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회복 기간에 들어갑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나는 부지런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강제적으로 스케줄을 만들어야 한다. 평소 나는 잠이 많아서, 알람을 맞추지 않으면 12시에서 오후 1시까지 잔다. 하지만 오전 11시에 수업을 잡으면 센터에 가는 시간을 포함해 적어도 9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약속한 시각에 지각할 수는 없으므로 반드시 9시에는 눈을 뜨게 된다. 이런 식으로 강제적인 스케줄을 만들어놓으면 생활 습관을 유지하면서 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오전에 일정을 잡아두곤 한다.
그리고 약속을 잡아두면 싫어도 씻어야 하고 밥을 먹고 외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집안에서만 지내며 생긴 게으름과 우울감을 동시에 이겨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우울증의 상태가 심각하면 마음을 먹어도 해내는 게 힘들지만, 나 자신과의 약속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신뢰와 시간이 걸린 약속이라고 생각하니 억지로라도 몸이 움직여졌다.
사실 그 당시의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내 의지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시선 때문이 더 컸던 것 같다. 몇 달간 대부분을 집에서 놀았으니, 이제는 슬슬 휴식을 마칠 때였다. 내가 계획했던 일들을 해나가며 남들에게 자퇴했다는 사실이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일찍이 다른 사람들에게 걱정 섞인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그 시선과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줄 만큼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랜만에 꿈드림 센터에 발을 들였을 때, 새로운 선생님들과 만나며 느끼는 어색한 공기에 절로 말이 꼬였다. 센터 선생님들은 사적인 관계를 맺고 넓히는 데 서투른 나를 잘 맞아주셨고, 사전에 검색을 통해 알아 왔던 검정교시 교육 외에도 센터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천해주시며 자퇴 이후에도 소속감을 느낄 공간이 있도록 해주셨다.
우울증이 생기면 더욱 집안에만 있고 싶고 사람들을 만나는 걸 꺼리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맞고 편안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인간관계를 놓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가끔은 새로운 인연을 만나며 어색함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과 기대감을 경험해보는 일도 좋은 일이라고 한다. 나 역시 내향적인 사람이라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보단 기존 인연들과 만나는 게 편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부딪쳐야 하는 일들이 있으니까.
그리하여 오전에는 검정고시를 위해 1:1 멘토링 수업을 듣거나 스마트 교실이라는 단체 수업을 들었고, 오후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저녁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등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는 집에서 쉬거나, 가끔씩 오프라인에서 열리는 백일장 및 공모전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을 오갔다.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된 일상은 여유롭게, 하지만 적당한 성과를 낼 수 있는 한에서 이어졌다.
공부와 취미, 상담과 휴식을 병행하며 살아가니 지쳤던 마음도 조금씩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당장 ‘행복하다’라고 말할 만큼은 아니었으나 자살을 생각하는 빈도가 줄어들고 마음이 편해졌다. 당시에도 밤에는 우울한 생각이 들고 몰래 눈물 흘리면 잠드는 날들은 있었지만, 괜찮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곁에서 도움을 주는 선생님과 관계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부모님, 자퇴 후에도 나를 응원하고 놀아주는 친구들이 있어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우울증이 시작되면 생활 습관부터 망가지고, 생활 습관이 망가지면 우울증이 시작된다. 생활습관과 우울증은 떨어뜨릴 수 없을 만큼 아주 가까운 상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단순히 하루 이틀 늦잠을 자고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게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면 어느새 나의 일상은 조금씩 틀어져 간 뒤일 것이다. 그 사실을 자각할 때가 되면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원래 본인의 증상을 일찍이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깨닫고 달라져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가 시작이다.
가장 큰 목표인 검정고시 고득점 합격, 그리고 포기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꿈. 나는 꾸준히 글을 쓰면서 반드시 글로 성공할 거라는 목표를 다졌다. 출간을 통해 책을 내든, 공모전에서 수상하든 간에 나의 이름을 알리고 싶다는 명예욕이 불타올랐다. 물론 돈까지 벌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그 당시의 나는 현실을 잘 몰랐기에 더 꿈에 젖어있었고 그 희망이 다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결과가 무척이나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당시의 내가 실망하지 않을 성과는 해낸 나라서 큰 불만은 없다.
하여간 강제적인 스케줄이 아니었다면 스스로 마음먹고 일어서기란 많이 힘들었을 터다. 힘들어도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는 것과 같은 마음이랄까? 앞으로는 그 당시의 내가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받았던 상담과 나름대로 열심히 살기 위해 택한 다양한 활동에 대한 감상을 남겨보고자 한다. 벌써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내가 10대 청소년일 시절 발버둥 친 기록들을 회상하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그래도 내가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보려고 한 의지가 느껴져서, 고맙고 한편으로는 아련하다.
<우울과 5년째 동거 중입니다>는 주 1~2회 연재로 이루어집니다.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에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