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회복 기간에 들어갑니다
가장 큰 원인인 학교에서 벗어났으니, 이제는 우울증을 고치기 위한 다른 방법을 모색할 때다. 그 방법으로 나는 장기 상담을 택했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 진행했던 심리검사에서 고위험 판단을 받았던 나는 외부에서 오신 상담자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했는데, 그분이 바로 지금의 나를 살아있게 해주신 청소년동반자 선생님이시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일 시절부터 또래 상담자로 활동했고, 중학교 때는 종종 위클래스를 찾아가 상담을 받았기 때문에 선생님과의 만남이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다. 그 이전에도 고등학교 위클래스 상담실에서 상담을 여러 번 진행했지만 외부 기간에서 파견되어 오셨다는 점이 약간 부담스럽기는 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선생님을 처음 뵙자마자 자퇴하고 싶다는 의견을 남기고 설득을 위해 자퇴 계획 노트를 작성한 바가 있다. 선생님이 그 뒤로 나의 자퇴와 이후의 생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기 때문에, 상담에 더 적극적이고 열의 있게 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만났던 분이셔서 그런지, 다른 상담 선생님들보다 더 애착이 간다. 그리고 가장 오랜 시간 상담을 함께 해주신 분이기도 하다. 거의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길고 험난한 상담을 포기하지 않고 쭉 이어왔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보다 나의 의견과 감정을 이해해주고 내 편을 들어주는 분이셨다. 그 응원과 지지가 내게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자퇴 이후, 우리가 만나는 장소는 학교에서 꿈드림 센터로 바뀌었다. 가끔은 기분 전환을 위해 카페나 식당에서 만나기도 했다. 대부분은 센터나 바깥에서 만나지만,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꺼리는 은둔청소년들은 청소년동반자가 직접 자택까지 찾아가 상담을 진행한다고도 한다.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고, 상담과 공부를 똑같은 센터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대부분은 꿈드림 센터에서 상담이 이루어졌다.
자퇴 이후 상담의 주요 주제는 지금의 무기력과 우울감을 이겨내는 쪽으로 바뀌었다. 막상 자퇴를 했는데도 행복하지만은 않고, 애써 세워놓은 계획들이 우르르 무너지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면서 내 불만이나 감정들을 선생님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말없이 들어주시고, 가끔은 맞장구를 쳐주시고,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주셨다. 상담에서 보다 중요한 건 말하기 보다 듣기라던데 그 말이 꼭 맞았다.
그때 내가 상담에서 털어놓는 고민들은 비슷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자퇴한 후 스스로 입시를 준비하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 빈곤에 대한 결핍과 가정의 불화, 그 사이에서 커지는 분노와 불안과 우울. 고민은 한 번에 확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내 힘과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아직 청소년이었다. 내 힘으로 돈을 버는 것도, 독립하는 것도, 뭔가를 해내기도 부족한 나이였다. 법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해 제한되는 행동들이 많았고 아직까진 부모의 통제 속에 있어야만 했다.
10대 청소년일 적의 나는 그 사실이 못내 억울했던 것 같다. 무언가를 하려면 꼭 부모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자퇴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았더라면 일찍이 자퇴해서 곧장 4월에 있을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었을 텐데, 유예 기간이 지나지 않아 뒤늦게 검정고시를 치렀으니까. 자퇴를 설득할 당시 부모님과 너무 잦은 갈등을 겪어서인지, 시간이 흐르고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에도 마음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집을 떠나고 싶었고, 가족과 멀어지고 싶었고, 또 한편으로는 스스로 성공하고 싶었다. 성공에 대한 명예욕과 금전욕이 상당히 강했다. 이게 원래 내 성향이라서 그런 건지, 자라온 환경에 있어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몰라도 단 하나는 명확했다. 좋아하는 일로 직업을 삼고 인정받고 싶다는 것. 그건 바로 글이었고, 작가로서의 성공을 뜻했다. 남들의 이야기는 귀에 들리지 않고 한창 꿈에 젖어있을 나이이기도 했다.
사실 어른들이나 부모님이 내가 글 쓰는 일을 격하게 반대한 일은 없다. 그저 돈 못 버는 직업이니 취미로 써라, 겸업으로 하다가 나중에 성공하면 그때 전업 작가가 되라는 식으로 뼈아픈 현실과 관련된 조언 내지 잔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글을 단순히 취미로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루에서 온전히 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취미나 겸업은 글을 쓰고 몰두하는 데 비중을 두기 어렵다. 고등학교를 다니며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은 원래 ‘멀티’가 안 되는 존재라지만, 나는 더더욱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지속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더욱이 상태는 심각해져 글도, 공부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상황이 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대로 가다간 하나를 제대로 해내기는커녕 내 정신도 제대로 못 잡을 거라는 생각에 학교를 뛰쳐나오긴 했으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커다란 상처는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치료해야만 아문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줄 사람을 필요로 했다. 다행히도 그 사람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하소연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정작 그 문제가 생긴 원인과 그 아래에 있는 과거사, 가정사, 성장 환경까지 들추어가며 자신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그게 나를 도와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아 한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성격이나 어느 한 부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고, 남에게는 드러내고 싶지 않을 수 있으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솔직해지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못난 나를 드러내는 게 싫었다.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다 보면 어느새 나는 또 다른 대변자가 되어 내 본심을 드러낼 수 없도록 한 겹 방어막을 치거나, 나를 괴롭히거나 괴롭게 한 원인들을 온전히 탓하지 못하고 나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돌려 말했다. 비록 지금은 마음이 힘들어서 상담을 받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잘못된 사람이 아니며 어떻게든 잘 지내려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필하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이건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 버릇 같다.
선생님은 주의 깊게 내 말을 잘 들어주셨고, 내가 본인 스스로릍 탓하려고 하면 적당한 이유를 대면서 나를 위로해주셨다. 이야기를 하다가 감정이 북받칠 땐 감정을 잘 정리할 수 있도록 늘어놓은 이야기를 잘 풀어 설명하고, 꼭 햇빛을 보며 산책하고 늦게 자면 안 된다는 등의 경고 어린 걱정을 덧붙이는 걸 잊지 않으셨다.
그렇게 어찌어찌 상담이 잘 진행되는 듯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주일 만에 만나 그동안의 일과를 이야기하고 지난 시간에 전부 나누지 못한 사건에 관해 대화할 때였다.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숨을 고르던 나에게, 선생님은 나에게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은진아. 너무 착하게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돼. 너를 그렇게 숨기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 눈물이 밀려 나왔다. 그것이 일종의 자기방어에 가까운 행동이었다는 건 더 나중에 알 수 있었다. 다만 선생님께 자신의 본심을 감추려는 그 모습이 전부 들통났다는 생각에 가슴이 찔리면서도, 그 부분을 알아봐 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우울과 5년째 동거 중입니다>는 주 1~2회 연재로 이루어집니다.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에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