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카구야 공주!

시대를 정의하기 이전에 사랑의 증명

by 나가레보시


영화 <초 카구야 공주!>가 넷플릭스의 자본으로 제작, 배급된다는 소식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보다도 놀라웠던 것은 유명 보컬로이드 프로듀서들의 참여 발표였다. 이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모을 수 있는 넷플릭스의 자금력이 새삼 두려워졌다. 그러나 작품성은 별개의 영역에 존재한다. 넷플릭스라는 거대 자본과 유명 보컬로이드 프로듀서들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초 카구야 공주!>가 높이 평가될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감상을 끝낸 뒤에도 나의 머릿속에는 두 주인공 이로하와 카구야가 보냈던 시간의 이미지들이 불현듯 떠오르고는 한다. 각본이라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를 희생하면서도 지켜낸 이로하와 카구야의 사랑과 그 뒤에서 감돌듯이 그려진, 2020년대를 만들어 가고 있는 오타쿠 문화들의 존재가 나의 마음을 직격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 카구야 공주!>는 모든 장면들에 지금의 시대를 그려내겠노라는 제작진의 야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영화이다. 곧 이로하와 카구야의 사랑이라는 백합을 중심으로, 2020년대가 정의되기 시작한다.


<초 카구야 공주!>의 각본은 특출나지 않다. 오히려 감점 요소에 해당한다고 생각될 정도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설명들이 전부 생략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 카구야 공주!>를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각본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려내고 정의하고자 했던 2020년대라는 지금 이 시대의 모습들 때문이다. 오타쿠는 예나 지금이나 몰입하고 싶어한다. 사랑하는 캐릭터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하고, 동경하는 캐릭터의 모습이 되고 싶어한다. 201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오타쿠의 욕망은 제한적으로 충족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캐릭터가 존재해도 완전한 일대일 관계를 성립하지 못하고 멀리서나마 스스로를 장식하며 사랑을 과시할 수밖에 없었고, <빙과>의 주인공 오레키 호타로나 <역시 내 청춘 러브 코메디는 잘못됐다.>의 주인공 히키가야 하치만 같은, 반사회적이면서도 모두를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으나 자신은 그 사실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소위 ‘비틱’ 캐릭터들에게 자신의 자아를 의탁하고는 했다. 이는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 변화하기 시작한다.


2010년대 후반에 등장한 기술적인 토대는 2020년대에 이르러 오타쿠의 욕망을 제대로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시대를 만들었다. 201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된 인터넷 가상 세계의 발전과 버추얼 기술은 일대일 관계의 사랑과 동경하는 캐릭터라는 오타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최고의 도구로 거듭나게 되었다. 버추얼 아바타를 활용하는 방송인들은 인터넷 방송인이라는 접근 방식의 특수성과 함께 오타쿠가 사랑하는 캐릭터의 모습이 되어 이전보다 진보된 일대일 관계를 수립할 수 있게 되었고, 오타쿠 역시 더 이상 기존의 캐릭터에 의탁하지 않고 버추얼 아바타를 뒤집어쓰면서 자신이 되고자 하는 캐릭터로 가상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이전부터 오타쿠 세계는 현실과는 유리된, 일종의 가상 세계였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실체가 생겨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팬데믹과 인터넷 가상 세계의 고도화는 파편화를 초래했고, 애니메이션만 보는 오타쿠, 게임만 하는 오타쿠, 버추얼 유튜버만 시청하는 오타쿠가 편의상 똑같은 단어로 호칭된다.


