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내가 나이가 구십이 넘었는데!!”라고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이어 “젊은 사람이 버르장머리 없이!!”라고도 했다. 잿빛의 체크무늬 중절모 아래 훨씬 명도가 높은 은빛 머리칼이 삐져나와 있었다. 연회색의 정장은 입었다고 하기 보단 둘렀다거나 덮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는데, 흡사 깡마른 몸이 휘청거리지 않도록 꼭 붙들어주는 것 같기도 했다. 깔맞춤이라도 한 듯 잔뜩 노한 두 눈조차 잿빛이었고, 오랜 세파에 깎여 흰자와의 경계는 흐려져있었다. 듣자 하니 걸음이 느려 새치기를 당한 모양이었다. 원래 4번이어야 하는데 5번을 쥐게 된 것이 못마땅해 오동나무 지팡이로 애꿎은 타일바닥을 퉁퉁 쳐댔다. 반구형으로 말린 어깨가 자칫 그 힘에 아래로 더 굽진 않을까 걱정될 즈음 가시나무 같은 두 다리로 간신히 버티고 서선 끝이 퍼르르 떨리는 지팡이로 누군가를 똑바로 가리켰다.
1971년에 개업한 이래 50년 넘게 대를 이어 운영 중인 피부과다. 고전적인 치료법을 고수해 요새 젊은 층에겐 슬쩍 외면당하는 중이지만, 근방에선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주변 소도시에서도 새벽차를 타고 오기를 서슴지 않을 정도라 가까이 산다고 해서 느지막이 일어나는 건 불리하다. 자칫 잘못하면 기본 두 시간은 대기해야 하니, 잘난 의사는 열 시에 오지만 마음 급한 환자들은 여덟 시부터 와 있어야 한다. 나는 보통 일곱 시 오십 분이 좀 안 되어 집을 나선다. 피부과가 걸어서 십분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날도 일등으로 도착해 아직 열지도 않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야구모자를 눌러쓴 한 팔십대 쯤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문 앞에 바짝 다가섰다. 그 뒤로 비슷한 연배의 할머니가 유리문을 쾅쾅 두드리다 아직 안 열었느냐고 혼잣말을 하며 그 옆에 비스듬히 섰다. 줄이라기 보단 일렬로 나란히 선 상태에서 나는 내가 일등임을 보다 확실시하기 위해 시종일관 문손잡이 앞을 사수했다. 괜히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색해지기 때문에 옆이나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가운데 시간은 벌써 삼십 분이나 흘렀다.
평소보다 오 분 늦게 문이 열리자마자 일번 표를 뽑아 자리에 앉았다. 우르르 밀려들어오는 환자들을 보며 꼭 먹구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서두르는 와중에도 그 발걸음들이 별로 가볍게 느껴지지가 않아서였다. 어딘가 불편한 사람들이 잔뜩 모인 곳이 병원 아니던가. 이곳은 요즘 줄줄이 늘어선 피부(미용)과와는 결이 다른 곳이라 정말로 눈에 띄는 문제가 있어서 온 환자들이 많다. 친구들은 다들 써마지니 울쎄라니 하는 것들이나 맞으러 다니지만, 나만 해도 피부염 때문에 보름에 한 번씩 약을 처방받으러 온다. 스무 명에 가까운 대기환자들을 빙 둘러보며 과연 어디가 아파서 왔을까를 재보던 중 뒤통수 너머로 번개와 같은 호통이 내리쳤다.
내가 나이가 구십이 넘는데!
젊은 사람이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내가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어! 내가 앞에 섰는데 문고리 잡고 흔들 때부터 내가 알아 봤다니까!!
사람이 지킬 건 지키고 살아야지.
내가 멀리서 와가 이래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또 이따가는 경산에 강의하러 가야 돼요!!
할아버지의 역정은 끝날듯 끝나지 않았고, 듣다듣다 열이 받은 그 ‘젊은이’는 대뜸 맞받아치기 시작했다.
아, 그라마 으르신이 먼저 하시면 되잖아요!
저도 나이 물 만큼 묵었습니더!! 내가 칠십이 넘었는데 뭔 버르장머리는 버르장머리라요!!!!
먼저 하시라고요 그러니까!!
