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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여우 Oct 24. 2021

"시와 산책(Poetry and Walks)"을 읽고

작가 한정원은 "사람과 공간을 여의는 것이 이력이 됐다"하고, "앞으로는 나를 뺀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고 싶다" 고 본인을 소개하고 있어서, 어떻게 글들을 풀어나갈지 더 궁금해졌다.

 

이름 붙일 수 있는 순간이 아니라 그 사이가 모두 시라면,  삶 전체가 "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그 사이"가 무었이었나 되짚어 본다. 우리는 "그 사이"를 어떻게 알아채고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해 본다.  


이제서야 이유를 생각해 보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시 읽는 행위와 시간'이 좋았다. 삶이 시라면, 시의 "행과 연을 이루는 단어와 문장들" 너머에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에 무의식적으로 끌렸나본데, '나'라는 시의 행과 행 사이를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는 시간들속에서 무엇을 고, 위안를 받고 휴식을 취하며 새로 살 힘을 얻었나 보다.


책 표지를 펼치니 글씨체와 차례 구성도 시 한편처럼 아름답다. 옥타비오 파스의 시를 읽고 마주하니, 차례속의 단어와 문장 뿐 아니라 사이'의 공간들도 더 의미있게 눈에 들어온다.

온 우주보다 큰

-Page 12
사랑하는 것을 잃었을 때, 사람의 마음은 가장 커진다. 너무 커서 거기에는 바다도 있고 벼랑도 있고 낮과 밤이 동시에 있다.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아무 데도 아니라고 여기게 된다. 거대해서 오히려 하찮아진다.

-Page 13
텅 비워진 공간에서 어찌할 바 모르고 슬퍼하던 시인은, 그 공간으로 시간을 데려오기로 한다. 내가 존재하는 한 내가 잃은 것도 내 안에 존재한다는 초월적인 시간에 바쳐진 마음은 이제 우주보다 더 커진다. 그렇게 커진 마음은 더는 허무하지 않다. 수만 년 전에 죽은 별처럼, 마음속에 촘촘히 들어와 빛나는 것이 있어서이다.


되짚어 보니 삶의 단계에서 크고 작은 '상실' 들을 비로소 안고 가겠다는 마음이 들게 되면, 어김없이 넓어진 삶의 반경을 만나게 되었다. "없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제서야 느껴졌던 또 다른 "있음"들을 떠올리며, 또 다른 사랑의 시 한편도 생각이 났다.


한때 네가 사랑했던 어떤 것들은
영원히 너의 것이 된다.
네가 그것들을 떠나보낸다 해도
그것들은 원을 그리며
너에게 돌아온다.
그것들은 너 자신의 일부가 된다.

- 앨런 긴즈버그 <어떤 것들>
산책이 시가 될때

-Page 23
그러므로 산책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지혜로워 지거나 선량해 진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시의 한 행에 다음 행이 입혀지는 것과 같다. 보이는 거리는 좁지만, 보이지 않는 거리는 우주만큼 멀 수 있다. '나'라는 장시는 나조차도 미리 짐작할 수 없는 행들을 붙이며 느리게 지어진다.


산책은 목적지가 아니라 '사이'의 것들에 더 중요성이 더해지는 행위였다는 사실을 지금 새로이 깨닫는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최적의 시간과 방법을 자동으로 생각하느라, 그 '사이'를 보고 느끼는 것은 비효율에 사치라고까지 여겼던 것 같은데, 그 사치를 누려야 생생한 '삶'을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 자주 삶의 속도를 늦추고, 멈추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삶에서 만나는 존재을 "시간을 들여" 바라보며 '나'라는 시를 지어가야지.


바다에서 바다까지

-Page77,8
과묵한 강과 달리, 바다는 우선 떠들썩했다. 자꾸 내 앞으로 달려와 발목을 잡았다. 강이 나를 따돌리는 친구였다면, 바다는 내가 시큰둥해도 거듭 다가와 말을 거는 속없이 다정한 친구 같았다.
...(중간생략)...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바다에 기대는 사람이다. 매혹에 두려움이 얹혀, 기쁨에 고통이 얹혀, 오히려 바다를 벗어날 수 없게 됐다. 나는 그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다. 모두 내 발목을 적시고 물러갔다가 또 적시러 올때까지, 나의 자세는 마냥 차렷이다.


삶은 바다를 닮은 것인지, 강한 파도가 올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차렷 자세로 파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내일을 바라고, 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두려우면서 동시에 설레고 아름답고 자유롭다는 느낌을 준다.

 

회색의 힘

-Page 137
체스터튼은 <정통>에서 그러한 무게의 해악을 설명하며, "자신을 중시하는 쪽으로 가라앉지" 말고 "자기를 잊어버리는 쾌활함 쪽으로 올라오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숙함은 인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지만, 웃음은 일종의 도약이기 때문이다. 무거워지는 것은 쉽고 가벼워 지는 것은 어렵다."
...
(중간생략)
...
삶의 마디마다 기꺼이 가라앉거나 떠오르는 선택이 필요하다면, 여기에서 방점은 '기꺼이'라는 말 위에 찍혀야 할 것이다. 기꺼이 떨어지고 기꺼이 태어날 것. 무게에 지지 않은 채 깊이를 획득하는 일은 그렇게 해서 가능해 지지 않을까.


회색의 힘은 가벼움과 무거움, 쾌활함과 엄숙함, 빛과 그늘을 포함해 그 어떤 끝단 사이에서라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로움일지도 모르겠다. 그 선택들로 인해 얻는 깊이가 '나'라는 시의 아름다움이 되는 것이겠지. 어른의 삶이 계속 될 수록 모르겠다는 생각이 더 자주 든다. 그저 사랑의 마음으로 오늘도 아름답게 걸어가며 새로운 내가 되기로 한다.


그녀는 아름답게 걸어요 (부치지 않은 편지)

-Page 172

그녀는 아름답게 걸어요, 밤하늘처럼

어느 방향으로 걸어야 할지, 무엇을 바랄 수 있을지, 저는 여전히 모르겠어요. 다만 지금은 아름답게 걷고자 합니다.
"저의 성소는 사랑이에요" 라고 말한 성인이 이미 있지요. 저는 덧붙여요. 저의 두번째 성소는 아름다움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지켜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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