이 지점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초 카구야 공주!>이다. <초 카구야 공주!>는 파편화와 함께 갈라진 오타쿠라는 단어를 한 자리에 모으는 영화이다. 오타쿠가 사랑하는 2020년대의 거의 모든 것이 모든 장면에 그려져 있다. 이로하와 카구야의 사랑이 담긴 백합(사실 백합 역시 2020년대에 이르러 크게 활약하고 있는 것을 보면…)을 이야기의 기반이자 동력으로 두고 인터넷 가상 세계, 버추얼 유튜버, ‘프로세카’ 등을 메인 레퍼런스로 삼은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며, 이외에도 2020년대에 유행하는 다양한 오타쿠 문화들을 자잘하지만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심지어는 작화 방식조차 <봇치 더 록!>으로 큰 반향을 얻으며 새로운 작화의 기준점을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애니메이터 케로리라의 영향을 짙게 드러내고 있을 정도이니, 얼마나 유행에 신경써서 그려낸 영화인지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프로세카’는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이고, <초 카구야 공주!>의 음악에 유명 보컬로이드 프로듀서들이 참여한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초 카구야 공주!>의 놀라운 점은 단순하게 갈라진 존재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앞서 야심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사실 <초 카구야 공주!> 제작진의 야심을 정확하게 표현해보자면 ‘지금 이 시대의 갈라진 존재들을 한 자리에 모아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그려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작화가 그 선봉에 선다. <초 카구야 공주!>의 크레딧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끝없이 올라가는 애니메이터의 숫자였다. 원화 116명, 제2원화 272명이라는 놀라운 숫자로 제작되는 애니메이션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더욱 놀라운 점은 캐릭터 디자이너의 그림체를 애니메이터가 모사하여 그려지는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애니메이터가 늘어나면 그림체를 유지하는 데에 더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해질 것임에도 어떤 흔들림도 없이 높은 질의 작화가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하이라이트인 라이브 장면에도 댄스와 뮤직 비디오의 작화, 연출에는 거장이라고 불러도 손색 없을 교토 애니메이션 출신의 나카야마 나오야가 기용되어 세 사람의 교감을 테마로 훌륭한 화면을 선보였다.


연기는 어떤가? 지금까지 나는 하야미 사오리의 최고 연기로 <목소리의 형태>의 주인공 니시미야 쇼코의 연기를 꼽아왔다. <초 카구야 공주!>의 주인공 루나미 야치요의 연기는 이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음에도, 그녀의 커리어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배역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는 감상을 남겼다. 가창에 연기를 섞어내는 노련함과 함께 RP를 연기하는 버추얼 유튜버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업계인 특유의 말투들을 어색함 없이 그대로 재현하는 놀라운 연기력이 시종일관 돋보인다. 언제나 같은 목소리만을 들려줄 뿐인 성우라는 비판을 듣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에 동의할 수 없다. 같은 목소리일지언정 흔들림 없고, 때로는 놀라움을 들려주는 하야미 사오리는 여전히 동세대 최고의 연기자이다. 물론 사카요리 이로하 역의 나가세 안나와 카구야 역의 나츠유시 유우코의 연기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이로하와 카구야, 두 주인공의 사랑이 영화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최대의 열쇠인 만큼, 두 성우의 연기가 백합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했다면 부족한 설명을 뚫어내는 사랑의 이야기는 그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화면은 야심의 결정체인 백합으로 향한다. 이제 우리는 2020년대라는, 지금 이 시대를 구성하는 오타쿠 요소들을 헤쳐 나가 최종적으로 폭발하는 백합의 존재를 목격하게 된다. 사실 이조차도 틀렸을지 모른다. 선술했듯이 2020년대를 구성하는 오타쿠 요소들은 이로하와 카구야의 사랑 이야기에 감돌고 있는 것이므로. <초 카구야 공주!>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로하와 카구야의 사랑만을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열변을 토하며 설명했던 오타쿠 요소들마저 백합 앞에서 그녀들의 사랑을 시험하고 꽃피우도록 하는 기폭제가 될 뿐이다. 이로하와 카구야는 서로를 사랑한다. 카구야의 대사로도 표현되는 것이지만, 비언어적으로도 사랑은 이미 모든 화면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렇기에 사실 설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이미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사랑을 되찾기 위한 무리수의 과정은 설명하지 않아도 납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이에 실패한 영화였지만, <초 카구야 공주!>는 아름답게 해내었다. 그렇기에 비판할 생각은 없다.


결국 <초 카구야 공주!>는 시대를 정의하기 이전에 열렬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증명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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