, 지금도 느끼고 있다.
나는 제법 내 감정에 솔직한 편이라고 생각했고, 내 마음을 드러내야 하는 상담에서는 상담사 선생님께 관련된 사건이나 그에 관한 내 감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숨기고 싶어 감상에 관한 말은 하지 않거나, 남의 입장으로 상황을 관찰해 서술자의 표현으로 말을 하게 됐다. 예전에는 자각하지 못했는데, 상담 선생님이 이러한 부분을 지적해주면서 나에게도 이러한 방어기제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버릇을 단번에 고치기란 쉽지 않다. 방어기제는 나쁜 게 아니니까. 당시의 어렸던 내 생각이나 솔직하게 말하기 부끄러운 감정들을 감추고 싶어 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부분들을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무엇이 문제인지, 나의 정확한 감정과 원인을 찾을 수 없게 된다는 거다. 이렇게 어리석은 나의 모습도 남에게 알려주고 감내해야 한다니!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결국 과거의 나도 지금의 나도 전부 본인이 아닌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일은 상담을 할 때도, 앞으로 살아갈 때도 꼭 필요한 부분이다.
학교 밖 청소년일 당시 내가 상담을 하면서 느낀 감상은,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내가 너무 달라 그 괴리감과 부담감에 좌절했다는 점이었다.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이러한 상황에 안식을 취하거나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느꼈고, 상담실이나 친구들에게 하소연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절망했다. 해결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레 우울감이 찾아왔다. 그로 인해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감정이 오락가락 불안정해졌다.
무엇보다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탈출 욕구가 강하게 들었다. 학교 계단을 내려가면서 발을 잘못 헛디뎌 떨어지면 병원에 입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학교에 가지 않을 합법적인 이유가 생기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잠을 자기 위해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아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했다. 새벽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하거나 날밤을 새우는 등의 불면증도 있었고, 그렇게 고요한 밤에 혼자 눈을 감고 있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렇게 상태가 위험하다는 걸 자각하고 주변 사람들이 더 일찍 도움을 주었다면, 어쩌면 학교를 자퇴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퇴한 걸 후회하지는 않으나 극단적으로 생각하기 전, 좀 더 이성적으로 이 상황을 판단할 여유는 생기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장 정신의학과에 가는 선택은 할 수 없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보수적인 부모님은 우울증을 부정적으로 보셨다. 우울증은 의지가 나약해서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했고, 당연히 정신의학과에 관한 시선 역시 좋지 않았다. ‘정신병원’ 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희고 폐쇄된 병동과 이상행동을 보이는 환자들을 말하곤 하셨으니까. 청소년들은 정신의학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으려면 법적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데, 자퇴로 부정적으로 여겼던 부모님이 이를 허락해줄 리 없었다.
상담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때 나는 종종 위클래스에 상담을 받으러 갔었는데, 수업 시간을 빠지고 상담을 받는 데다가 고민을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는다는 점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러니 내가 상담을 받는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숨기게 되었다. 나는 이미 수십 차례의 상담을 받고 여러 명의 선생님을 만났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지금도 상담을 받고 있고, 성인이 된 후 약물치료도 받고 있지만, 우리 가족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건 결코 부끄러운 사실이 아니고, 치료를 받으며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건 좋은 일인데도 우리 사회의 인식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을 그늘로 몰아넣는다. 치료를 받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되고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박힌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사람들 앞에서는 나의 상태를 설명하지 못하고 숨기게 된다. 억지로 괜찮은 척해야 하고, 억지로 웃다 보면 점점 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무너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본인의 아픔과 고통을 숨기지 말고 어딘가에 털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이 썩어 곪아 갈 테니까.
언젠가 이야기를 털어놓다가, 상담 선생님께 울면서 말한 적이 있다. 이런 내 부정적인 감정과 불만을 늘어놓으면, 선생님께 이러한 감정이 전이 될까 봐 무섭다고. 선생님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대하는 느낌이라 너무 죄송하고, 나를 못난 사람으로 볼까 봐 너무 걱정된다고. 처음 한두 번은 괜찮아도, 상담을 진행할수록 나아지는 모습은 없고 불평만 털어놓는 내가 한심해 보였다. 그리고 반대로 이런 나를 계속 응원해주는 선생님께 죄송했다. 하소연을 하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의 불안을 남에게 떠넘겼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대답하셨다. 결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기 위해 본인이 이 자리에 있는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오히려 솔직한 내 감정을 이야기해야 문제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친밀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거라고 하셨다. 앞으로도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아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이셨다. 나는 남에게 잘 공감하고 이해하는 나머지, 때때로 부정적인 감정에 옮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걱정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본모습을 들여다볼 용기가 생기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였지만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마음이 들었다. 빠르지는 않아도 천천히,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우울과 5년째 동거 중입니다>는 주 1~2회 연재로 이루어집니다.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에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