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자아가 외면의 자아를 그대로 비출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잘 사는 것' 에만 집중하다 보면 문득, 갈 길은 멀고 내 안은 빈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나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나 자신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까?
"얼핏 보면 비관주의자, 자세히 들여다보면 행복지수 높은 낙관주의자!" 가까운 지인들이 평가하는 내 모습이었다. 안타깝게도 둥글둥글하고 적당히 둔한 성격을 가지지 못했다. 사방으로 감각이 예민해서 거의 모든 것에 감응하는지라, 자주 동요하고 감정의 기복이 크지만 또한 자주 감동하고 행복해하는 사람이기도해서 일테다.
젊을때는 내 성격이 여러모로 불편했지만, 나는 나이들 수록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는 예민한 내 성격이 좋아졌다.
그런데, 불혹을 넘어 현실에서 해야 할 의무가 산더미이건만, 껍데기로 사는 기분만 들고 모든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힐링이랍시고 여러 액티비티를 해봐도, 행복의 역치가 날로 높아만 가서인가, 무엇을 해도 감응이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안바쁜 것도 아니고, 가진게 적은것도 아닌데, 젊을 때는 사전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공허함"이란 단어가 자주 나를 찾아왔다. 비슷한 시간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지인들 역시 같다고 했고, 그들 역시 별다른 뾰족한 수는 없다고 했다.
오랜 방황과 사색 끝에 결국 내가 알아낸 것은, 내가 나로 살아가지 못해서 병이 났다는 것이다. 솔직히, 다 그냥 이렇게 사는 거 아닌가? 사회생활에서 하고 싶은 거 다하고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어떻게 사나? 역할과 책임에 맞는 적절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버틴 시간들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이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다. 같은 곳에 있어도 똑같이 힘든 상황이어도 그들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생기가 있었다. 이제 그들을 관찰하고 배우기로 하던 참에 이 책을 만났다. 진리라는 것을 역시나 시대를 초월해서 변하지 않는것이어서 250년이 지난 책에서도 결국 내가 보고 싶은 메시지를 찾은 것 같다.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스탠퍼드 경제학 교수 러셀 로버츠가 재해석한 책이다. 원제는 How Adam smith can change your life이다. 음? 아담 스미스? 제목만으로는 자기 계발서이거나 홀리한 내용일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경제학의 아버지 <국부론>의 저자, 보이지 않는 손, 낙수효과 등 자본주의의 차가운 논리를 주장하는 그 애덤 스미스의 책이 맞았다. 책을 읽을수록 아이러니컬한 의문점은 더해갔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국부론>은 이기심을 가진 개인들의 경제활동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낳고, 결국은 국가의 부를 이끈다는 내용이 담긴 책이다. 반면, <도덕 감정론>은 인간의 본성을 다른 각도로 통찰하는데, 이기심보다는 인간의 이타심에 대해 더 많은 비중을 두고 , 행복을 얻기 위해 돈을 따르는 삶이 얼마나 헛된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명예나 재산을 추구하는 삶에 열광하지 말고,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우리를 정말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제목이 주는 중후한 느낌은 잠시이고, 전쟁터 같은 인간사회에서 이 무슨 공자, 맹자 같은 뻔한 도덕적 이론들인가 하는 생각이 솔직히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나는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정의이며, 행복이다"라는 논리를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철없는 불혹의 이상주의자! 아닌가? 그래서, 계속 읽었다.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의 벽을 허무는 것은 내 안의 "공정한 관찰자"가 있어서, 이해관계의 시기마다 어깨너머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내가 있다고 말한다. 그 과정을 통해 내 안의 이기심을 잠재우고 이타심을 이끌어준다고 한다. 사람들이 비도덕적인 일을 안 하려는 이유에 대해서도 공정한 관찰자를 적용한다. 주위에서 우리의 행동을 관찰한 사람들이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해줄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사랑받는 느낌으로부터 생겨난다.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반대로 내가 미움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깊은 불행을 느낀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행복해지는 길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며 나의 통찰을 도와주는 것이 아담 스미스가 말하는 공정한 관찰자의 개념이며, 사회와 교육으로서 지속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나는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담 스미스는 인간은 자기기만에 빠지기 쉬우며, "공정한 관찰자가 실은 그렇게 공정하지 않아"라며 스스로를 속이며 자기애에 취하고, 자신의 맨 얼굴을 외면한다고 말한다.
자기기만은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인간이 살면서 겪는 혼란의 절반은 바로 이 자기기만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볼 줄 알기만 해도 자기기만이란 맹점에 빠지지 않는다. 자기기만을 계속 방치한다면 결국 우리는 거짓된 자기 모습을 견디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이상은 내면의 자아가 외면의 자아를 그대로 비출 때, 사람의 겉과 속이 다름이 없을 때 실현된다.
