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구내에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간다. 어느 밤, 24시간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안내받은 곳이었다. 짧은 시간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심적인 고통을 꽤 덜어낼 수 있었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기 어렵고 일회성에 그칠 수 있다는 게 전화상담의 한계점이기도 하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상담직원이 복지센터에 방문해볼 것을 제안해, 이제 곧 5회차 상담을 앞두고 있다.
태양만큼 작열하는 피부를 마스크로 가리고 택시에 올라탔다.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기사님이었다. “○○ 정신건강복지센터 가시는 거죠?” 일분 여를 달리다 대뜸 나에게 물었다. 룸미러에 물마루처럼 솟은 두 눈이 보였다. 어쩐지 행선지를 재확인하려는 것 같진 않았다. 슬쩍 머금은 미소는 진짜라기 보단 중요한 어떤 걸 가리려는 의도로 읽혔고, 대수롭지 않은 걸 묻는 사람치고는 상대를 깊이 들여다보는 눈빛이기도 했다.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마음.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대충 어떤 대화를 이어갈지가 예상되었다.
고심 끝에 잘 다듬어진 문장들이었고, 질문과 질문 사이를 멀리 띄워 공백을 뒀다. 그렇다고 정말로 텅 빈 것도 아닌, 까마득한 물속에서의 수중음처럼 피부를 뚫고 뼈가 떨리게 하는 진동 같은 것이 거기 있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머뭇거림. 세상 누군가에겐 확 터뜨리고 싶은 비밀 꾸러미. 원래 젖은 소리는 울림이 더 큰 법이라서, 귀를 막아도 들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내 웅웅거리는 차안에서 간간이 거울에 담긴 그의 표정을 살폈다. 긴 세월 주름진 감정들을 애써 팽팽하게 당기려는 얼굴이 꼭 닮은 누군가를 떠올리게도 했다.
단지 궁금해서 묻는 것뿐이에요.
저도 단지 아는 걸 대답할 뿐입니다
지난번 택시를 탔을 땐 복지센터의 직원인 척했다. 행선지를 다시 묻는 기사에게 평소보다 더 당당하게 말하려 했던 건 정신이 또렷하고 온전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버는 게 없는데 아프기까지 하면 안 된다. 몸으로도 모자라 마음까지 앓는 건 삶에 대한 위반이다. 딱지를 떼면 수천 일 동안의 벌금을 물어야 할 범법자다.' 가혹하지만 때로 이런 생각까지도 했으니까. 억지 미소와 까랑까랑한 어투 정도는 귀엽게 봐줄 만하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언제나 단단한 가면을 쓰고 변명할 준비가 되어있는 인간에게, 불현듯 그가 질문을 던져버린 거였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게 맞나요?”
“상담의학이랑 그냥 상담이랑 차이가 있나요?”
“전문의가 거기에 있나요?”
“상담받는 데 돈이 드나요?”
잠시 후 지나가던 대로에선 여기와 저기에 상담센터가 새로 생겼다고 전해주기도 했다. 요새 저런 게 많이 생겼다는 그의 말이, 요새 자꾸만 저런 게 보일만큼 힘들다는 말로 들렸다. 자꾸만 그 물컹한 속이 느껴져 모른 척하는 데 힘을 쏟았고, 나름 알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편안하게 답하려 애썼다. 눈물이든 땀이든 어떤 축축한 것들로 메워진 마음이 나의 울퉁불퉁한 말투에 찢기길 원치 않았다. 내 대답을 듣는 중간중간 그의 까만 눈동자가 아득한 물밑으로 가라앉은 듯했고, 나도 잠시 깊고 적막한 그곳에 함께 머물렀다.
가끔은 꼭 말이 아니어도 말할 수 있었다. 눈빛의 농도와 소리의 울림 같은 것들로 정작 하고 싶은 얘기들을 대신 전하기도 한다. 겉보기에 별스러울 것 없는 대화 속엔 서로 드러내지 않은 이야기들이 어슴푸레 비쳤다.
당신, 그래요?
네. 그래요. 당신도요?
때때로 말은 나와 상대를 한정된 공간에 가둬 둔다. 매사에 확실하고 명확한 걸 추구하는 인간은 그래서 말에 곧잘 집착한다. 고막을 뚫고 들어오는 소리를 통해 전보다 단단한 세계에 떨어진 듯 착각하고, 그 착각이 깨어질 때 우리는 가끔 흥분한다. 말 너머엔 너와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로 충만하니까.
부정할 수 없이 명백한 것들이 다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며 귀에 들려야만 하는 건 아니다. 반드시 당신과 내가 소리로 이어져야만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누가 알아챌까 불안해하며 진짜를 숨기기 바빴던 길 위에서 나를 꼭 닮은 사람을 마주쳤다. 그 안에선 나이도 성별도 그다지 중요치 않게 여겨졌고, 그저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람이 서로를 알아차렸다. 나에게 맞추는 지긋한 눈빛이, 부스러질까 조심스러운 그의 말투가, 차와 함께 흔들리던 마음을 조금은 달래주었다. 나도 여기 흔들리고 있다고, 그러니까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고, 위로해 주는 듯했다.
가파른 오르막에 택시가 멈춰 섰다. 창밖을 두리번거리는 그의 모습은 단지 손님의 목적지를 확인하려는 것 같진 않았다. 그 좁고 깊은 눈에 다 담으려는 듯, 내가 차에서 내리고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