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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진 Jan 17. 2024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수렁에 빠졌을 때

3회기, 스트레스성 위염에 걸리다




지난번에 스트레스성 위염에 걸렸다.

평범하게 먹은 식사가 밤 내내 소화가 되지 않아 구토를 반복하고,

이른 아침 지친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갔더니 지난번과 비슷한 증상이란다.



의사에게 요즘 스트레스를 자주 받느냐는 물음을 받았다.

"뭐 그냥 사회인들이 받는 정도죠."

그러자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정도의 스트레스로는 병이 올 정도는 아니라는 건가?

스트레스를 조심하고, 생활습관을 고치고, 늘 비슷한 말들로 진료를 내린다.



위염이 심해져 며칠 내내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만 잤다.

수프나 죽은 물론, 물도 평소의 마시는 양의 절반도 마시질 못한다.

물을 마셔도 체하는 느낌이 들고 위가 찌릿찌릿 아프다.

좋아하는 커피를 먹지 못하는 것은 물론, 밥조차 제대로 삼키지 못한다.

거의 일주일 간 약을 먹으며 지속된 시간이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위염을 껴안고, 그리고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 상담 시간에 가져갔다.

내 상태를 오랫동안 곁에서 보아온 친구가 조언을 주었다.

먼저 결정하고 결론내린 이야기만을 반복해 이야기하지 말고, 

현재 상황과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라고.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는 지루함도 해결되지 못하는 (혹은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대한 비합리적 신념에 대해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확실히 나는 모든 것을 글로 정리하는 게 편한 사람이다.

해야 할 말을 두서없이 글로 적고, 그것을 또 정리해 말하는 게 더욱 편했다.

그를 이해한 선생님이 '지금 해야 하는 일'을 글로 리스트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몸 건강 지키기,
일정 조율하고 픽스하기,
생활 습관 고치기,
사회복지사 1급 공부하기,
계약한 작품 원고 집필하기.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 시급성에 대한 우선 순위도 적어보고.

가장 1순위는 몸 건강을 지키는 일.

본인 스스로가 '쉬어야 한다', '나아야 한다'고 자각하고 있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위를 쿡쿡 쑤시는 고통에 낑낑대며 하루를 보냈을 때,

어떻게 쉬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았다.

잠은 이미 자서 쉽게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좋아하는 취미가 뭐였던 건지 기억도 안 나고, 그 전처럼 집중이 되지 않고 즐겁지 않았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즐겁지 않고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일상이.

간혹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고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는 상태가 온다.

일종의 공백과 소각 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유일한 대처법은 빨리 주변의 빛을 끄고 잠자리에 드는 일뿐이다.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하자 자연스레 불안과 두려움이 다시 몰려왔다.

또 그 공백을 경험하게 될까봐, 혹은 당시의 감정이 극대화된 탓에.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상담 시간 외에는 납작한 종이처럼 억눌러두었던 감정들이 봇물터지듯 흘러나올 때마다 나는 두렵다.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나약함, 나의 부정적인 그림자,

나조차 돌아보는 것이 두려워 외면하는 감정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왜 이리 무서울까. 누가 나를 비난하지도, 법적인 책임을 가하지도 않는데.



나는 나의 비합리적인 신념을 안다. 나의 문제를 안다. (라고 생각한다)

그 비합리적인 신념을 전환하는 법을 몰라서, 전환하지를 못해서 이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지치고 험난한 시간의 연속이다. 병에서 완치되지 않아 괴롭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선생님께도 같은 이야기를 전하니,

'정신건강 역시 몸 건강처럼 좋았다가 나빠지는 것'이라 이야기 한다.

지금이 당연히 힘든 시기니까, 힘든 건 어쩔 수 없다고.

몸을 관리하듯 정신 역시 관리해 회복할 수준으로 전환하면 되는 거라고.



지금 내게 회복과 휴식이 필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맴돌고 있다.







상담 선생님께서, 나를 자동차에 비유하며 '엔진을 꺼놓지 않고 쉴 새 없이 달린 차' 라고 말했다.

완전히 시동을 꺼본 적 없이 속도만을 조절하다가 에너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차.

주유를 해야 하는데, 주유구가 어디에 있는지

기름을 넣어야 할지, 가스를 넣어야 할지, 경유인지 휘발유인지

너무 기본적인 것을 잊고 말아 헤매고 있는 것이라고.



급할수록 천천히, 복잡할수록 초심으로 돌아가라.

어디서부터 엉켰는지 모를 마음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부터 천천히 다시 찾아보며 나를 재정립하는 시간을 가지라 했다.

그것이 또 하나의 휴식이자 나를 회복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위염 3일차,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녀온 뒤 집에 돌아와 낮잠을 잤다.

말이 낮잠이지 사실상 일어나니 여섯시가 되어서 저녁을 먹고 약을 먹고...

게임도 해보고, 사회복지사 공부도 몇 페이지 하고, 블로그 리뷰도 쓰고.

자정이 넘어 누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 라고 정의하던 기존의 정의를 재정립할 때가 왔다.

먹고, 외출도 하고, 많은 것을 했잖아.



나를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이런 나라도 보듬어줘야지.

유일하게 나의 편이 되어주고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건 본인이니까.

비록 사랑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주 1회 상담, 총 8회기의 상담 기록.
'번아웃 극복'을 주제로 한 짧은 상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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