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이방인

by 한 나강

외국인에게 길을 물었다. 그녀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었다. 앞머리 없이 광대뼈를 뒤덮은 긴 머리칼이 그녀의 이목구비를 감췄다. 짙은 쌍꺼풀이 이색적이긴 했지만 입을 떼기 전까진 한국인이 아님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외국인 : G하처얼 력이요?

나 : 네에. Zㅣ하철 역이요.


생각할 틈도 없이 튀어나온 방어본능이었다. 이방인에게 길을 묻는 현지인의 모양새가 영 덜 떨어져 보여서, 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재외동포와 같이 혀를 놀리고 말았다. 하필 이곳은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었다. 아무리 타지에서 십여 년을 살다 돌아왔어도 대형 백화점과 기차역이 있는 주요 거점 정도는 알아야지 않겠는가 하는 자격지심이 발동했다. 이런 쓰잘머리 없는 일에까지 내적인 열세를 느끼고 자빠진 것에 대해 어느 누가 공감해 줄까 하는 의심이 든다.

헛웃음이 났다. 친절히 알려준 곳에 애타게 찾던 지하철역이 없었음에도, 고향에서까지 내가 그녀와 다를 바 없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못마땅했다. 달리 말해 그 어느 곳에서도 깊이 우러나지 못한 나라는 존재가 밍밍하게 느껴졌다. 이건 아마도 최근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감정과도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이십 대부터 삼십 대까지 십 년을 몸담았던 전직은 언젠가부터 두렵도록 낯선 공간이 되어 있었다. 기껏해야 고만고만한 지방대 졸업자가 고만고만한 직장에 출근하다 그만둔 것에 불과했는데도 그랬다. 으리으리한 심리적 위압감에 이력서만 내놓고도 지레 겁먹길 반복했다. 오늘 31,744 제곱미터의 건물 안에서 이방인처럼 갈 곳을 몰랐듯 원하는 걸 찾기도 전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고향의 지리는 눈 감고도 알아야 한다는 억지스러운 생각은 예전 일을 시작만 하면 한창때와 같이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고집과도 닮아 있었다. 나의 방황은 단지 그때에 비해 급여가 줄고, 면접만 보면 근무조건이 달라지고, 이젠 너무 지겹고, 원래 싫어했다는 등등의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었다. 과거에 익숙했던 것이 낯설어지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불편한 이질감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 이질감의 근원이 일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깨달음에 더없이 곤란해지고 말았다. 이렇듯 생각이 짧은 인간은 자기도 세상과 같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걸 곧잘 잊어버리곤 한다.


달라져 있었다. 더는 그 일에 맞지 않는 사람으로, 과거와는 별개의 인격체로 매일을 재탄생해왔다. 내가 이방인이 되어버린 것은 세상이 바뀌어서만이 아니라 더는 그때의 능력과 생각과 감정으로 원래의 그 길을 찾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자존심만 높다랗게 세운 한 인간은 누가 콧바람만 불어도 휘청거리며 눈물을 머금었더랬다.

그리하여 무려 1안에서 5안까지 목적지를 달리해보기도 했다. 일할 곳이 거기뿐인 건 아니니까. 이제와 드는 생각은 대책이 많다고 해서 꼭 미래가 안전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엉뚱한 곳으로 안내할 여지가 충분함과 동시에 수많은 갈림길 위에서 끝없이 준비만 하다 생을 마감하는 수가 있다.

자격증을 따고 또 따고, 놓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각기 다른 능력을 요하는 일터에 이력서를 뿌려대도 이 마음은 한결같았다. 나는 그 어디에도 진득하니 우러나지 못했다. 낯섦의 근원인 나 자신이 얼마나 어떻게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어디로 향하느냐만 중요했다.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얼마나 안정적인지, 덧붙여 누가 봐도 화려하고 탐은 나는지.


나와의 소통부재는 아까와 같은 외계어를 낳는다. 이도저도 아닌 혓바닥으로 세상과 단절된 소리를 낸다. 아무것에도 깊이 침잠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느라 진만 빠졌다. 한때는 익숙했던 그 길로의 습관적인 회귀가 나를 정처 없이 떠도는 귀신으로 만들었다. 산 자의 고군분투와 죽은 자의 회한을 헷갈려선 안 된다. 전자는 앞을 바라보며 헤매지만, 후자는 뒤를 돌아보며 헤맨다. 전자는 나를 알고자 방황하지만, 후자는 나를 잊고서 방황한다.


과거의 나는 내가 아니다. 현지인이 외국인에게 길을 물으면 왜 안 되는가. 고향의 지리를 뭣도 모르면 왜 안 되는가. 하던 일을 다 까먹어서 햇병아리로 돌아가면 왜 안 되는가. 십여 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와 생판 다르면 왜 안 되는가. 왜 나는 꼭 어제의 나를 이겨야만 하는가. 사람이 다른데. 더는 그 젊음과 마음을 흉내 낼 수가 없는데.


뒤늦게나마 물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떤 사람인지 혹은 어떤 사람이고자 하는지. 여태 세상의 잡음에 파묻힌 목소리가 있다. 간간이 들려오는 희미한 음성은 나아갈 방향이 아닌 내가 선 자리를 가리킨다. 누군가가 삶에 짙게 배어 나오는 것은 단순히 한 곳에의 정착이 아닌 여기 이곳에의 정착으로부터 시작됨을 말한다.

그간 방황을 업으로 삼았다 보니 집 밖을 나서는 일이 제일 무섭다. 그럼에도 이 악물고 가본다. 나를 믿는 것 말곤 만년 백수의 삶을 타개할 그 어떤 방법도 도구도 없기 때문이다. 평생을 떠돌지 않기 위해 매일을 떠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영원한 이방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