나이가 칠십이 넘었다는 말을 듣고도 할아버지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손에 쥔 그것이 마치 간달프의 지팡이라도 되는 양 아까보다 더 분노하며 내리쳤다. 허옇게 일어난 손등은 오동나무 끝에서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고, 수십 개의 작은 고랑을 머금은 입술은 바싹 메마른 채 연이어 호통을 뱉어냈다. 그 앞에서 잔뜩 상기된 어깨를 들썩이며 항변하는 젊은이는 유명 체크무늬 브랜드의 베레모를 쓰고 귀밑까지 흘러내린 곱슬머리를 하고 있었다. 아래엔 청바지, 위엔 베이지 톤의 자켓을 입어 딱히 젊은이까진 아니라도 나름 젊은 감각을 소유한, 그러나 누가봐도 엄연한 할아버지였다. 까맣고 덥수룩한 눈썹이 몇 살은 더 어려 보이게 만들었겠지만, 넙데데한 얼굴 위로 자글자글하게 갈라진 주름들은 그의 나이를 어느정도 짐작케 했다.
젊어 보인다는 말이 항상 기분좋을 수만은 없는 거였다. 순서를 빼앗겨 억울한 구십대와 젊어보여 억울한 칠십대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각자의 억울함을 토해냈다. 나를 포함해 열댓 명 정도의 환자들이 있었는데, 그 누구도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레 야구모자를 쓴 또 다른 할아버지가 나섰다. 공교롭게도 둘 사이쯤의 연세쯤으로 보여, 말하자면 형님과 아우 사이에서 둘째 역할을 하는 듯했다.
나와 마주 앉았던 할머니는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말든 백색의 페인트 벽을 무덤덤하게 응시하고 있었고, 내 오른쪽에 앉아있던 오십 대 남성은 노인들의 언쟁을 흥미롭게 쳐다보며 대놓고 피식피식 웃어댔다. 속으로야 다들 비슷한 생각들을 했겠지만 저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서야 쓰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차피 남의 일이고 평소에 나도 그닥 예의바른 인간은 아니라 속으로 하던 욕을 그만 두었다.
언쟁은 틈틈이 휴전을 했다 잊을 만하면 다시 시작됐다. 두시간 여 동안 실랑이가 이어지는 가운데 둘째 할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심지어 간호사들도 숨소리 하나 내지 않았고, 하나 둘 도착한 의사1, 2, 3까지도 모두 고개 숙인 채 진료실 문 안으로 사라졌다.
좀 조용히 해달라고 하기엔 도발자인 왕할아버지의 생이 백 년이 다 되어가는데다, 가만히 놔둬도 까슬까슬한 뼈를 사방천지로 흔들어대다 알아서 무너질 것 같았서였을 터다. 하긴 저 오동나무 지팡이만 아니면, 그리고 저 커다랗고 각진 양복만 아니면 머지않아 와르르 쏟아져 중절모만 공중에서 툭 떨어질 것도 같았다. 어쩌면 쟁쟁한 목소리만이 남아 내내 허공을 맴돌지도 모르고.
하필 현장의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어 귀가 좀 먹먹하긴 했지만, 두 할아버지의 격정적인 다툼을 말리는 소란스런 사람들이 없어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것 같이 때로는 중간에 낀 사람이 더 시끄럽고 못나게 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둘째 할아버지는 같이 흥분하거나 소리치는 일이 없어 셋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졌을 때 적당한 균형이 이루어졌고, 심지어 평화로움마저 느껴졌다.
다른 환자들도 그랬으려나. 우리들 마음 속에는 각각 세 명의 할아버지 외에도 구경꾼의 심리가 모두 자리하고 있다. 뺏기기 싫은 마음이나 뺏고 싶은 마음이나 또는 그들 사이를 중재하고 싶은 마음이나 내버려두고픈 마음이나. 언젠가 자신들도 겪어봤기에 그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결국엔 다 같은 결말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라 더 말을 아꼈던 걸지도 모른다. 나이로 치면 제일 선봉에 선 자가 그토록 노하는 장면은 다소 그 사안의 가벼움으로 인해 우스꽝스러워보이긴 했어도 한편으론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엄숙함도 있었다. 그래봐야 했던 말을 계속 돌려막기히며 성김을 채우는 것에 불과했는데, 구십이 넘었다는 그 한 마디가 불현듯 이 말을 떠올리게끔 했다.
나이를 먹어도 사람 마음은 다 똑같구나.
실은 이 말을 하는 내가 나이를 먹어도 당신과 똑같을 거라는 예고가 아닐까 하는, 뭐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어른이라 양보해야 하고, 어른이라 점잖아야 하며, 어른이라 침착해야 하고, 어른이라 혜안이 있어야 하는, 그 어른의 삶이 내게도 그리 쉬울 것인지를 헤아려봤다. 세월의 더께를 진 그 모든 형체와 몸짓이 조용히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