결국 나도 자기기만을 하는 나의 모습을 더 이상은 견디지 못했나 보다. 자기기만을 하며 유체이탈 화법을 쓰는 다른 사람들을 보는 것도 괴로웠다. 아래 섹션의 제목처럼 거을을 봐도 자기를 못 보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거울을 봐도 내가 안 보일 때
- Page 105
'우주는 수많은 점들로 가득 차 있다. 그중의 몇 개를 잘 이으면 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신이 선택한 점들이 왜 그 지점에 있는지가 아니다. 왜 당신이 나머지 점들을 선택하지 않았는지, 그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이런 오류에 빠진다. 자신이 선택한 점들만으로 그림을 그리고는, 자신이 예쁜 그림을 그렸다며 기뻐한다. 나머지 점들로도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다.
-Page 114
나와 경쟁 중인 상대는 사악한 사람이 아니다. 상대는 단지 세상을 다른 렌즈로 보거나,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결과를 평가할 뿐이다. 나에게는 결정적인 사실이나 연구 결과, 증거일지라도 상대는 이를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다. 심지어 상대는 자신의 반박을 뒷받침하기 위해 설득력 있어 보이는 증거까지 제시할 것이다. 세상은 복잡한 곳이다. 희곡 <햄릿>에서도 주인공인 햄릿이 친구 호 레이 쇼에게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던가.
"호레이쇼, 천지간에는 자네 철학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많은 것들이 있다네."
자기기만에 대한 스미스의 생각을 일상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린 상대가 자신의 결점을 모르고 자신의 주장을 과신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내 세계관 너머의 심오한 진실을 상대가 알 리 없다고 결론 내리고 만다. 실은 내가 그럴 수 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속이기 쉬운 사람이 있다는 걸 이제 알았을 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우리는 우리 삶을 만족시킬 도구들을 이미 모두 갖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의 기본적인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이탈리아 반도를 정복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음미하고 즐기는 기나긴 여정이며,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끈질긴 욕구, 즉 야심이 우리를 삼켜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어떤 사업가가 멕시코 해안가 작은 마을의 부두를 찾아갔다. 거기서 그는 혼자서 부두에 배를 댄 어부를 만났다. 작은 배에는 커다란 황다랑어 몇 마리가 있었다 미국인은 어부에게 좋은 물고기를 잡았다고 칭찬하면서 물고기를 잡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냐고 물었다. 어부는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미국인은 멕시코 어부에게 그럼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고 물었다.
"늦게까지 자다가 물고기 좀 잡고 아이들이랑 놀기도 하고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도 합니다. 저녁마다 동네에 산책을 나갔다가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고 기타도 치고요. 하루 종일 바쁘게 살죠."
어부의 말을 들은 미국인이 이렇게 말했다,
"전 MBA를 나왔습니다. 제가 당신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시간을 들여 물고기를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물고기를 판 돈으로 큰 배를 사세요.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아, 그렇게 번 돈으로 배를 몇 척 더 살 수 있습니다. 결국 선단을 갖게 되겠지요. 또한 잡은 물고기를 중간 상인에게 팔지 말고 가공업자에게 직접 팔면 통조림 공장까지 열 수 있습니다. 당신은 생산, 가공, 판매를 모두 감독하게 되는 셈입니다!"미국인은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당신은 곧 이 작은 마을을 떠나야 할 겁니다. 멕시코시티로 이사를 가고, 어쩌면 로스앤젤레스로 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대도시에서 번창하는 당신의 기업을 운영하는 거죠!" 그러자 멕시코 어부가 물었다.
"그 모든 일을 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15년에서 20년쯤 걸리겠죠."
"그런데 그다음엔 뭐가 있죠?"
"그다음이 진짜입니다. 때가 되면 회사를 상장할 수 있습니다. 그럼 당신은 아주 부자가 될 겁니다. 수백만 달러는 족히 벌겠죠!"
"수백만 달러라고요? 그럼 그다음은요?"
멕시코 어부의 물음에 미국인은 흥분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땐 은퇴해야겠죠. 조그만 어촌마을로 옮겨가서 늦게까지 자다가 물고기도 좀 잡고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아내와 보내는 겁니다. 밤에는 마을까지 산책을 나갈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며 기타도 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국부론> 이 출간되었을 때, 너도 나도 이 책을 팔에 끼고 다니며, 아담 스미스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기들의 입맛대로 해석하고 정책에 이용했다는 의견들도 많더니, 책을 읽고 나니 그 주장에 더 힘이 실린다.
도덕감정론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보다 18년 전에 집필한 책이고, 죽는 순간까지 9번을 개정하며 공들인 마지막 저서이기도 하다. 그가 묘비명에 "도덕감정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 여기에 잠들다"라고 새겨지길 바랬다는 것을 보면, 그의 생애 전반에 걸친 철학이 담겨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인간의 삶이 비참하고 혼란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소유물이 곧 나 자신이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그저 최고의 남편, 최고의 엄마, 최고의 이웃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복잡한 곳이다.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억지로 애쓰지 말자.
내가 손잡이를 힘껏 돌린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문이 다 열리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